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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서도 월드컵 가능"…카타르 감싸는 '축구 대통령'의 궤변 [후후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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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카타르를 비판하지 말고 나를 비판하라.”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 지난 18일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열린 카타르 월드컵 심판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 지난 18일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열린 카타르 월드컵 심판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축구 대통령’ 잔니 인판티노(52)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지난 19일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을 하루 앞두고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그는 약 45분간 작심발언을 통해 월드컵 개최국 카타르를 비판하는 서방 언론과 인권단체 등에 반박했다. 이들은 지난 몇 년간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성 소수자 탄압 등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카타르 정부와 FIFA에 개선을 촉구해 왔다.

인판티노 회장은 "유럽인들이 지난 3000년간 해온 일(식민지배)을 생각하면 도덕적 훈계를 하기 전에 향후 3000년은 사과를 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카타르에서 합법적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돕는데, 유럽인들은 국경을 닫았다" 등 발언으로 ‘서방의 위선’을 지적했다. 또 "우리는 다른 신념과 역사 등을 이해해야 하는데, 이번 월드컵이 서구에서 아랍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를 열어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카타르 대회는 중동 지역에서 처음 열리는 축구월드컵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지난 2019년 12월 카타르 루사일 축구 경기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카타르 인구는 약 280만명 중 240만명은 인도·파키스탄·네팔·이란·이집트·스리랑카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섭씨 45도가 넘는 기온에서 하루 최대 10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AP=연합뉴스

이주노동자들이 지난 2019년 12월 카타르 루사일 축구 경기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카타르 인구는 약 280만명 중 240만명은 인도·파키스탄·네팔·이란·이집트·스리랑카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섭씨 45도가 넘는 기온에서 하루 최대 10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AP=연합뉴스

인판티노의 독백에 가까운 장광설에 인권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국제앰네스티는 "그는 이주노동자들이 지불한 엄청난 대가와 그것에 대한 FIFA의 책임을 저버리고 있다"고 했다. 비영리 인권단체 페어스퀘어의 니콜라스 맥기한 이사는 "그의 발언은 엉터리투성이"라며 "카타르 당국으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말할지 지시를 받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인판티노 회장은 이번 월드컵에서 FIFA가 아닌 카타르가 주요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증거가 늘어나는 와중에 길게 변명했다"고 전했다.

맥주 금지 등 '카타르 밀착' 모습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왼쪽)과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 지난 20일 카타르 알코르 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개막식에서 손을 잡고 대화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왼쪽)과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 지난 20일 카타르 알코르 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개막식에서 손을 잡고 대화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 같은 불만은 지난 수년간 인판티노 회장이 지나치게 ‘카타르 감싸기’에 나서면서 고조돼 왔다. 그는 카타르 내 인권 실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카타르에선 개혁이 지속해서 수행되고 있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개막에 앞서 32개 참가팀에 "축구에만 집중하자"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고, 지난 21일에는 성 소수자 지지 표시로 무지개색 완장 착용을 강행하면 옐로카드를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네덜란드 등 유럽 7개 대표팀은 무지개색 완장을 포기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경기장과 주변에서 맥주 판매를 금지한 것도 거액을 후원한 스폰서를 무시하고 카타르 입장만 반영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슬람 국가인 카타르는 주류 판매 및 음주를 금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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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판티노 회장은 "우리는 축구인이지 정치인이 아니다"라고 항변하지만 제프 블래터 전 FIFA 회장은 "인판티노 회장과 카타르가 위험한 종속 관계에 들어가고 있다"고 경고음을 냈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카타르 정부가 경기장에서 맥주를 팔지 못하게 결정한 것에 대해 월드컵 후원사인 맥주 브랜드 버드와이저가 지난 19일 남은 맥주 재고 물량을 우승국에 주기로 했다. 버드와이저는 ″우승하는 나라가 버드와이저를 갖는다. 누가 갖게 될까?”라는 글과 함께 버드와이저 캔이 쌓여 있는 창고 사진을 올렸다. 사진 버드와이저 트위터 캡처

국제축구연맹(FIFA)과 카타르 정부가 경기장에서 맥주를 팔지 못하게 결정한 것에 대해 월드컵 후원사인 맥주 브랜드 버드와이저가 지난 19일 남은 맥주 재고 물량을 우승국에 주기로 했다. 버드와이저는 ″우승하는 나라가 버드와이저를 갖는다. 누가 갖게 될까?”라는 글과 함께 버드와이저 캔이 쌓여 있는 창고 사진을 올렸다. 사진 버드와이저 트위터 캡처

FIFA 개혁가→격년제 주장 하향세

이탈리아계 스위스인인 인판티노 회장은 1970년 스위스 남부 브리그에서 태어났다. 축구를 굉장히 좋아했던 그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후 국제변호사로 일하다 축구행정가가 됐다. 지난 2000년 유럽축구연맹(UEFA)에 입사해 9년 후 사무총장직에 올랐다. 이탈리아어·스페인어·프랑스어·독일어·아랍어·영어 등 6개 국어를 구사해 유럽 챔피언스리그 조 추첨을 유창하게 진행하면서 축구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는 ‘합리적 리더’로 꼽혔다. 과도한 지출로 인한 경영 위험을 막기 위해 유럽 프로리그에 선수 인건비가 구단 수입의 총액을 넘지 못 하게 하는 ‘재정적 페어플레이’ 정책을 도입했다. 유럽축구선수권대회 본선 참가국을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늘려 흥행과 재정을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2016년 FIFA 회장 선거에서 승리했다. 블래터 전 회장이 18년간 연임하면서 사조직화한 FIFA에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월드컵 본선 참가 규모(32→48개국)를 확대하고, 뇌물 수수 혐의로 부패의 온상이었던 FIFA 집행위원회는 폐지했다.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은 지난 2017년 인판티노 회장을 세계 축구계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했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왼쪽)이 러시아 월드컵 개막 전날인 지난 2018년 6월 13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FIFA 총회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FIFA 페넌트를 선물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왼쪽)이 러시아 월드컵 개막 전날인 지난 2018년 6월 13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FIFA 총회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FIFA 페넌트를 선물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2019년 연임에 성공한 후, 그의 행보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듬해 카타르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 등에서 FIFA 부패 혐의를 수사 중이던 스위스 검찰총장과 부적절한 회동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문제로 스위스 특별검사 조사를 받았고 현재 형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에는 월드컵 격년제 개최를 제안해 파란을 불렀다. 그는 "2년마다 월드컵을 개최해 얻은 44억 달러(약 6조원) 수익으로 회원국 간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월드컵 희소성 감소 등의 이유로 유럽과 남미에서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무리한 이익 추구에도 3연임 유력

스코틀랜드의 맥주회사 브루독이 최근 FIFA를 비판하는 의미로 '처음에는 러시아, 다음은 카타르. 북한을 기다릴 수 없다'는 문구가 담긴 옥외광고를 제작했다. 사진 브루독 홈페이지 캡처

스코틀랜드의 맥주회사 브루독이 최근 FIFA를 비판하는 의미로 '처음에는 러시아, 다음은 카타르. 북한을 기다릴 수 없다'는 문구가 담긴 옥외광고를 제작했다. 사진 브루독 홈페이지 캡처

이 과정에서 수습은커녕 궤변만 늘어놨다. 올 초에는 "격년제를 도입하면 전 세계가 월드컵에 더 많이 참여해 아프리카인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지중해를 건너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가 인권단체들의 호된 비판에 직면했다.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선 FIFA가 정치적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북한에서도 월드컵을 열 수 있다"고 했다. 축구 팬들은 "전쟁 침공국 러시아(2018년), 인권 침해국 카타르(2022년)에 이어 북한에서까지 월드컵을 봐야 하냐"며 반발했다. 스코틀랜드 맥주회사 브루독은 "처음에는 러시아, 다음은 카타르. 북한을 기다릴 수 없다"는 옥외광고를 내걸었다.

축구계에선 인판티노 회장이 무리하게 상업적 이익 확대만 추구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나아가 그가 카타르를 유독 옹호하는 배경에는 ‘오일머니’의 힘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추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 20일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에서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아래 오른쪽 두번째)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아래 오른쪽) 옆에 앉아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가운데)의 연설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0일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에서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아래 오른쪽 두번째)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아래 오른쪽) 옆에 앉아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가운데)의 연설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런 와중에 인판티노 회장이 지난 20일 개막식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는 모습이 포착되자, "2030년 월드컵은 사우디에서 열리는 건가"라는 조롱이 축구팬들 사이에서 나온다고 데일리메일이 전했다.

그럼에도 그는 내년 3월 FIFA 회장 선거에 단독 출마했고 3연임이 유력하다. 도이치벨레(DW)는 "인판티노 회장은 여전히 '돈을 더 많이 벌어주겠다'며 축구계 인사들을 유혹하고 있다"면서 "주머니만 가득 채워주면 회장이 되는 게 현재 FIFA가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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