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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출 못한 월드컵에 숟가락 얹으려는 중국, 얼마나 부럽길래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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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06년 중앙일보 축구 담당 기자로 FIFA 월드컵 개최지인 독일 현지에 갔었다. 한국의 조별리그 상대국인 프랑스를 보기 위해 프랑스-중국 평가전을 취재했는데 옆에 중국 기자가 앉았다. 중국은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300명이 넘는 대규모 취재진을 독일에 보냈다. 그 기자는 내게 대뜸 “아시아 최강은 이란이고 한국은 2002 월드컵에서 운으로 4강에 오른 것”이라며 도발했다. ‘뭐 이런 X가 있나’ 싶었는데 조별리그에서 한국이 1승 1무 1패, 이란이 1무 2패를 하자 내게 다가와 ‘한국이 아시아 최강’이라고 인정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2006년 6월 17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사진 셔터스톡]

2006년 6월 17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사진 셔터스톡]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중국은 지역 예선 통과에 실패했다.

외국인 선수들을 대거 귀화시켰지만, 최종예선에서 1승 3무 6패, B조 6개 팀 중 5위라는 지난 대회보다 더 처참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어느 축구 강국 못지않게 뜨거운 중국인의 축구 사랑은 월드컵 탈락을 무색게 한다.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11월 11일 기준 중국-카타르 행 항공편 예약은 전년에 비해 28배 이상 증가했고 수천 명이 경기 티켓을 구매했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 중국 기업들이 한 후원 총액은 13억9500만 달러(약 1조8711억 원)에 이른다. 본선에 진출한 한국의 풍경처럼 대도시 지하철역과 도로, 인터넷 사이트마다 월드컵 마케팅으로 넘쳐나고 매체들은 월드컵 뉴스를 주요 기사로 띄우고 있다.

관영 환구시보는 21일 '축구는 세계를 하나로 뭉치게 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서방의 카타르 인권 문제 지적에 대해 "월드컵과 스포츠 정신은 전 인류 공동가치의 중요한 부분으로 대대적으로 고양해야 하고 더럽혀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국수주의적 성향으로 유명한 이런 매체조차 월드컵에 편승해 서방에 정치적 공세를 편다.

가장 재밌었던 건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이 올린 트윗들이었다. 그는 중국이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루세일 스타디움을 건설했고, 카타르에 판다 두 마리를 선물했으며 중국 전기차가 선수와 팬들을 위한 셔틀버스로 사용되고 있다고 트윗으로 전했다. 또 호루라기와 유니폼 등 각종 응원 용품과 기념품의 70%가 저장(浙江)성 이우(義烏)에서 생산한 것이라고 했다. 외교부 대변인까지 나서 세계인의 축제에 어떻게든 숟가락을 얹어보려고 한다는 느낌이다. 만약 자국팀이 본선에 진출했다면 어땠을까.

2022년 카타르 월드컵 현장 [사진 셔터스톡]

2022년 카타르 월드컵 현장 [사진 셔터스톡]

중국의 역대 최고 지도자들은 축구에 각별한 애정을 보여왔다.
마오쩌둥(毛澤東)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 축구와 농구, 수영에만 선수단을 파견했다. 1954년엔 당대 최고 축구팀을 보유한 헝가리에 국가대표 선수단 전원을 2년간 유학시켰다. 문화대혁명이란 환란 중이던 1971년에도 그는 올림픽을 제패하라는 교시를 내렸다.

덩샤오핑(鄧小平)은 “죽기 전에 중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걸 보는 게 소원”이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땐 중계권도 없이 불법으로 경기를 방영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때도 직접 최선을 다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 진출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유일했다. 개최국 한국과 일본이 지역 예선에 참가하지 않았고 사우디아라비아, 이란과 다른 조에 엮이는 천운에 힘입었다. 그렇게 진출한 본선에선 코스타리카(0-2), 브라질(0-4), 터키(0-3)에 무득점 완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역시 축구광으로 유명한 시진핑(習近平)은 ‘축구굴기’라는 대대적 축구 육성 정책을 내놨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중국축구개혁 종합방안 50개조’는 세 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아시아 일류 수준의 프로축구 ▶남자대표팀 아시아 선두 실력 확보 ▶장기적으로 월드컵 개최다. 이를 위해 전국에 2만 개 축구 전문학교 설립 계획도 내놨다. 이른바 ‘2000명 리오넬 메시 만들기’다.

하지만 윗선의 지시가 그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곳곳에서 전시행정이 드러났다. ‘축구 체조’가 등장하고 탁구, 농구 같은 전통적 강세 종목들이 축구 육성 때문에 희생되는 일이 발생했다. 설상가상 민간 영역에 해당하는 프로축구 구단들까지 재정난을 겪고 있다.

미국·캐나다·멕시코가 공동 개최하는 2026년 월드컵은 출전국이 32팀에서 48팀으로 늘어나고 아시아에 배정되는 쿼터가 4.5장에서 8장으로 늘어난다. FIFA가 중국을 본선에 출전시키기 위해서라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의 추세가 변하지 않는다면 중국의 티켓 획득 전망은 어둡다는 게 중론이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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