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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세 모녀' 비극 막는다…채무·질병 정보 살펴 위기가구 발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8월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 주택 1층 집 현관문. 엑스자 형태로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 주택 1층 집 현관문. 엑스자 형태로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21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암과 희귀난치병 등 질병과 생활고에 시달렸고, 1년 넘게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정부 위기가구 발굴 시스템에 포착되지 않았고 어떠한 복지 지원도 받지 못했다. 그나마 화성시가 이들의 상황을 인지하고 지원을 위한 확인에 나섰지만 소재 파악에 실패했다. 세 모녀가 2년 전 화성시에서 수원시로 이사하면서 빚 독촉을 피하기 위해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위기가구를 발굴하고 신속히 지원하기 위한 ‘복지사각지대 발굴·지원 체계 개선대책’을 24일 발표했다. 앞서 수원 세 모녀 사건 발생 이후인 지난 9월 1일부터 복지부는 복지사각지대 발굴·지원체계 개선 전담팀(TF)를 꾸려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할 개선안을 마련했다.

위기정보 34종→44종…위기가구 종합 판단

수원 세 모녀는 현행 복지사각지대 발굴 체계에서 감시하는 34가지 위기정보 중 '건강보험료 연체'에만 해당됐다. 어머니는 암, 두 딸은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었고 병원비 부담으로 월세를 제때 내지 못했으며 빚 독촉에 시달렸지만 이러한 정보는 정부의 발굴체계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중앙정부가 지자체에 통보하는 '고위험 위기가구'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4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복지 사각지대 발굴, 지원체계 개선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4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복지 사각지대 발굴, 지원체계 개선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복지부는 앞으로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데 질병, 채무 정보 등을 함께 활용하기로 했다. 현행 34종이던 위기정보를 내년 하반기까지 44종으로 확대한다. 11월부터 5종(중증질환 산정특례·요양급여 장기 미청구·장기요양 등급·맞춤형 급여 신청·주민등록 세대원)을 추가했고, 내년 하반기 중 5종(재난적 의료비 지원대상·채무조정 중지자 정보·고용위기 정보·수도요금체납정도·가스요금체납정보)을 추가한다.

특히 채무 정보의 경우 최근 2년간 연체 금액 기준 현행 '1000만원 이하'에서 '2000만원 이하' 연체로 확대된다. 정태길 복지정보기획과장은 전날 기자들과의 사전 브리핑에서 “(기존에) 위기가구로 발굴된 곳들을 보면, 높은 채무액이 아니고 300~500만 원대도 있다”면서 “금액뿐 아니라 어떤 기관(1~3 금융권 등) 또는 몇 개 기관에서 받은 건지 등도 함께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고용과 관련해선 최근 1년 이내 고용보험 가입 이력이 없는 대상자 정보를 신규로 입수한다. 또 수도 공급 중단, 가스 공급 중단 정보 외에 수도와 가스요금 체납 정보도 신규로 입수해 활용 예정이다.

또 위기정보를 개인 단위가 아닌 세대 단위로 분석해 위기가구 발굴의 정확도를 높인다. 정 과장은 “위기가구를 보면 세대원 중에 아픈 사람도 있고 빚을 진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세대원 개별 위기정보를 연계해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가구 전체 위기도를 파악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현재는 세대주 A씨의 해고 사실(고용 위기 정보)과 자녀 B씨의 암 치료 사실(질병 정보)을 별개 건으로 각각 입수했다면 이제부터는 두 가지 위기 정보를 함께 고려해 위기가구를 파악하게 된다. 수원 세 모녀와 같은 사례는 기존에 파악된 '건강보험료 연체' 외에도 채무정보, 중증질환정보 등이 반영되고, 가족 모두가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 파악돼 복지 지원 대상자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복지사각지대 발굴 및 지원 체계 개선안. 보건복지부

복지사각지대 발굴 및 지원 체계 개선안. 보건복지부

일상에서 위기가구를 찾아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된다. 의료비 부담 때문에 치료를 중단하는 환자가 생기면 일단 위기가구로 보고 지자체에 알릴 수 있도록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의료사회복지사)와 지자체와의 연계를 강화한다. 내년 하반기에는 병원이 위기가구를 찾아내 치료·지역사회 복귀를 지원하면 건강보험 수가를 주는 방안을 검토한다. 또 집배원이 각종 복지관련 등기를 전달할 때 위기가구를 확인해 위기상황을 지자체에 알리는 ‘복지등기’ 사업을 점진적으로 확대한다. 누구나 이웃의 위기를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도록 2024년 하반기까지 모바일 앱을 통한 알림·신고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행안부·통신사와 연락처 정보 연계

위기가구를 발굴한 후 지원 대상자의 소재와 연락처를 신속히 파악하는 제도적 보완도 추진한다. 사회보장급여법 개정을 통해 빈집, 연락 두절 등 소재 불명 가구에 대해서는 행정안전부, 통신사를 통해 연락처를 확보할 계획이다. 주민등록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전입 신고서에 세대주뿐 아니라 세대원의 연락처도 기재하도록 할 계획이다.

오진희 지역복지과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수원)세 모녀 같은 경우에 연락 불가 가구로, 연락이 안 됐던 게 제일 큰 문제였다”면서 “지난달 6일부터 최근 1년간 연락 불가로 기록된 1만 7000가구 전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올 연말까지 조사를 완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주민등록 사실조사에서 지난해 4분기부터 올해 3분기까지 1만 7429가구가 연락이 닿지 않아 위기의심가구로 분류됐다.

사망 위기, 사망의심가구의 구조·구급을 위해 강제로 문을 열어야 할 경우 강제 개문할 수 있도록 하고 이와 관련해 손실보상이 필요할 경우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 오 과장은 “현재도 경찰·소방의 도움을 얻어 문을 열 수 있지만, 문 손상 등에 대한 보상 주체가 모호해 현장에서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 예산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침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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