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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급감해도 출산율 韓보다 높다...英 '시빌 파트너십'의 비밀

중앙일보

입력

런던 아이

영국에서 이성애자 최초로 2019년 12월 31일 시빌 파트너십을 등록한 리베카 스타인펠드(왼쪽 둘째)와 찰스 케이단 커플. 이들은 “동성애자에게만 시빌 파트너십을 인정하는 것은 차별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제기해 2018년 6월 승소했다. [AP=연합뉴스]

영국에서 이성애자 최초로 2019년 12월 31일 시빌 파트너십을 등록한 리베카 스타인펠드(왼쪽 둘째)와 찰스 케이단 커플. 이들은 “동성애자에게만 시빌 파트너십을 인정하는 것은 차별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제기해 2018년 6월 승소했다. [AP=연합뉴스]

샘과 재스민은 9년째 교제 중이다. 그들은 함께한 대부분의 시간 동안 같이 살았다. 런던 북부에 공동명의로 된 집을 소유하고 있으며, 강아지 로켓을 키우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샘과 재스민은 은행 공동계좌에서 관리비 같은 주거비용을 함께 지불하고 서로의 친척이나 가족을 방문하며 휴가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결혼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결혼하지 않을 생각이다. 영국에는 결혼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이 둘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연인으로 함께 살면서도 결혼한 부부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큰 비용을 들여 결혼식을 올리거나 그들의 관계를 확인하는 증명서를 얻기 위한 법적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각 “결혼 제도 성차별 등 불평등”

영국에서 이성애자 최초로 2019년 12월 31일 시빌 파트너십을 등록한 리베카 스타인펠드(왼쪽 둘째)와 찰스 케이단 커플. 이들은 “동성애자에게만 시빌 파트너십을 인정하는 것은 차별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제기해 2018년 6월 승소했다. [AFP=연합뉴스]

영국에서 이성애자 최초로 2019년 12월 31일 시빌 파트너십을 등록한 리베카 스타인펠드(왼쪽 둘째)와 찰스 케이단 커플. 이들은 “동성애자에게만 시빌 파트너십을 인정하는 것은 차별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제기해 2018년 6월 승소했다. [AFP=연합뉴스]

“솔직히 결혼이라는 전통은 시대에 뒤처진다고 생각해요. 결혼의 많은 부분이 우리 관계를 정의하는 데 맞지 않아요. 성차별적이고 종교적이라고 느껴집니다. 영국에서는 법적으로 결혼하는 것에 대한 이점이 없어요. 혼인증명서 한 장이 원래 할 수 없었던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진 않거든요”라고 샘은 말했다.

영국에서 결혼은 배우자 자동 상속권, 자녀 양육 평등권, 재산 공동 소유권 등의 법적 혜택이 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세금을 내지 않고, 다른 한 사람은 최저 세율을 적용받는 저임금 근로자일 경우엔 세금 감면도 받을 수 있다.

이 모든 혜택은 사실혼 관계를 뜻하는 ‘시빌 파트너십(civil partnership)’에도 적용된다. 시빌 파트너십 커플은 결혼하지 않고도 두 사람의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받는다. 샘과 재스민은 결혼 대신 이런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내재한 불평등을 피하기 위해서다.

결혼 제도의 불평등은 한국과 영국 등 많은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영국의 전통 결혼식에서 신부의 아버지는 신부를 그녀의 남편에게 넘겨준다. 전통적인 결혼식에서는 식후 피로연에 신부의 아버지, 신랑, 신랑의 가장 친한 친구만 초대받아 연설한다. 이런 전통은 역사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남녀 불평등을 드러낸다. 신부의 가족이 신랑에게 신부를 보낸다는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요즘 젊은 층에 결혼이 성차별적이라고 느끼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결혼을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영국에서는 시빌 파트너십을 맺었든, 안 맺었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커플이라면 누구나 함께 아이를 키우고 공동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다. 샘은 “공동명의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것은 요즘 시대에 두 사람 사이의 큰 약속처럼 느껴집니다. 일단 나와 파트너가 수십만 파운드 상당의 대출을 함께 갚아 나가며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은행에 약속했다면, 같은 의도를 전하기 위해 정부에 돈을 지불하는 한 장의 종이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영국 윌리엄 왕자와 캐서린 왕세자빈. [AP=연합뉴스]

영국 윌리엄 왕자와 캐서린 왕세자빈. [AP=연합뉴스]

행정적으로도 영국에서 결혼은 점점 더 중요하지 않다. 결혼한 커플들은 결혼 시 혼인증명서를 받기는 하지만, 해당 증명서를 혼인 관계 증명을 위해 제출해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관계 증명서’ 같은 서류는 영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우편으로 받은 공과금 청구서나 은행 명세서를 보여 주면 된다. 이것이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알려 주는 가장 흔한 방법이다.

결혼하지 않는 커플에 대한 편견이 어느 정도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기성세대 사이에서나 존재한다. 사실 결혼을 했는지 여부는 다른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다. 자녀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갈 때조차 부모가 결혼한 상태인지 아닌지를 해당 기관은 알 수 없다.

올해 초 발표된 정부 자료에 따르면 영국의 혼인 건수는 2019년 기준 21만9850건으로 전년 대비 6.4% 감소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영국은 2014년부터 동성결혼을 허용하고 있으며, 2019년 기준 전체 혼인 건수 중 6728건이 동성커플이었다.

영국의 혼인 건수는 1972년 이후 50% 감소했다. 2019년 기준 이성 간 결혼의 경우 18세 이상 남성 1000명당 18.6명, 여성 1000명당 17.2명만이 결혼했다. 혼인한 경우 가운데서도 종교의식을 통한 결혼은 18.2%에 불과했는데, 이는 역대 최저 수치이며 지난 20년 동안 60% 감소한 것이다. 이렇게 낮은 혼인율에 대해 정부는 샘과 재스민 같은 많은 커플이 결혼을 포기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출산율도 코로나 이후 감소 추세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와 ‘퍼스트 걸프렌드’ 캐리 시몬스는 지난해 5월 29일 정식으로 결혼했다. [EPA=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와 ‘퍼스트 걸프렌드’ 캐리 시몬스는 지난해 5월 29일 정식으로 결혼했다. [EPA=연합뉴스]

영국 통계청의 건강·생활 분석 담당 제임스 터커 박사는 “이성 간 결혼 건수는 1972년 이후 50% 감소했다. 이는 결혼을 미루거나, 결혼을 하지 않고 함께 살기로 선택하는 남녀의 수가 증가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결혼만큼 빠르게 줄고 있는 건 아니지만 출산율도 감소 추세다. 2021년 기준 영국에서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평균 자녀 수를 나타내는 출산율은 여성 1명당 1.61명이다. 이는 전년보다 1.9% 증가한 수치지만 코로나19 이전보다는 2.4% 감소한 것이다. 한국의 출산율은 여성 1명당 0.81명이다. 영국의 출산율이 증가한 마지막 시기는 2002년부터 2012년인데, 이때 여성 1인당 1.94명이었다. 이 수치는 1960년대 초 2.93으로 정점을 찍고 점차 감소하고 있다.

다른 많은 나라처럼 영국도 자녀가 있는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혜택을 제공한다. 영국의 모든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는 시점부터 16세 생일까지 매주 아동수당을 받을 수 있다. 자녀가 16세 이후에도 학업을 계속하는 경우 20세까지 아동수당이 지급된다. 영국에서는 16세부터 학교를 떠나 취업할 수 있다.

정부가 지원하는 자녀 양육비는 첫째 자녀의 경우 주당 21.8파운드(약 3만4000원), 추가 자녀 1인당 주당 14.45파운드(약 2만3000원)이다. 모든 자녀에 대해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1년에 5만 파운드 이상의 소득을 가진 부모들은 결국 소득세가 증가해 그중 일부를 갚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저소득층 산모나 18세 미만의 산모, 첫 출산의 경우엔 약 500파운드의 추가 보조금이 제공된다. 소득 계층에 따라 다르지만 세금 공제 및 초보 엄마와 아이들이 건강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쿠폰도 지급된다.

영국의 의료 서비스는 모두에게 무료이지만 치과 치료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18세 미만과  임산부는 무료로 치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런 혜택은 폴과 조지아처럼 이제 막 한 살이 된 아들 노아를 둔 미혼 부부에게도 적용된다. 폴은 “우리가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어떤 식으로도 우리 아이나 우리 삶에 전혀 불리하지 않다”고 말한다. “결혼 전에 아이를 낳는다는 것에 대해 편견을 가져 본 적이 없어요. 더는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언젠가 결혼을 하겠죠. 하지만 결혼식에 드는 비용이 너무 비싸요. 우리는 결혼식을 올릴 수 있을 때까지 아이 갖기를 미룰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혼인증명서 같은 종이 한 장보다 훨씬 더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번역: 유진실

짐 불리(Jim Bulley) 코리아중앙데일리 에디터 jim.bulley@joongang.co.kr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한때 영국 지역 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한국에 왔고 현재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스포츠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KBS월드, TBS(교통방송), 아리랑TV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진행자 및 패널로 출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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