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에바존의 문화산책

어린이에게 놀 시간을 주자

중앙일보

입력 2022.11.24 00:31

지면보기

종합 23면

에바 존 한국 프랑스학교 사서

에바 존 한국 프랑스학교 사서

지난달 아동문학의 노벨상이라고 알려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올해 수상자인 한국인 이수지 그림작가와 프랑스인 마리 오드 뮈라이유 작가의 온라인 대담이 있었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서 주관한 이 행사는 여러 면에서 흥미로웠다. 일단 어린이문고 기록자로서 나는 두 작가를 매우 존경하고 그들의 대담을 볼 수 있어 몹시 기뻤다.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뮈라이유 작가가 “어른이 어린이에게 제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시간”이라고 말했을 때였다. “어린이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노는 시간입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허락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모든 것이 점점 더 빨라집니다.” 그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9화도 언급했다. ‘방구뽕’이라는 인물이 어린이들을 학원 버스에 태워 산으로 데려가 자연에서 몇 시간을 놀게 하는 내용이다.

학원에 갇힌 한국 아이들
창의력을 키울 수 있을까
드라마 ‘우영우’의 용기
아이는 놀면서 세상 발견

‘안데르센상’을 받은 그림책 작가 이수지의 『파도야 놀자』의 일부. [사진 비룡소]

‘안데르센상’을 받은 그림책 작가 이수지의 『파도야 놀자』의 일부. [사진 비룡소]

이 에피소드를 들었을 때 나는 그런 장면을 상상한 작가가 매우 용기있다고 생각했다. 납치라는 수단을 택한 데에는 비난받을 소지가 크지만, 방구뽕은 한국의 심각한 문제를 부각하면서 정곡을 찌르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경쟁과열 때문에 학원 영업시간을 밤 10시로 제한하고 사교육기관에서 선행학습이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규제한다. 최근 나는 어느 여덟 살짜리 아이가 일요일이면 온종일 수학학원에서 공부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아이네 집은 대치동 근처에 있다고 한다. 나로서는 몹시 충격적인 일이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그 아이는 이례적인 사례가 아니다.

치열한 면학 분위기 때문에 한국의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가 좋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는 아이들에게는 스트레스, 불안, 창의력 결여 등 득보다 해가 더 많다. 또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이며, 2007년 이래 줄곧 자살이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로 꼽힌다.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서구의 학부모들도 맞벌이 부부 자녀의 방과후 돌봄은 물론이고 자녀에게 과외를 시켜야 한다는 압박을 점점 심하게 받고 있다.

한국에서 학원이나 과외는 어린이들을 계속 바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 같다. 이때 간과하는 것은 지루함을 느끼는 것, 아이가 부모나 친구와 함께 있든 심지어 혼자 있든 간에 아무런 체계 없이 자유롭게 노는 것의 중요성이다. 이런 시간은 학원에서는 거의 배울 수 없는 창의력의 여지를 준다.

교육 전문가들은 어린이가 놀이를 통해 주변 세상을 발견하고 이해한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증명했다. 아이들은 재미있게 놀면서 동적·인지적·사회적·정서적 측면을 다룬다. 무엇보다도 놀이하는 어린이들은 불안이나 우울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작다. 어린이들의 또 다른 문제는 수면 부족이다. 잠이 아동의 건강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명확하다. 연구에 따르면 학습이 오전에 이루어질 경우에 아동의 수용력이 더 높아진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중 방구뽕이 나오는 장면. [사진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중 방구뽕이 나오는 장면. [사진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과도한 학업에 짓눌린 학생들을 다루는 유일한 한국 드라마가 아니다. ‘SKY 캐슬’은 고교생 자녀를 일류 대학에 보내려고 안달인 부모들의 극단적인 행태를 고발했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아이들이 지나친 압박을 받고 있고 교육 시스템이 너무 경쟁적이라는 데 동의하는 것 같다. 내 주변의 친구들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대답한다. 시스템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시스템 밖으로 떨어져 나와 자녀가 뒤처질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스템이 바뀔 수 있을까. 순진한 발상일지 모르나 청소년들이 서울 내 명문대에 입학하지 않고도 성공한다고 생각할 수 있게끔, 성공에 대한 기준을 다르게 평가하는 것이 한 방법일 수 있다. 또한 지속적인 수능 개혁을 통해 주입식 학습보다 창의력이 개입할 여지를 주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프랑스의 수능인 바칼로레아는 최근에 대대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한층 지속적인 평가(최종 내신 40% 반영)를 도입함으로써 최종 내신 성적에 대한 압박을 줄여주려는 의도가 어느 정도 있다.

올 초 윤석열 정부는 초등 입학 연령을 현재의 만 6세에서 만 5세로 낮추는 방식을 제안했다가 학부모들에게 대대적인 반발을 샀다. 초등 입학 연령을 낮춤으로써 어린이들이 더 일찍 사교육과 경쟁에 빠져드는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 물론 시스템 변화는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그 때문에 ‘우영우’ 작가는 9화 말미에 방구뽕을 교도소에 보내고 어린이들은 학원으로 돌려보내는 장면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에바 존 한국 프랑스학교 사서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