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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 100점 와르르…70년만에 바닷속에서 발견된 목선 정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소록화도 인근 침몰 옹기선의 해저 사진. 반경 15m 정도 영역에 100여점이 넘는 옹기가 쌓여있었고, 나무로 만든 배의 일부가 확인됐다. 전남 강진 옹기마을에서 만든 옹기를 팔기 위해 싣고 가던 운반선이 사고로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소록화도 인근 침몰 옹기선의 해저 사진. 반경 15m 정도 영역에 100여점이 넘는 옹기가 쌓여있었고, 나무로 만든 배의 일부가 확인됐다. 전남 강진 옹기마을에서 만든 옹기를 팔기 위해 싣고 가던 운반선이 사고로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심 7m 바다 밑 항아리가 잔뜩 쌓여 있는 곳이 있어 조사해봤더니, 70년 전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옹기 운반선이 나왔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25일 공개한 전남 고흥군 소록도 앞바다 발굴 이야기다.

소록도 인근 바다 수심 7m 해저, 옹기 가득 실은 채 푹 꺼진 목선

소록화도 인근 침몰 옹기선 위에 얹힌 옹기를 위에서 바라본 시야로 재구성한 3D 이미지. 바닷속에선 가시거리가 짧아, 드론 사진처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영상으로 수중 유물 발견 구역을 전체적으로 찍은 다음, 이미지를 추출해 상공에서 보는 시야로 재구성했다 약 15m 반경에 100여개 옹기가 쌓인 모습이 보인다. 사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소록화도 인근 침몰 옹기선 위에 얹힌 옹기를 위에서 바라본 시야로 재구성한 3D 이미지. 바닷속에선 가시거리가 짧아, 드론 사진처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영상으로 수중 유물 발견 구역을 전체적으로 찍은 다음, 이미지를 추출해 상공에서 보는 시야로 재구성했다 약 15m 반경에 100여개 옹기가 쌓인 모습이 보인다. 사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지난 2월, 소록도 인근에서 잠수하던 잠수사가 “유물이 있는 것 같다”며 신고했다. 8월, 수중 조사에 나선 해양문화재연구소가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목선을 한 척 발견했다. 소록도 남쪽 소록화도에서 서쪽으로 50m쯤 떨어져 인근에서 조개를 캐는 잠수사가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목선은 뻘에 파묻혀 일부만 육안으로 확인되는 상태였다. 군데군데 삭고 꺼져 있었다. 100점은 넘어 보이는 항아리들이 배의 갑판에 묶인 채 놓여 있었고 배의 안쪽에도 각종 항아리, 장병, 뚜껑 등 다양한 옹기가 있었다. 해양문화재연구소는 이 배가 70년 전쯤 전남 강진군 칠량면 봉황리의 옹기마을에서 옹기를 싣고 떠난 운반선으로 추정했다. 10여점을 가져와 조사한 결과 봉황옹기마을에서 만든 옹기와 유사한 것으로 확인돼서다.

강진 옹기마을 배가 이용하던 항로

옹기 배를 발견한 곳은 소록도 아래 위치한 소록화도 서쪽 약 50m 지점 해저다. (붉은 표시) 옹기 배가 출발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전남 강진군 칠량면 봉황리에 위치한 봉황옹기마을이다. (파란색 동그라미). 구글 지도 캡쳐

옹기 배를 발견한 곳은 소록도 아래 위치한 소록화도 서쪽 약 50m 지점 해저다. (붉은 표시) 옹기 배가 출발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전남 강진군 칠량면 봉황리에 위치한 봉황옹기마을이다. (파란색 동그라미). 구글 지도 캡쳐

봉황옹기마을 주민들의 증언도 목선의 정체를 추정하는데 보탬이 됐다. 봉황옹기마을에서 지금도 옹기를 만드는 정윤석 옹기장(국가무형문화재)은 연구소 관계자들이 바다에서 건져낸 유물을 제시하자 대번에 "이건 우리 마을에서 만드는 모양"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옹기 특유의 형태, 특히 긴 병을 만들 때 주둥이를 연결하는 특징 등이 마을마다 조금씩 달라 옹기 모양을 보면 출처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바닷속 옹기운반선이 발견된 항로를 굳이 다른 배가 이용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도 근거가 됐다.

조사를 위해 건진 10점 옹기에는 1900년대 스타일 백자도 두 점 포함돼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홍광희 연구사는 "찍어낸 듯 매끈한 백자의 형태, 바닥에 푸른색 글씨를 적은 스타일로 미뤄 일제시대 이후 공장에서 대량 생산했던 도자기로 추정한다. 한국전쟁 때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사용한 옹기를 만들며 옹기마을이 호황을 누렸다는 기록도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침몰한 배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1950년대 옹기 배 사고" 증언도 확보

소록화도 인근 침몰 옹기선에서 발견된 백자의 일부. 찍어낸 듯 기계적으로 매끈한 형태 및 바닥에 푸른색 글씨를 적은 스타일 등으로 미뤄 최소한 일제시대 이후 시기에 제작된 백자로 추정된다. 1950년대 봉황옹기마을의 옹기 배 침몰사고가 두 건 있었다는 증언과도 합치한다. 사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소록화도 인근 침몰 옹기선에서 발견된 백자의 일부. 찍어낸 듯 기계적으로 매끈한 형태 및 바닥에 푸른색 글씨를 적은 스타일 등으로 미뤄 최소한 일제시대 이후 시기에 제작된 백자로 추정된다. 1950년대 봉황옹기마을의 옹기 배 침몰사고가 두 건 있었다는 증언과도 합치한다. 사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봉황옹기마을 주민 가운데 “70년 전 배 침몰 사고가 있었다”고 증언한 사람도 여럿이었다. 침몰한 배 소유주의 후손일 가능성이 있는 주민도 생존해 있다.

70년 전이면 1950년대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1950년대 봉황옹기마을에서 가까운 고흥군 해역 해난사고는 두 건이라고 밝혔다. 1950년대 초반 마을 주민 3명이 여수로 옹기를 팔러 항해하다가 거금도 인근에서 실종된 적이 있다. 1954년에는 고흥 녹동 앞바다에서 옹기운반선이 실종됐다. 두 사고 모두 실종 선원 및 유류품을 찾지 못했다. 거금도 사고로 실종된 박순조씨의 아들인 박종채(73)씨는 옹기운반선 발견 소식을 듣고 “아버지의 유품은 사진 한 장뿐인데, 아버지 옷가지라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이번에 발견된 목선이 근대 옹기 연구 및 해상 유통방식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거로 보고 있다. 옹기운반선을 본격 발굴할 예정이다. 목선 침몰로 세상을 떠났을 선원들을 위로하는 진혼제도 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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