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漢字의 비밀] 淸心丸(청심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15호 35면

한자의 비밀

한자의 비밀

지난주에는 51만에 육박하는 수험생이 수능에 응시했다. 예전 학력고사를 본 수험생이 어느덧 수능 수험생의 학부모가 되었으니 쏜살같이 흘러가는 세월에 만감이 교차한다. 학력고사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 부모님이 챙겨 주신 청심환을 복용하면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던 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그때만 해도 수험생뿐 아니라 학부모조차 심리적 부담과 긴장을 해소하고자 청심환을 복용하던 시절이었다.

청심환은 심장의 열을 풀어 주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처방으로 쓰였고, 중풍(中風)으로 말을 못하는 증상이나 어질어질하면서 속에 번열(煩熱)이 나고 갑갑한 증상을 치료하는 데도 널리 사용됐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신하들이나 사신들에게 청심환을 하사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 연행록(燕行錄) 관련 자료를 살펴보면 조선에서 제조한 청심환이 중국에서 유행하고 품귀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린다. 심지어 중국 사신이 조선을 방문해 직접 청심환을 요청하는 일도 있을 정도였다. 조선 사신은 청심환을 예단(禮單)과 정비(情費)의 용도로 사용할 뿐 아니라 중국 명소를 방문할 때 면폐(面幣), 면피(面皮) 명목으로 뇌물로 주거나 중국 문인들과 교류할 때 호의에 대한 답례로 혹은 감사한 마음으로 선물했다.

중국에서는 가짜 또는 저질 청심환이 널리 유통, 매매되어 육안(肉眼)·촉진(觸診)·분해(分解) 등의 방법으로 청심환의 진위를 감별하는 상황까지 초래한다. 그중에는 손바닥에 청심환을 놓고 냉기의 여부에 따라 진위를 가리는 방법도 있는데, 냉기가 어깨까지 이르면 진품(眞品)이고 팔뚝에 이르면 범품(凡品)이며 손바닥에 그치면 가짜로 여겨졌다.

청심환과 관련한 다양한 사실과 정보는 이조원(李肇源)의 『청심환가(淸心丸歌)』에서 상세하게 드러난다. 이 책에 따르면 청심환은 중국에서 신단(神丹)으로 불릴 정도로 온갖 질병에 효험을 보였다고 한다. 따라서 사람의 생사 여부가 청심환의 유무에 결정되어 요동(遼東)에서 북경(北京)에 이르는 노정에는 청심환을 얻으려 몰려드는 인파로 장사진(長蛇陣)이 펼쳐질 정도였다.

청심환은 예나 지금이나 집집마다 구급약으로 상비하고, 여행 중 비상사태를 대비해 휴대하는 필수품 중 하나다. 이번 수능에 응시한 수험생과 학부모도 청심환을 복용하며 심신의 안정을 찾았으리라 생각한다.

최식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HK연구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