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조준우 일병 사건과 관련 유족이 법원에 군 부실수사 의혹에 대해 재정신청을 했지만 최근 기각된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신청이란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사건에 대해 법원이 다시 판단해달라는 것으로 법원이 신청을 받아들여 공소제기를 결정하면 검사는 따라야 한다.
조 일병 사건은 별도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송기춘)에서도 조사 중이다. 유족 측은 “군사망사고규명위 조사 결과에 따라 군의 부실수사 의혹이 확인될 가능성이 높은데도 서둘러 기각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25일 즉시항고장을 제출했다.
서울고법 형사30부(부장 배광국·조진구·이혜란)는 지난 18일 조준우 일병 사건 부실수사 및 은폐 의혹 사건에 대한 유족 측의 재정신청을 기각했다. 지난 7월 이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부터 이송받은 서울고법은 유족 측의 요구에도 심문기일 없이 약 4개월 만에 기각 결정했다. 기각 이유는 “이 사건 기록과 신청인이 제출한 모든 자료를 살펴보면, 군 검사의 불입건 처분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고, 달리 위 처분이 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자료가 부족하다”는 내용 한 줄이었다.
조준우 일병 사망 사건은 2019년 1월에 입대한 국군지휘통신사령부 5정보통신단 소속 조 일병(당시 20세)이 같은 해 7월 첫 휴가 중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다. 그는 2017학년도 수학능력시험에서 전국 2등의 성적으로 서울대에 입학하는 등 미래가 촉망받는 청년이었다.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현 군사경찰단), 보통검찰부는 조사 결과 조 일병이 불면증과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판단했고 육군 보통전공사상심사위는 2019년 12월 ‘자유롭지 못한 군 환경’ ‘생활의 단조로움’ ‘연등’(취침시간 이후 점등해 공부 등을 하는 것) 등에 따른 스트레스가 사망 원인이라며 ‘일반사망’ 판정했다. 조 일병의 부모 등 유족은 군 수사기관에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유족은 직접 발 벗고 나서 조사하기 시작했다. ▶조 일병과 같은 부대에서 근무한 선후임 등을 직접 면담하고 ▶조 일병의 생전 일기장을 분석하는 한편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조 일병 복무 당시 부대 운영상황 등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해당 부대 병사들이 과도한 당직 근무에 시달려 왔고, 한 간부의 지속적인 괴롭힘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따라 순직 여부를 재심사한 국방부 전공심사위는 지난해 8월 조 일병에 대해 업무 과중과 부대 간부의 비위 행위에 따른 스트레스를 인정해 ‘순직’ 판정했다.
유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사건을 맡은 군 수사관이 처음부터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며 2020년 10월 담당 수사관을 직무유기·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육군본부 보통검찰부에 고소했다. ▶수사자료 등 사실관계 일부를 확인하지 않았고 ▶국선변호인 지원 절차 안내를 누락했으며 ▶심리 부검 요청도 거부당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군 검찰은 지난해 8월 “수사상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이에 유족은 곧바로 재정신청을 했지만, 고등군사법원은 약 1년간 심리를 미뤘다. 그러던 중 이예람 중사 사건에 따른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고등군사법원이 지난 7월 1일 자로 폐지되자 사건은 서울고법으로 이송됐다.
그 사이 군사망사고규명위도 지난해 12월 13일 이 사건을 직권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군사망사고규명위는 지난해 12월 20일 유족에 통지한 결정서를 통해 “이 사건은 진정접수 기간이 도과됐으나, 국가유공자 및 보훈보상대상자 등록 등 망인(亡人·사망자)에 대한 구제조치가 완료되지 않아 군사망사고규명위원장의 직권조사 지시 및 사망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에 유족 측은 지난 9월 “군사망사고규명위가 현재 조사 중이므로 그때까지 결정을 미뤄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서울고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족 측 최정규 변호사(원곡 법률사무소)는 “재정신청 처리 기간이 재판부마다 제각각인 가운데 군사망사고규명위가 이 사건을 조사 중인데도 서둘러 결정한 이유가 불분명하다”며 “결정문상 기각 이유도 달랑 한 줄뿐이라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