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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은화의 생활건축

사우디판 노아의 방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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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은화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지난 7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네옴시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공개한 선형 도시 ‘더 라인(The Line)’은 지금까지의 도시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갖췄다. 500m 높이의 건물 두 채가 200m 거리로 마주 서서 사막을 가로지르고 있다. 길이가 장장 170㎞에 달한다. 세계에서 12번째로 높은 건물이자, 가장 긴 건물이기도 하다. 건물이 장벽이 되고, 장벽은 첨단기술로 창조한 환경을 가진 좁고 긴 도시를 만들었다. 900만 명이 거주할 수 있다. 고밀화한 장벽 도시 덕에 바깥 자연환경을 보존할 수 있다니, 마치 21세기형 노아의 방주 같다. 2005년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은 톰 메인이 설립한 미국 건축회사 모포시스가 디자인했다. 모포시스는 국내에서도 프로젝트를 많이 했는데, 최근작으로 서울 마곡의 코오롱 연구개발 센터가 있다.

근대 도시는 방사형 도시였다. 권력의 중심에서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면서 주요 거점이 이어지고 연결되며 확산하는 형태다. 백악관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 나간 미국 워싱턴, 개선문 광장을 중심으로 뻗어 나간 프랑스 파리 등이 대표적이다. 대한제국 고종도 경운궁(현재 덕수궁) 중심의 방사형 도시를 계획했지만, 일제강점기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

사우디 정부가 공개한 ‘더 라인’ 조감도. [AFP=연합뉴스]

사우디 정부가 공개한 ‘더 라인’ 조감도. [AFP=연합뉴스]

‘더 라인’은 전통적인 수평 도시가 아니라 수직 도시다. 자동차가 필요 없다. 지하에 고속열차가 다녀서 20분이면 도시의 끝과 끝으로 이동할 수 있다. 자동차가 없으니 오염도 없고, 태양광·풍력 등 100% 친환경 에너지로만 전력을 공급한다. 바닷물을 염분 없는 물로 만드는 공장도 화석연료가 아니라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가동해 탄소제로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다. 교통난·환경오염·난개발 같은 도시문제를 이 새로운 도시로 해결하고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타렉 캇두미(Tarek Qaddumi) 네옴시티 도시계획 총괄 디렉터는 최근 영국의 건축디자인 매거진 ‘디진(Dezeen)’ 인터뷰에서 “도시에서의 생활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라인은 5분 생활권 도시로, 걸어서 5분 거리에 모든 편의시설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우디가 공개한 이미지 속 도시 내부는 볕이 고루고루 잘 든다. 하지만 롯데타워 높이(555m)의 장벽 두 개가 200m 거리로 맞붙어 있는 저층부 환경이 그만큼 쾌적할지는 의문이다. 부유한 이는 고층에, 가난한 이는 저층에 머무르는 수직적 계급사회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비용 등을 고려해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회의적인 반응도 많다.

비공식 세계 1위 갑부로 꼽히는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신도시 실험은 실현될까. 지금의 도시는 폴더폰 시대와 같고, 더 라인은 스마트폰 시대를 여는 것이라는 그의 설명대로 사막 한복판에서 새로운 도시의 시대가 열릴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