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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파이’ 원금 지급 지연, 위믹스 상폐…암호화폐 불안감 확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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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호 06면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도 위기

세계 3위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파산 사태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FTX는 미국 델라웨어주 파산 법원에 제출한 문서에서 현금 잔고가 총 12억4000만 달러 규모라고 밝혔다. 이는 이 업체가 무담보 채권자 상위 50명에게 갚아야 할 부채 규모(약 31억 달러)보다도 태부족한 액수다. FTX 경영진은 회사 매각 또는 구조조정 등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가 FTX 인수 계획을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한 가운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이미 FTX에 대한 위법 행위 여부 조사에 착수했다.

이달 초 1조500억 달러(약 1422조원) 규모였던 글로벌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FTX 사태 이후 현재 7400억 달러(약 1002조원) 규모로 30%가량 감소했다. 같은 기간 2만1000달러 선이던 비트코인 가격도 1만6000달러 선까지 주저앉은 상태다. 문제는 이번 사태로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점이다. 블록체인 분석 업체 코인게코에 따르면 조사 대상 30개국 중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한국에서 FTX 웹사이트에 접속한 월간 사용자 수는 평균 29만7229명이었다. 전체의 6.1%로 싱가포르(5.0%)·일본(4.6%)·러시아(4.1%) 등보다 앞선 1위였다. 이에 외신들은 뱅크런(대규모 자금 인출)이 가속화한 FTX에서 한국 투자자들의 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인기 끈 위믹스, 유통량 오류로 상장폐지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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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기준 시가총액 55조원 규모로 형성된 국내 암호화폐 시장도 고스란히 영향을 받고 있다. 사태 직후 1주일간 국내 5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의 거래량은 사태 이전보다 5분의 1로 감소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는 안전할지 의구심이 그만큼 증폭됐다는 얘기다. 투자자 김성철(가명·37)씨는 “세계 3위 거래소도 망해서 (투자자들이) 돈을 돌려받지 못할지 모른다는 말이 나오는데 국내 거래소 사정은 더 열악하지 않겠느냐”며 “이미 (시세 하락으로) 큰 손실을 입었지만 남은 돈이라도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얼마 전 모두 인출했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우려처럼 국내 거래소도 파산이나 디폴트(채무 불이행) 같은 극단적인 위기에 몰릴 수 있을까. 우선 국내 5위 거래소인 고팍스가 일시 위기에 처하면서 투자자들의 불신도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4일 고팍스 측은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 ‘고파이’의 고정형 상품 출금(지급)이 지연될 예정”이라며 “고객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제네시스, 디지털커런시그룹(DCG)과 소통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파이는 고팍스 고객이 보유 중인 가상자산을 일정 기간 맡기면 이에 대해 이자를 주는 상품이다. 고팍스는 그간 이렇게 고객들이 맡긴 가상자산을 미국의 암호화폐 중개 업체 제네시스를 통해 운용해왔다. DCG는 미국의 암호화폐 전문 벤처캐피탈로 제네시스의 모회사다.

그런데 FTX 사태 여파로 연쇄 뱅크런 등을 우려한 제네시스가 신규 대출·환매를 중단하면서 고파이의 고객 자산도 묶였다. 24일이 고파이 고정형 상품의 원리금 지급 만기일이었는데 고팍스 측이 결국 지급하지 못해 이를 공지한 것이다. 언제든 가상자산을 입출금할 수 있는 자유형 상품 출금도 이미 지연되고 있는 상태다. 고팍스는 고파이를 6주 안에 정상화하는 것을 목표로 다른 글로벌 블록체인 업체 투자 유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 시점에선 정상화가 불확실할뿐더러, 고팍스 측이 강조한 “고파이 외에 일반 가상자산 매매를 위해 예치한 자금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의 신뢰도에도 금이 간 게 사실이다.

FTX 사태 여파가 이처럼 국내 5위 거래소까지 뒤흔들자, 4대 거래소는 투자자들의 불신을 잠재우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코빗은 업계 최초로 보유한 가상자산 수량과 지갑 주소를 공개한다고 16일 밝혔다. 이로써 코빗 고객들은 웹사이트를 통해 코빗에 상장된 모든 가상자산에 대해 매일 코빗 측이 보유한 수량과,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지갑 주소까지 알 수 있게 됐다. 특히 지갑 주소 공개는 고객들이 거래소의 암호화폐 거래 내력까지 상세히 확인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오세진 코빗 대표는 “코빗은 지금껏 항상 법규를 준수하면서 투명하게 경영한다는 원칙을 지켜왔다”며 “앞으로도 고객들이 믿고 이용할 수 있는 거래소를 만드는 데 사활을 걸겠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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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원은 최근 약 3주간 암호화폐 관련 내부 보안 감사를 실시했다고 24일 밝혔다. 리스크를 최소화하도록 내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코인원은 전문 회계법인을 통해 분기별로 암호화폐 및 원화에 대한 실사 보고서도 공개하고 있다. 1·2위 거래소인 업비트·빗썸도 서비스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적극 어필하고 있다. 업비트는 2018년부터 보유 중인 암호화폐와 원화에 대한 실사 보고서를 분기별로 공개하고 있다. 업비트 관계자는 “국내에 마땅한 (암호화폐 관련) 법규가 없던 시절부터 선제적으로 투명한 정보 공개에 힘썼다”고 설명했다. 빗썸은 싸이월드 브랜드와 무관한데 비슷한 이름으로 투자를 유치해 불법성이 의심된다는 지적을 받아온 ‘싸이클럽’ 코인을 22일 상장폐지,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

빗썸경제연구소는 22일 보고서에서 “한국판 FTX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없다”고도 주장했다. 보고서는 그 근거로 국내 거래소들이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이른바 특금법에 따라 투자자 보호 조치를 엄격하게 이행 중인 점을 들었다. 구체적으로 ▶은행을 통한 고객 예치금 분리 보관 의무 ▶거래소 자체 가상자산 발행 및 담보 활용 불가 ▶주기적인 재무제표 외부 감사 및 실사 보고서 공시 등 3가지 투자자 보호 정책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현행 특금법에선 거래소 이용자 예치금 관리에 대해 금융위원회의 검사·감독과 은행을 통한 감독이라는 이중 감독 체계를 두고 있어 안전하다는 주장이다.

FTX 사태의 주요 원인이었던 거래소 자체 발행 암호화폐를 담보로 한 위험투자 역시 현행 특금법상 불가능하다. 특금법에서 암호화폐 사업자 또는 사업자의 특수관계인이 발행한 암호화폐의 매매·교환을 중개·알선·대행하는 행위는 제한하고 있어서다. 적어도 직접적인 제2의 FTX 사태 가능성은 작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현행 규제의 맹점을 간과한 지나친 낙관론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현재 투자자가 거래소에 맡긴 현금엔 분리 보관 의무가 부여되지만, 암호화폐엔 이런 의무가 부여되지 않는다. 암호화폐를 현금화하지 않은 경우엔 투자한 돈을 규제 사각지대에서 고스란히 날릴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금융당국 ‘한국판 FTX’ 가능성 파악 중

거래소들에 대한 금융당국의 직접 제재 권한이 없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내 거래소들이 최악의 경우 현금 부족을 이유로 투자자에 대한 지급을 거부해도 현재로선 법적으로 이를 제재할 권한이 없다”고 전했다. 거래소뿐 아니라 국내에서 발행되는 코인의 안전·신뢰성에 대한 우려도 끊이지 않고 있다. 게임 업체 위메이드가 발행하는 ‘위믹스’ 코인은 국내 투자자 사이에서 전도유망한 종목으로 인식돼 최근까지 인기를 모았지만, 지난달 말 돌연 각 거래소에서 ‘투자 유의’ 종목으로 지정됐다. 당초 알려졌던 위믹스의 유통량과 실제 유통량에 1000만개 이상의 차이가 있음이 드러나서다.

위믹스는 유통량 업데이트 중 시차로 발생한 단순 오류라고 설명했지만, 시장의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 채 5대 거래소로 구성된 공동협의체(DAXA)의 상장폐지 여부 심사 대상이 됐다. 그리고 24일 DAXA는 회의를 통해 위믹스의 상장폐지를 최종 결정했다. 이에 따라 5대 거래소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7~10일의 상장폐지 예고 기간을 갖고 최종 거래지원 종료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이로써 지난 5월 ‘루나’ 코인의 글로벌 상장폐지 사태 이후 투자자들은 또 한 번 한국 코인에 대한 신뢰감을 잃게 됐다.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는 “지금은 오류가 다 해결됐고, 거래소들이 위믹스의 관리 상태를 못 믿겠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은 각 거래소 등을 통해 한국판 FTX 사태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 중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지난 17일 국내 가상자산 사업자 36곳에 자체 발행 암호화폐 현황 등을 문의, 최근 27곳의 거래업자들로부터 “취급하는 자체 발행 암호화폐가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받았다. FIU는 앞서 16일엔 5대 거래소 대표들과 간담회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거래소들은 “특금법에 따라 고객 예치금이 실명 계정 발급 은행에서 구분 관리되고 고객의 가상자산도 주기적으로 실사해 외부 공표하고 있다”며 “또한 사업자의 가상자산 발행이 제한돼 한국판 FTX 사태가 벌어지긴 어렵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만전을 기하고 있다. 21일 금융위가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금융위는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이 발의한 ‘디지털자산 시장의 공정성 회복과 안심 거래 환경 조성을 위한 법률안’에 대해 대체로 수용 의사를 표명했다. 이 법안은 해킹·전산 장애 등 사고 보상에 대비한 보험 가입 등을 규정하고, 불공정 거래 위험성이 큰 자기 발행 디지털자산의 거래를 제한하며, 디지털자산의 임의적 입출금 차단 금지를 사업자가 위반할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금융위에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감독·검사 권한을 부여하고, 이를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각종 권한까지 규정했다.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도 국회에서 발의된 새 법안 도입에 대한 환영 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면서 추가 의견도 전하고 있다. 한국디지털자산사업자연합회(KDA)는 24일 “현재 국회에서 심의 중인 새 디지털자산 관련 법안이 거래소만 규제해선 투자자 보호에 한계가 있는 점을 고려, 암호화폐 발행자 규제 내용을 동시에 담아야 한다”고 평했다. 아울러 국내 거래소 상장 암호화폐를 대상으로 정보 비대칭 해소를 위한 한글 백서 발행 의무화 등의 조치를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성후 KDA 회장은 “추가 의견들이 국회 법안 심사 과정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정치권 및 금융당국과 다양한 방법으로 적극 협의하겠다”며 “각계가 투자자 피해를 막고 관련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공동 노력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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