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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과 사랑 그린 ‘썸바디’ 정지우 “누구나 있는 결핍 그리고 싶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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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18일 공개된 넷플릭스 8부작 시리즈 '썸바디'는 데이팅 앱 ‘썸바디’를 매개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앱을 개발한 섬(강해림)과 그녀의 친구들이 의문의 남자 윤오(김영광)와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멜로이자 스릴러다. 사진 넷플릭스

지난 18일 공개된 넷플릭스 8부작 시리즈 '썸바디'는 데이팅 앱 ‘썸바디’를 매개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앱을 개발한 섬(강해림)과 그녀의 친구들이 의문의 남자 윤오(김영광)와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멜로이자 스릴러다. 사진 넷플릭스

“‘도대체 저 사람이 왜 저럴까?’ 이런 호기심이 들기 시작하면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대개 어떤 이야기에서 인과관계가 설명되지 않으면 ‘개연성이 없다’고 하지만, 실제 우리 일상에서는 왜 그런지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나거든요.”

‘해피엔드’(1999), ‘은교’(2012) 등 인간의 내밀한 욕망을 파고드는 영화를 선보여온 정지우 감독의 말이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썸바디’(8부작)로 첫 시리즈물 연출에 나선 그는 지난 22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자리에서 ‘창작의 원천을 어디서 얻느냐’는 질문에 위와 같은 답을 내놨다.

소셜 데이팅 앱으로 만난 연쇄 살인범과 천재 개발자의 기괴한 멜로. 이렇게 요약할 수 있는 ‘썸바디’는 정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왜 저럴까 도저히 모르겠는” 사람들의 내면을 골똘히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아스퍼거 장애로 인해 공감 능력은 부족하지만, 개발 능력은 뛰어난 김섬(강해림)은 사람들의 대화를 분석해 매칭시키는 데이팅 앱 ‘썸바디’를 개발한다. 완벽한 세계를 창조했다고 믿은 순간, 앱을 매개로 연쇄 살인이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김섬의 세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앱을 통해 살인을 일삼는 건축가 성윤오(김영광)를 마주한 섬은 난생 처음 누군가와 ‘연결됐다’는 감정을 느끼며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다.

19금 멜로 스릴러 시리즈물 '썸바디'를 연출한 정지우 감독은 작품에 파격적인 노출을 자주 등장시키는 이유에 대해 "노출은 사람들이 격식을 차렸을 때가 아닌, 혼자 있을 때 하는 행동, 망상, 욕망을 그리는 과정 속에 있다"고 말했다. 사진 넷플릭스

19금 멜로 스릴러 시리즈물 '썸바디'를 연출한 정지우 감독은 작품에 파격적인 노출을 자주 등장시키는 이유에 대해 "노출은 사람들이 격식을 차렸을 때가 아닌, 혼자 있을 때 하는 행동, 망상, 욕망을 그리는 과정 속에 있다"고 말했다. 사진 넷플릭스

“타인과 소통, 누구나 어렵지 않나”

거칠게 압축하자면 사이코패스 살인범과 사랑에 빠진 여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주인공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오지만, 바로 그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인간 내면을 그리는 게 정 감독이 의도한 바였다. “상대가 나쁜 사람인 걸 알아도, 자기에게 손해인 관계여도 끊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알 수 없는 욕망을 그렸다고 받아 들여주시면 좋겠습니다.”

섬과 윤오, 두 주인공 모두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인물로 설정한 것도 “누구나 어떤 면에서는 이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정 감독은 “사실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일이 무척 어렵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렇지 않나”라며 “섬과 윤오는 누구나 갖고 있는 결핍을 조금 더 전면에 드러나게 설정한 캐릭터들”이라고 설명했다. ‘썸바디’는 늘 누군가와 연결되길 바라지만 실패했던 이들이, 자신과 완전히 통하는 상대를 만나 벌어지는 서늘한 멜로인 셈이다.

정지우 감독은 김섬을 연기한 강해림 배우에 대해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고 세상의 이치를 천천히 판단하는 배우"라고 표현했다. 사진 넷플릭스

정지우 감독은 김섬을 연기한 강해림 배우에 대해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고 세상의 이치를 천천히 판단하는 배우"라고 표현했다. 사진 넷플릭스

배우 김영광은 '썸바디'에서 욕망으로 뒤틀린 살인마 성윤오로 분해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사진 넷플릭스

배우 김영광은 '썸바디'에서 욕망으로 뒤틀린 살인마 성윤오로 분해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사진 넷플릭스

정 감독은 이야기의 중심에 소셜 커넥팅 앱을 둔 이유에 대해 "핸드폰의 등장을 기점으로 사람들의 관계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앱을 통해서 낯선 사람을 만나는 신문물로 인해서 완전히 다른 종류의 관계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비비언 리가 나오는 ‘애수’(1940)라는 영화를 보면 워털루 다리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이 엇갈려서 결국 평생 못 만나지요. 하지만 핸드폰이 생기고 난 다음부터는 그런 식의 오해는 벌어지지 않죠. 핸드폰을 통한 소통으로 완전히 다른 경험이 생긴다는 점에서 앱은 아주 흥미로운 소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빛나는 신예들 발굴…“고유한 얼굴 찾고자 했다”  

‘썸바디’는 섬과 윤오 외에도 섬의 친구 기은(김수연)과 목원(김용지) 등 각자 결핍을 지닌 인물들이 서로 얽혀들며 멜로와 서스펜스가 강화된다. 사고로 인한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는 경찰 기은은 썸바디 앱을 통해 자신과 같이 휠체어를 타는 남자와 연결돼 들뜨지만, 이내 홀로 산속에 버려진 뒤 그를 추적하게 된다. 섬과 기은을 돕는 친구 목원은 신내림 받은 무당인 동시에 동성애자로 묘사된다.

넷플릭스 '썸바디'에는 동성애자인 젊은 무당, 하반신이 마비된 경찰 등 각자의 결핍과 어려움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한다. 배우 김용지는 신기로 친구들을 돕는 무당 목원을 연기했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썸바디'에는 동성애자인 젊은 무당, 하반신이 마비된 경찰 등 각자의 결핍과 어려움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한다. 배우 김용지는 신기로 친구들을 돕는 무당 목원을 연기했다. 사진 넷플릭스

하반신이 마비된 사이버 수사대 소속 경찰 기은을 연기한 배우 김수연도 정지우 감독이 오디션을 통해 발굴한 신예다. 사진 넷플릭스

하반신이 마비된 사이버 수사대 소속 경찰 기은을 연기한 배우 김수연도 정지우 감독이 오디션을 통해 발굴한 신예다. 사진 넷플릭스

정 감독은 기은 캐릭터에 대해 “(장애가 있지만) 어떤 불편함이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보통 사람처럼 묘사하려고 했다”며 “윤오를 만난 순간이 기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떤 사람이든 한 번쯤 겪게 되는 그런 불멸의 순간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목원에 대해서는 “자신에게 내려온 신적인 존재와 개인적 취향이 내면에서 충돌하는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며 “목원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도 언젠가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윤오를 연기한 김영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새로운 얼굴을 기용한 그는 자신이 택한 배우들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영화 ‘은교’에서 배우 김고은을 발굴한 바 있는 정 감독은 빛나는 신예를 알아보는 안목으로 유명하다. 캐스팅할 때 “고유한 사람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는 그는 김영광을 향해서는 “자신보다 커리어가 짧은 배우들을 너무 잘 지탱해주고 진심으로 집중해줘서 감사했다”고, 김섬 역의 강해림에 대해서는 “세상의 이치를 천천히 판단하는 배우”라고 칭찬했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시리즈물 작업에 처음 도전한 정 감독은 “영화 하던 마음가짐 그대로 (제작 기간만) 길어지니 사실 힘들었다”면서도 “앞으로도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그런 태도로 해도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전보다 관객들이 극장에 덜 오는 상황에서는 영화 만드는 게 정말 쉽지 않다”면서다. 그는 요즘 같은 환경에서는 ‘해피엔드’ ‘은교’와 같은 자신의 전작들도 “만들어지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마케팅이 더 ‘야한 영화’라는 쪽으로 집중됐을 것”이라며 “천천히 생각해 볼 만한, 가만히 돌아보게 되는 느낌의 영화를 극장에서 만나기는 점점 어려워지지 않을까 싶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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