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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미성년 자녀 둔 성전환자 ‘성별변경’ 첫 허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남자’의 몸으로 태어난 A씨.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숨긴 채 살아온 그는 지난 2012년 결혼해 아이들도 낳았지만 6년 만에 헤어졌다. 결혼 이듬해 정신과에서 정식으로 ‘성주체성장애’(성전환증) 진단을 받고 호르몬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이혼 후 몇 달 뒤인 2018년 11월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그는 현재까지 ‘여자’로 산다. 10살 안팎 아이들도 A씨의 성전환 수술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를 아버지가 아닌 고모로 알고 있다.

A씨는 법원에 “가족관계등록부 성별란에 ‘남’으로 기록된 것을 ‘여’로 정정해달라”며 등록부 정정 신청을 냈지만, 1·2심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성별 정정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2011년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를 따른 것이다. 2심은 “이를 허용하면 자녀 입장에선 아버지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뒤바뀌는 상황을 일방적으로 감내해야 하고, 정신적 혼란과 충격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24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이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미성년 자녀가 있거나 배우자가 있는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을 불허했던 전합의 판단이 11년 만에 일부 뒤집힌 것이다.

대법원은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를 두고 ‘성전환자의 기본권 보호와 미성년 자녀의 보호 및 복리와의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여러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성전환자와 그의 미성년 자녀는 성별 정정 전후를 가리지 않고 개인적·사회적·법률적으로 친자관계에 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가 ‘혼인 중이 아닌 상태’(이혼 상태)에 있음에도 성별 정정을 불허하는 것은, 오히려 성전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고착화하는 결과를 야기하는 것이고, 그 자녀에게 더욱 차별과 편견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짐을 지우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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