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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전국 2등' 아들 죽음…軍부실수사 의혹, 법원 '한줄 기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故) 조준우 일병 사건과 관련 유족이 법원에 군 부실수사 의혹에 대해 재정신청을 했지만 최근 기각된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신청이란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사건에 대해 법원이 다시 판단해달라는 것으로 법원이 신청을 받아들여 공소제기를 결정하면 검사는 따라야 한다.

조 일병 사건은 별도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송기춘)에서도 조사 중이다. 유족 측은 “군사망사고규명위 조사 결과에 따라 군의 부실수사 의혹이 확인될 가능성이 높은데도 서둘러 기각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25일 즉시항고장을 제출했다.

첫 정기 휴가를 나와 극단적 선택을 한 고 조준우 일병의 어머니 강경화씨(왼쪽)가 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법원삼거리에서 당시 사건을 부실 수사한 의혹을 받는 군 수사관의 처벌을 촉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첫 정기 휴가를 나와 극단적 선택을 한 고 조준우 일병의 어머니 강경화씨(왼쪽)가 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법원삼거리에서 당시 사건을 부실 수사한 의혹을 받는 군 수사관의 처벌을 촉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고법 형사30부(부장 배광국·조진구·이혜란)는 지난 18일 조준우 일병 사건 부실수사 및 은폐 의혹 사건에 대한 유족 측의 재정신청을 기각했다. 지난 7월 이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부터 이송받은 서울고법은 유족 측의 요구에도 심문기일 없이 약 4개월 만에 기각 결정했다. 기각 이유는 “이 사건 기록과 신청인이 제출한 모든 자료를 살펴보면, 군 검사의 불입건 처분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고, 달리 위 처분이 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자료가 부족하다”는 내용 한 줄이었다.

조준우 일병 사망 사건은 2019년 1월에 입대한 국군지휘통신사령부 5정보통신단 소속 조 일병(당시 20세)이 같은 해 7월 첫 휴가 중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다. 그는 2017학년도 수학능력시험에서 전국 2등의 성적으로 서울대에 입학하는 등 미래가 촉망받는 청년이었다.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현 군사경찰단), 보통검찰부는 조사 결과 조 일병이 불면증과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판단했고 육군 보통전공사상심사위는 2019년 12월 ‘자유롭지 못한 군 환경’ ‘생활의 단조로움’ ‘연등’(취침시간 이후 점등해 공부 등을 하는 것) 등에 따른 스트레스가 사망 원인이라며 ‘일반사망’ 판정했다. 조 일병의 부모 등 유족은 군 수사기관에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고법이 지난 18일 조준우 일병 사망 관련 군 부실수사 의혹에 대한 유족의 재정신청 기각 결정문 내 결정 이유. 유족 측 제공

서울고법이 지난 18일 조준우 일병 사망 관련 군 부실수사 의혹에 대한 유족의 재정신청 기각 결정문 내 결정 이유. 유족 측 제공

그러자 유족은 직접 발 벗고 나서 조사하기 시작했다. ▶조 일병과 같은 부대에서 근무한 선후임 등을 직접 면담하고 ▶조 일병의 생전 일기장을 분석하는 한편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조 일병 복무 당시 부대 운영상황 등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해당 부대 병사들이 과도한 당직 근무에 시달려 왔고, 한 간부의 지속적인 괴롭힘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따라 순직 여부를 재심사한 국방부 전공심사위는 지난해 8월 조 일병에 대해 업무 과중과 부대 간부의 비위 행위에 따른 스트레스를 인정해 ‘순직’ 판정했다.

유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사건을 맡은 군 수사관이 처음부터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며 2020년 10월 담당 수사관을 직무유기·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육군본부 보통검찰부에 고소했다. ▶수사자료 등 사실관계 일부를 확인하지 않았고 ▶국선변호인 지원 절차 안내를 누락했으며 ▶심리 부검 요청도 거부당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군 검찰은 지난해 8월 “수사상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이에 유족은 곧바로 재정신청을 했지만, 고등군사법원은 약 1년간 심리를 미뤘다. 그러던 중 이예람 중사 사건에 따른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고등군사법원이 지난 7월 1일 자로 폐지되자 사건은 서울고법으로 이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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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송기춘)는 지난해 12월 13일 조준우 일병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 개시를 결정했다. 유족 측 제공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송기춘)는 지난해 12월 13일 조준우 일병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 개시를 결정했다. 유족 측 제공

그 사이 군사망사고규명위도 지난해 12월 13일 이 사건을 직권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군사망사고규명위는 지난해 12월 20일 유족에 통지한 결정서를 통해 “이 사건은 진정접수 기간이 도과됐으나, 국가유공자 및 보훈보상대상자 등록 등 망인(亡人·사망자)에 대한 구제조치가 완료되지 않아 군사망사고규명위원장의 직권조사 지시 및 사망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에 유족 측은 지난 9월 “군사망사고규명위가 현재 조사 중이므로 그때까지 결정을 미뤄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서울고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족 측 최정규 변호사(원곡 법률사무소)는 “재정신청 처리 기간이 재판부마다 제각각인 가운데 군사망사고규명위가 이 사건을 조사 중인데도 서둘러 결정한 이유가 불분명하다”며 “결정문상 기각 이유도 달랑 한 줄뿐이라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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