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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 참고 검투사 투혼 발휘 손흥민, 원팀 코리아 만들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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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호 02면

[카타르월드컵] 한국·우루과이전 관전평

[The JoongAng Plus - 안정환의 카타르시스]

대한민국 캡틴 손흥민이 지난 24일 카타르 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우루과이전에서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캡틴 손흥민이 지난 24일 카타르 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우루과이전에서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가 끝난 뒤 손흥민(30·토트넘)이 안와골절 수술을 받은 날짜를 다시 찾아봤다. 11월4일.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한국-우루과이전이 11월 24일에 열렸으니, 손흥민이 수술을 받고 불과 20일 만에 풀타임을 뛴 거다. 손흥민은 아직 통증이 남아 있지만 참고 뛰고 있다는 전언이다.

경기 전, 검정색 안면 보호 마스크를 쓴 손흥민은 영화 ‘글레디에이터’의 검투사처럼 비장해 보였다. 터널에서 중앙수비 김민재(나폴리)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애국가를 힘차게 부를 땐 결의가 느껴졌다.

후반 10분 우루과이 마르틴 카세레스가 뒤에서 손흥민의 발뒤꿈치를 밟았다. 축구화가 벗겨지고, 양말이 찢어질 정도의 충돌이었다. 그렇게까지 밟을 필요는 없었는데.... 내가 경기를 앞두고 걱정했던 부분이다. 상대는 천하의 메시라도 아프다고 봐주지 않는다. 손흥민은 그라운드에 오래 누워있는 선수가 아닌데 상대 발에 손까지 밟혀 고통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꿋꿋하게 일어났다.

상대와 부딪힐 땐 좀 버거워 보이기도 했다. 경기가 잠시 중단된 사이에 손흥민이 마스크를 벗었다가 고쳐 쓰고, 마스크 속에 고인 땀을 털어냈다. 그런데도 최선을 다해 뛰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본인이 아프고 정상 컨디션이 아닌데도 나라를 위해 뛰겠다고 자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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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을 앞두고 앞장서 경기장에 들어서는 손흥민의 뒷모습이 든든했다. 손흥민은 존재감만으로도 상대에 위협을 줬고, 동료들은 손흥민을 커버해주며 한 발 더 뛰었다. 이재성(마인츠)을 비롯한 모든 선수들이 헌신적으로 많이 뛰었다. ‘리더’가 저렇게 뛰니 그라운드 위 11명이 ‘원팀’이 되는 거다.

경기 후 인터뷰 때 손흥민 얼굴을 보니 부어있었다. 손흥민은 경기 전 선수들에게 “너희는 정말 잘하는 선수들이다. 너희 능력을 다 믿고, 쫄지 말고,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주장 (홍)명보 형이 “우리거 하자”라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누가 봐도 우루과이가 상대적으로 강팀이기 때문에 우리보다 심적 부담이 컸을 거다. 그런 탓인지 우루과이가 자기가 잘하는 걸 버렸다. 우루과이가 우루과이처럼 안 했다.

앞서 이번 대회에서 아르헨티나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충격패를 당했고, 독일이 일본에 덜미를 잡혔다. 우루과이는 원래 전방압박, 패스, 빠져나가는 움직임이 좋은 팀인데, 스피드가 좋은 손흥민에게 수비 뒷공간을 맞을까 두려웠던 것 같다. 때로는 두려움보다 부담감이 축구장에서 더 치명적이다.

우루과이는 ‘롱 볼 축구’를 하는 팀이 아닌데, 우리에게 계속해서 롱볼이 들어왔다. 중앙수비 김민재와 김영권(울산)이 잘 막아줬고, 골키퍼 김승규(알샤밥)의 판단력이 좋았다. 오른쪽 측면에서 나상호(서울)와 김문환(전북)이 흔들어주며 우루과이를 힘들게 했다. 정우영(알사드)은 중원에서 정리해줬고, 황인범(올림피아코스)도 침착했다.

한국은 전반전에 후방 빌드업부터 시작하지는 않았다. 앞서 언급한대로 상대의 전방압박 강도가 약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패스에 자신감이 붙다 보니 패싱축구를 이어갔다. 한국축구는 과거에는 상대가 원하는 걸 못하게 방해하는 축구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우리 주도로 경기를 운영하려고 했다. 2차례 골대가 대한민국을 살리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경기 운영이 좋았다.

24일 우루과이 카세레스가 뒤에서 밟아 찢어진 손흥민의 오른쪽 양말. [연합뉴스]

24일 우루과이 카세레스가 뒤에서 밟아 찢어진 손흥민의 오른쪽 양말. [연합뉴스]

오늘 경기 같은 경우엔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강인(21·마요르카)을 교체카드로 써도 되는 경기였다. 상대 압박이 느슨했다. 패스가 좋은 선수는 패스가 얼마나 잘 나가겠나. 후반 43분 이강인이 탈압박하며 상대선수 3명 사이로 왼발로 찔러준 전진 패스가 좋았다. 공격수 조규성(전북)은 잘생긴 외모가 화제더라. 교체투입돼 짧은 시간에도 반박자 빠른 슈팅을 때렸다. 축구 잘하면 잘생긴거다.

양 팀 다 유효슈팅이 0개였는데 21세기 월드컵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전반 추가시간도 1분에 불과했다. 그만큼 양 팀 감독이 분석을 잘하고 짜임새 있는 경기를 했다는 거다. 이제 한 경기 끝났을 뿐이다. 벤투 감독에 대해서도 섣부른 평가보다 최종 판단은 마지막에 하는 게 좋다.

이어 열린 같은 조 경기에서 가나가 포르투갈을 맞아 난타전 끝에 2-3으로 졌다. 28일 2차전에서 맞붙을 가나는 우루과이와 색깔이 다른 팀이다. 공격 시 전방압박이 좋았다. 전반에 수비가 견고했지만, 후반에 포르투갈의 압박에 흔들렸다. 물론 가나가 포르투갈을 상대할 때와 한국과 맞붙을 때는 전략 전술이 다를거다.

우리는 1차전에는 성공했다고 본다. 우루과이와 무승부는 괜찮은 결과다. 모든 경기가 끝나면 아쉬움이 남고, 분석하면 문제점이 나온다. 이제는 가나에 집중해야 한다. 가나 결과에 따라 포르투갈을 상대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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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 해설위원, 전 축구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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