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나치가 덮쳤을때" 친명 박찬대 시 낭송…野의총장 얼어붙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렸다. 이재명 대표와 박찬대 최고위원이 대화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렸다. 이재명 대표와 박찬대 최고위원이 대화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지난 22일 국회 본청 예결위원회 회의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의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는 한 편의 시(詩)가 비장하게 낭독됐다. 친명계 박찬대 최고위원이 의총 마무리 국면에서 연단에 나와 독일 반(反)나치 운동가인 마르틴 니묄러(1892~1984년) 목사의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라는 시를 읊었다.

박 최고위원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라며 말문을 뗐다. 그는 특유의 발성으로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라며 “그들이 내게 닥쳤을 땐,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줄 이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 독일에서 나치가 반대세력을 탄압했을 때 침묵했던 다수의 사회 구성원을 비판하는 내용의 시다.

박 최고위원이 이 시를 낭송하자 회의장 분위기는 일순간 얼어붙었다고 한다. 일부 의원들은 귀엣말을 하며 수군대기도 했다. 박 최고위원 측 인사는 “누구든 검찰의 표적이 될 수 있으니 ‘원팀’으로 이 사정 정국을 잘 헤쳐나가자는 게 낭송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의원들이 되레 거부감을 느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재선 의원은 25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당 지도부가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엄호하는 것도 정도껏이다. 박 최고위원이 마치 영혼이라도 판 것 같은 장면이었다”며 “박 최고위원과는 앞으로 정치 행보를 함께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성토했다. 또 다른 의원은 “한심한 장면이었다. 당 지도부가 자꾸 의원들을 상대로 의식화 교육을 시도한다”고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지난 8월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5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대표와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뒤 손을 맞잡아 들고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지난 8월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5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대표와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뒤 손을 맞잡아 들고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 지도부에 대한 개별 의원들의 거리감은 지난 16일 의원총회에서도 그대로 표출됐다. 박 최고위원 등 친명계 지도부가 이 대표 최측근 정진상 정무조정실장(구속) 관련 의혹에 대한 반론을 담은 책자를 나눠주자 이낙연계인 홍기원 의원이 “우리가 왜 이런 교육을 들어야 하냐”고 역정을 내기도 했다.

지도부가 ‘이재명 결사옹위’를 외치는 것에 대해 당내에서는 “친명계가 대부분으로 꾸려진 지도부의 태생적 한계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수도권 중진 의원은 “현 지도부는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인 ‘개딸’의 지지에 힘입어 이 대표를 엄호하려고 꾸려진 측면이 있다”며 “그렇다보니 당의 전략이 실제 민심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고, 지도부 내에서 확증편향이 지속되고 있다”이라고 지적했다.

뜨거운 쟁점이었던 정진상 실장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당직 사퇴가 최고위 회의에서 한 차례도 거론되지 않은 점도 확증편향의 사례로 꼽힌다. 이들은 지난 23일 당직 사의 의사를 밝혔는데 그마저도 이 대표는 김 전 부원장의 사의만 받아들이고 정 실장의 사의는 일단 반려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비명계 의원들이 물밑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그제야 이 대표가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상 민주당 당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정진상 민주당 당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최근 이 대표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비명계가 다수인 전·현직 전략기획위원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난 11일 민주당 최고위에선 김민석·강훈식·김영진·송갑석·조승래·문진석 의원 등 전·현직 전략기획위원장으로 구성된 ‘전략기획자문위원회’가 발족됐다. 이들은 격주 수요일마다 모임을 갖고, 이 대표에게 조언을 건넬 계획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전략기획위에는 비명계 의원들이 상당수 있어 친명 지도부와는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낼 것”이라며 “이 대표에게도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