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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도어스테핑 2.0’을 기다린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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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호 35면

한경환 총괄 에디터

한경환 총괄 에디터

월요일인 지난 21일부터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1층 로비의 아침 풍경이 달라졌다. 청와대에서 살았던 전직 대통령들과는 달리 외부에서 매일 청사로 출퇴근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아침마다 출입기자들과 만나 약식회견하던 ‘도어스테핑(door stepping)’이 사라졌다. 취임 다음 날인 지난 5월 11일 윤 대통령이 자청해서 문을 열었던 도어스테핑은 지난 11월 18일 61번째 출근길 문답을 마지막으로 194일 만에 문을 닫았다.

국민과의 소통 위한 출근길 문답
언론과 불편하다고 폐지해서야
K-정치, K-민주주의 도어스테핑
운영의 묘 살려 업그레이드했으면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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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스테핑 중단에 대한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운영 중단 처사가 ‘옹졸하다’며 비판하는 쪽과 ‘그렇지 않아도 큰 도움도 안 됐는데 잘됐다’고 반기는 여론이 팽팽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3일 “전용기 탑승 배제,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 공영방송 민영화 겁박, 도어스테핑 중단 같은 언론 탄압이 가히 전방위적”이라며 “유신 정권의 동아일보 광고 중단, 전두환 정권의 보도 지침,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를 능가하는 가히 ‘언론 자유 파괴 종합판’이라고 할 만하다”고 비판했다. 반면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21일 “대통령의 국정 능력에 대한 자신감으로 시작한 것이지만, 파이널 디시전(최종 결정)을 하는 대통령이 매일같이 결론을 미리 발표하는 것은 적절치 못했다”라며 “때늦은 감은 있지만 참 잘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출근길 문답은 제도나 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 억지로 하라고 떠민 것도 아니다. 윤 대통령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시작한 거다. 따라서 사유가 합당하다면 스스로 중단할 자유도 있다고 본다.

도어스테핑을 중단한다고 해서 표현의 자유를 박탈한다거나 언론을 탄압했던 군사독재 시절로 회귀한다는 주장은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윤 대통령이 소통의 성과로 자부했던 도어스테핑을 스스로 중단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도어스테핑 해프닝은 한국의 권력과 언론 관계의 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다. 김영삼(YS) 문민정부 이전까지는 정권이 언론에 압도적인 힘을 행사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전두환 시대에는 언론통폐합을 감행할 정도로 막강했다.

민주화 이후 언론의 자유는 만개했지만 공영방송은 늘 정권의 전리품처럼 여겨졌다. 정권 교체는 곧 공영방송의 수뇌부 교체라는 바퀴와 맞물려 돌아갔다. 진보와 보수 양 진영으로 극단적으로 분열된 상황에서 공영방송은 늘 정권의 ‘우리 편’ 차지가 돼야 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들도 그 연장 선상에 있는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삼청동 청와대 시대 출입기자들은 별채인 춘추관에 머물면서 대통령은 물론 비서실 관계자들조차 제대로 대면 취재할 수 없었다. 노무현 시대에는 기자실에 대못을 박아 대다수 부처의 출입기자들을 쫓아내고 허가 없이는 공무원을 만날 수도 없게 했다.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를 떠나 용산에 대통령 집무실을 마련한 가장 큰 취지 중 하나는 국민과의 소통이었다. 윤 대통령은 용산시대를 열면서 청사 1층에 기자실과 브리핑룸을 마련해 기꺼이 취재진과 한 공간에 머물렀다. 당선인 시절부터 언론 자유를 강조한 윤 대통령이 문을 연 도어스테핑은 국민에게 다가가는 상징적 시도였다. 대통령이 질문받고 견제받는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실험이기도 했다.

이런 정도의 파격은 우리보다 민주주의 역사가 긴 서구에서도 잘 찾아볼 수 없다. 조 바이든 등 미국의 대통령들도 백악관 출입기자들과 웨스트윙 브리핑룸이나 사우스론에서 자주 만나지만 한국의 도어스테핑 정도는 아니다. 유럽에서도 매일 아침 총리나 대통령이 정례적으로 기자들과 대면 회견을 하지는 않는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출근길 문답으로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당장 그만두라는 분들도 많이 계셨지만 도어스테핑은 제가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긴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말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직 수행 과정이 국민에게 투명하게 드러나고 국민들로부터 날 선 비판과 다양한 지적을 받아야 한다”며 “(도어스테핑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도어스테핑은 잘만 운영하면 K-정치, K-민주주의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을 수도 있다. 무슨 일이나 초기에는 삐걱대기 마련이다. 시행착오가 생긴다고 해서, 언론과의 관계가 불편하다고 해서 도어스테핑을 아예 폐지해 버린다면 국민과의 소통은 점점 더 막히게 될 것이다.

대통령실은 물론 언론도 모처럼 조성된 좋은 기회를 발로 차서는 안 된다. 서로 한걸음씩 물러나서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당분간 냉각기를 가질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과 정부, 보좌진은 더욱 성숙한 자세로 언론과의 관계를 잘 헤쳐나가야 한다. 때마침 여당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3일 “대통령이 그냥 (도어스테핑) 질문을 받기 전에 어떤 이슈에 대해 함께 정리도 해 보고 하는 사전 조율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홍보수석실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한국 언론이 당파적이고 권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럴수록 소통이 더욱 중요하다. 운영의 묘를 살리고 서로 예의를 지킨다면 지속가능한 ‘도어스테핑 2.0’을 얼마든지 새로 만들어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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