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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대란 확산, 정부 “업무개시명령 발동 검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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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호 01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화물연대 파업이 이틀째 이어지면서 산업 현장 곳곳에서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시멘트와 철강재의 공장 출하가 막히며 여파가 아파트 공사장 등 연관 산업으로 확산하고 있다. 주요 항만의 컨테이너 반출입량도 절반 이하로 줄면서 수출입 업체들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산업계로 피해가 확산하자 대통령실과 정부는 업무개시명령 발동 검토에 나섰다.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려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일각에선 가장 가까운 29일 정례 국무회의에 업무개시명령안이 상정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5일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로 꼽히는 둔촌주공 아파트 건설 현장은 콘크리트 타설을 하지 못해 공사를 중단했다. 시멘트 트레일러가 멈춰서면서 시멘트 출하량이 급감했고, 이로 인해 콘크리트가 제때 공급되지 못한 때문이다. 한국시멘트협회 관계자는 “파업 첫날 하루 20만t 출하가 예정돼 있었으나 실제 출하량은 1만t에 미치지 못했다”며 “25일부터는 시멘트 출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주요 시멘트 공장 앞을 점거하고 농성 중이다.

한일시멘트·성신양회·아세아시멘트 등 시멘트사들은 화물노조와의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24일부터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를 통한 육송 출하를 임시 중단했다. 3개 시멘트사 하루 출하량은 1만1000~3만t으로 육송 출하 비중이 60%에 달한다. 화물연대 충북지부는 전날 오전 한일시멘트 단양공장 출하문 앞에서 노조원 200여 명이 참석, BCT와 화물트럭 등 90여 대를 동원해 파업 출정식을 열었다. 이날 BTC 한 대가 시멘트를 싣기 위해 한일시멘트 단양공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노조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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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생산량의 40%가량은 철도가 담당하고 있지만, 다음 달 2일부터는 철도노조 파업이 예고돼 있어 시멘트 출하가 완전히 중단되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시멘트 출하량 감소 여파는 레미콘 업계로, 다시 건설 현장으로 확산하는 중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 필수재인 시멘트 수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화물연대 파업이 겹쳤기 때문에 공사 중단 현장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레미콘 업계 관계자도 “시멘트 제품 특성상 재고량이 한정돼 이틀 후부터는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다음 주까지 파업이 이어지면 전국 레미콘 공장의 절반 이상이 가동을 멈출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제철 철강재 5만t씩 쌓이고, 평택·당진항 하역 멈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총파업 이틀째인 25일 부산 남구 신선대(사진 아래) 및 감만(위) 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쌓여가고 있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대상 품목 확대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나섰다. 송봉근 기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총파업 이틀째인 25일 부산 남구 신선대(사진 아래) 및 감만(위) 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쌓여가고 있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대상 품목 확대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나섰다. 송봉근 기자

철강 업계도 출하 중단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현대제철은 포항과 당진 등 전국 공장에서 철강재를 내보내지 못하고 있다. 하루 평균 5만t 규모의 철강재가 공장 밖으로 반출되지 못해 내부에 쌓이는 중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다음 주부터 공장 내부에도 제품을 보관할 공간이 부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도 포항·광양제철소에서 생산한 철강재 출하길이 막혔다. 포스코 측은 “화물차를 통한 육로 운송이 중단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철강재는 자동차·조선·건설 등 연관된 산업이 다양한 만큼 출고 지연이 길어지면 산업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항만 화물도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에 따르면 이날 인천항 컨테이너 터미널의 화물 반출입량은 파업 전과 비교해 70% 넘게 줄었다. 24일 오후 4시부터 이날 오전 10시까지 집계한 컨테이너 반출입량은 2742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대)로 파업 전 동일 시간대(1만1409TEU)와 비교하면 76% 감소했다. 화물연대 인천지역본부에선 전체 조합원 1800여 명 중 1400여 명이 총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평택항과 당진항 컨테이너 부두 하역도 멈춰 섰다. 광양항 터미널 입구는 트레일러 차량으로 가로막혀 화물 운송이 불가능하다.

광주 서구 기아 제2공장에서 완성된 내수용 신차가 임시 번호판을 달고 광산구 평동 출하장으로 향하고 있다. 카캐리어 운송이 멈춰서면서 기아는 대체인력을 고용해 개별 운송하고 있다. [뉴시스]

광주 서구 기아 제2공장에서 완성된 내수용 신차가 임시 번호판을 달고 광산구 평동 출하장으로 향하고 있다. 카캐리어 운송이 멈춰서면서 기아는 대체인력을 고용해 개별 운송하고 있다. [뉴시스]

수도권 물류 거점 역시 차량 통행이 뚝 끊기면서 화물 반출입 물량이 대폭 줄었다.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 따르면 하루 평균 화물 반출입량은 3500~4500TEU에 이르지만, 24일 반출입량은 1386TEU에 그쳤다. 의왕 ICD 관계자는 “ICD 내 총 차량 605대 중 현재 이용 가능한 차량은 12대뿐”이라고 말했다. 기아 광주공장은 완성차를 운송하는 카캐리어가 운행을 멈춰 하루 2000대가량 생산되는 차를 보관할 공간이 부족해지자 임시방편으로 개별 운송을 시작했다. 광주 평동과 전남 장성 물류센터 등 제3의 차고지를 마련, 임시운행 허가를 받아 한 사람이 한 대씩 차고지까지 직접 운전해 차를 옮기고 있다.

수출입 기업들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25일 ‘집단 운송거부 긴급 애로·피해 신고센터’로 현장 기업의 피해사례 19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화물연대가 운송거부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전날인 지난 23일부터 24일 오후 6시까지 집계된 내용이다. 피해 사례 중에는 납품 지연에 따른 위약금 발생과 거래 단절을 우려하는 경우가 많았다. 동남아시아에서 냉동 수산물을 수입해 국내에 판매하는 A기업은 한·아세안 및 한·베트남 협정에 따라 최근 6개월치 물량을 낙찰 받아 선적을 마쳤다. 다음달 30일까지 수입절차를 마무리해야 하지만 화물연대 파업으로 수입·검역 과정이 지연되고 있다. 만약 이행 기간을 지키지 못하면 앞으로 1년간 입찰에 참여할 수 없고 세금 감면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시멘트 출하 중단으로 타설 작업이 중단된 서울 둔촌주공 재건축 아파트 현장. [연합뉴스]

시멘트 출하 중단으로 타설 작업이 중단된 서울 둔촌주공 재건축 아파트 현장. [연합뉴스]

물류비 증가나 원·부자재 반입 차질에 대한 불편 신고도 있다. 생활용품을 수출하는 B기업은 인천 컨테이너 터미널의 반출일을 지키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이렇게 되면 지체료와 체선료, 보관료 등의 물류비가 매일 추가로 발생하고 이 비용은 모두 B사가 떠안아야 한다. 미용 의료기기를 수출하는 C사는 화물차를 예약하지 못해 곤란한 상황이다. 대체 수단을 찾는다 해도 화물연대가 진입 자체를 막고 있는 바람에 납기를 맞추지 못할까 우려하고 있다.

산업계로 피해가 이어지자 경제 단체들은 한목소리로 파업 중단 촉구에 나섰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업종별 단체들은 이날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노동계 총파업에 대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지난 6월 화물연대 운송 거부로 우리나라 핵심 산업에서 1조6000억원이 넘는 피해가 발생한 바 있다”며 “산업물류를 볼모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겠다는 화물연대 투쟁에 공감할 국민은 거의 없다”며 즉각 운송에 복귀할 것을 당부했다.

변영만 한국철강협회 부회장은 “정부도 이미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에 철강재는 포함할 수 없다고 밝혔기 때문에 파업을 중단하고 물류 운송에 차질 없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중소기업중앙회·대한전문건설협회 등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화물연대가 엄중한 경제 상황 속에서 대화와 협력을 저버리고 집단 운송 거부에 돌입한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하루빨리 운송 거부를 철회하고 업무에 복귀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는 산업현장에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운송 방해 등 불법행위에 대해서 엄정한 법 집행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대통령실과 정부는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 화물연대에 대해 업무개시명령 발동을 검토 중이다.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가 경제 활동에 심각한 피해를 안길 수 있다는 점에서 ‘선제 조치’가 급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어명소 국토교통부 2차관은 이날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화물연대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의 요건 등에 대해서 심도 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어 차관은 “화물연대가 집단 운송 거부를 (지난 6월에 이어) 1년에 두 차례나 한 건 노무현 정부 때 이후 처음”이라며 “정부는 화물차주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대화하겠지만 명분 없는 집단행동에는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14조에 따라 국토부 장관은 운송사업자 또는 운수종사자에게 업무개시를 명령할 수 있다. 어 차관은 “노 전 대통령 때 화물연대 집단 운송 거부로 부산항이 마비되고 피해가 컸다”며 “그래서 노 전 대통령 때인 2004년 법을 개정해 업무개시 명령제도를 도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선 대화를 하겠지만, 대체 운송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집단 운송 거부가 오래가면 국가 경제에 너무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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