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전 동점골을 터뜨리는 일본 대표팀 미드필더 도안 리쓰(8번). 일본의 독일전 득점자인 도안과 공격수 아사노 다쿠마는 모두 현재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서 뛴다. [AP=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11/25/2a128afb-db34-423f-8e34-2f1d8f40f826.jpg)
독일전 동점골을 터뜨리는 일본 대표팀 미드필더 도안 리쓰(8번). 일본의 독일전 득점자인 도안과 공격수 아사노 다쿠마는 모두 현재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서 뛴다. [AP=연합뉴스]
일본이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E조 1차전에서 독일에 2-1로 역전승한 지난 23일 카타르 알라이얀의 칼리파인터내셔널 스타디움은 눈물바다가 됐다. 파란 유니폼으로 경기장 3분의 1가량을 채우고 뜨겁게 응원했던 일본 팬들은 드라마 같은 역전승 직후 서로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우승 후보로 평가받던 자국 대표팀의 예상 밖 패배를 지켜본 뒤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뜨던 독일 팬들의 눈가도 촉촉했다.
도하의 비극, 29년 만에 축제의 장으로
일본의 출발은 좋지 않았다. 전반 내내 독일의 파상공세에 버티기로 일관하다 전반 30분 일카이 귄도안(맨체스터시티)에게 페널티킥 골을 내줬다. 하지만 후반 중반 이후 공격적인 전술로 전환한 게 적중했다. 교체 투입된 도안 리쓰(프라이부르크)와 아사노 다쿠마(보훔)가 후반 30, 38분 잇따라 득점포를 터뜨려 승부를 뒤집었다.
다급해진 독일은 4년 전 2018 러시아월드컵 한국전(독일 0-2 패) 때처럼 후반 막바지에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바이에른 뮌헨)까지 공격에 가담했지만, 끝내 승패를 뒤집지 못했다. 독일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두 대회 연속이자 두 경기 연속으로 아시아 팀에 덜미를 잡혔다.
일본에는 경기 장소의 의미도 남다르다. 일본 팬들은 일본 축구 최악의 사건으로 1993년 벌어진 ‘도하의 비극’을 꼽는다. 당시 일본은 1994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최종전에서 후반 종료 10초를 남기고 실점하며 이라크와 2-2로 비겼고, 골득실에 따라 한국에 본선 출전권을 내줬다. 비극의 현장이 29년 만에 축제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당시 선수로 뛴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올라 같은 장소에서 승리를 연출한 것도 크게 주목 받았다.
독일을 꺾은 데 대해 일본 축구계가 느끼는 감격은 상상 이상이다. 일본은 지난 30여 년간 독일을 롤모델로 삼아 자국의 축구 경쟁력을 키워 왔다. 축구 통계업체 옵타는 경기 직후 16강 진출 확률을 일본 72% 이상, 독일 37%로 각각 조정했다. A매치에서 독일에 처음 이긴 일본이 월드컵 무대에서도 독일보다 높은 순위에 오를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이번 승리 전까지 일본의 독일전 상대 전적은 1무1패였다.
일본은 93년 프로축구 J리그 출범 등 축구 경쟁력 강화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철저히 독일 시스템을 따랐다. 96년 발표한 ‘J리그 백년 구상’(J리그를 세계적인 리그로 만들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의 뼈대도 독일 축구다. 재일동포 축구 칼럼니스트인 신무광씨는 “일본은 독일이 데트마르 크라머 감독을 중심으로 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남자축구에서 동메달을 따낸 뒤 독일식 선진 축구 도입 필요성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축구리그 시스템도 사실상 ‘독일제’다. 일본은 프로(1~3부 리그)와 아마추어(4~11부 리그)를 통틀어 총 11단계의 리그를 운영 중이다. 1~4부를 프로로, 5~14부를 세미프로와 아마추어로 운영하는 독일 방식을 본떴다.
이론적으로는 최하위 11부 리그 팀 또는 선수가 최상위 1부 리그까지 갈 수 있다. 목수로 일하며 7부 리그 팀(블라우바흐)에서 뛰다 월드컵 최다골(16골) 선수가 된 미로슬라프 클로제, 글로벌 음료기업 레드불의 후원을 받아 8부에서 1부까지 승격한 클럽 호펜하임 등과 같은 사례를 만들어 내는 게 일본의 목표다.
독일과 선수 교류도 지속해 왔다. 일본 선수가 유럽에 진출할 경우 독일 분데스리가는 일종의 전초기지 역할을 해왔다. 일본의 독일전 득점자 두 명 모두 현재 분데스리가에서 뛴다. 이번 일본 대표선수 중 독일에서 뛰는 건 주장 겸 최고 스타 요시다 마야(샬케04) 등 26명 중 8명이다.
신무광씨는 “오쿠데라 이후 2002년 다카하라 나오히로의 함부르크 입단을 시작으로 이나모토 준이치(사가미하라), 오노 신지(류큐), 하세베 마코토(프랑크푸르트), 가가와 신지(신트트라위던) 등 전·현직 일본대표팀 주축 멤버 수십 명이 분데스리가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전반 수비 후반 공격, 변칙 성공한 일본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수십 년간 ‘독일 배우기’에 열을 올린 일본이 정작 독일을 잡을 때는 ‘독일식’에서 벗어나 ‘변칙’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특유의 점유율 축구를 포기한 채 전반 내내 수비에 열중한 뒤 후반에 과감하게 공격에 나서 대어를 낚았다. 일본의 독일전 볼 점유율은 26.6%에 그쳤다. 월드컵에서 승리한 팀 중 두 번째로 낮은 점유율이다. 1위는 러시아월드컵에서 독일을 잡은 한국(26%)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