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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 영화 이 장면

우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오세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우수’의 서사는 그다지 극적이진 않지만 그 안엔 수수께끼가 있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 죽음을 이야기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사장(윤제문)은 홀로 집에 앉아 술을 마시며 후배(김태훈)에게 전화한다. “나 오늘 죽을 거야.” 그리고선 후배에게 조문 올 거냐고 묻는다. 그리고 다음 날, 사장은 전화를 받는다. 대학 동창 철수가 죽었다는 부고다. 그는 후배에게 함께 광양의 장례식장까지 가자고 하고, 여기엔 과거 사장의 연인이었으며 철수와 삼각관계였던 은주(김지성)가 동행한다.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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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영화의 중심은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이고, 영화 장면들은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데 ‘우수’는 그렇지 않다. 이렇다 할 이야기가 없고, 느슨하게 연결된 장면이 모여 죽음의 아우라를 만든다. 죽을 거라던 사장은 친구의 부고를 듣고, 죽은 이의 환청을 듣고, 망자가 살아 있다는 이상한 꿈을 꾼다.

여기서 반복되는 이미지가 있다. 액자다. 텅 빈 액자는 마치 누군가의 사진을 기다리는 듯하다. 이후 액자는 다시 한번 등장한다. 이번엔 채워졌다. 철수? 아니, 사장의 얼굴이다. 마치 영정사진 같다. 그렇다면 혹시… 죽은 사람은 철수가 아니라 사장이 아닐까? 어쩌면 이 영화는 죽은 주인공의 유령이 꾸는 꿈 같은 건 아닐까? ‘우수’는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그 안에서 묘한 판타지, 혹은 ‘서사의 수수께끼’를 만든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