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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변양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전경련 대항세력 만듭시다” 헬기 안 노무현의 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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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변양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진영을 넘어 미래를 그리다 〈8〉 실패로 끝난 ‘진보경제인모임’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2006년 10~11월 무렵이었다. 거창하게 말하면 노무현 대통령의 ‘밀명’을 받았다. 헬기 안에서 단둘이 있는 자리였다. ‘기존 재벌의 질서를 깨뜨려 보자. 그러기 위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대항하는 집단을 만들어 보자.’ 요약하면 이런 얘기였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외부 행사에 다녀올 때 헬기를 자주 이용했다. 정책실장인 내가 대통령 옆자리에 앉는 일이 가끔 있었다. 어느 날 노 대통령이 은밀히 말을 꺼냈다. “현재 전경련은 재벌 가족의 사교 클럽이 아닙니까. ‘진짜 전경련’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처음 지시할 때도, 나중에 다시 확인할 때도 헬기 안이었다.

왜 하필 헬기였을까. 그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여겼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게 아니었다. 노 대통령이 도청 가능성을 염려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재벌의 막강한 힘을 고려하면 절대 밖으로 말이 새지 말아야 했다. 주위에 아무도 없으면서 도청 우려가 없는 장소, 그래서 헬기를 고른건지도  모르겠다.

자수성가 기업인 단체 모색

2005년 3월 9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투명사회협약 체결식에서 참석자들이 손을 잡고 ‘약속의 띠’를 만들고 있다. 왼쪽부터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신낙균 민주당 부대표, 박근혜 한나라 당 대표, 임채정 열린우리당 의장, 박희태 국회 부의장, 김덕규 국회 부의장, 노무현 대통령, 강신호 전경련 회장, 이건희 삼성 회장,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 구본무 LG 회장, 김재철 무역협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중앙포토

2005년 3월 9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투명사회협약 체결식에서 참석자들이 손을 잡고 ‘약속의 띠’를 만들고 있다. 왼쪽부터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신낙균 민주당 부대표, 박근혜 한나라 당 대표, 임채정 열린우리당 의장, 박희태 국회 부의장, 김덕규 국회 부의장, 노무현 대통령, 강신호 전경련 회장, 이건희 삼성 회장,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 구본무 LG 회장, 김재철 무역협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중앙포토

노 대통령의 생각은 이랬다. ‘현재 주요 재벌 총수는 선대에서 부와 권력을 물려받은 2세나 3세다. 전경련은 그런 재벌의 모임이다. 이런 사람들 말고 당대에 자수성가한 기업인을 모아 보자. 재벌의 견제 때문에 더 올라가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기업인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전경련 대항집단을 만들게 하자.’ 이들이 정부에 정책을 건의하게 하면서 주도 세력을 바꿔보자는 구상이었다. 보수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뒤집어보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나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전경련은 1960년대 기업가 정신을 가진 창업자들이 주도해 세웠다. 이후 정부 주도 산업정책과 보조를 맞춰 한국 경제의 압축성장에 기여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설립 수십 년이 지나면서 초심을 많이 잃었다. 당시 전경련 회장은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이었다. 부회장을 포함한 전경련 회장단에는 주요 재벌 총수들이 들어갔다. 사실상 각 ‘재벌 패밀리’를 대표하는 모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시각에서 전경련이 아닌 ‘새로운 전문 대기업 단체’를 강구할 필요가 있었다.

“전경련은 재벌 2, 3세 사교 클럽”
‘주도세력 바꾸기’ 구상, 결국 무산
부작용 심각한 ‘출총제’ 완화 결정
“재벌에 항복문서” 맹비난 쏟아져

외부 행사를 마치고 청와대로 돌아온 뒤 곰곰이 생각했다. 오영호 산업정책비서관을 찾았다. 산업자원부 차관보를 지낸 오 비서관은 산업계에서 신망이 두텁고 인맥도 넓었다. 취지를 설명하고 새로운 경제단체를 만들 수 있는지 알아보자고 했다. 가칭 ‘진보경제인모임’으로 이름을 붙였다. 다만 대통령 지시란 말은 하지 않았다.

이후 몇몇 사람을 조용히 만났다. 호의적 반응도 꽤 있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을 한곳에 모아 토론을 했더니 모두 반대였다. 누구도 공개된 자리에서 재벌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어하지 않아 했다. 결국 제대로 추진도 못 해보고 접어야 했다. 복기해 보니 우선 이런 큰일을 벌이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대통령 임기를 불과 1년 정도 남긴 시점이었다. 게다가 재벌의 힘과 영향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당시엔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노 대통령도, 나도 상당히 순진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YS(김영삼 대통령)의 금융실명제처럼  비밀스럽게 준비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발표해야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때 진보경제인모임이 성공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전경련을 창구로 재벌들에게 거액을 거둬들인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도 양상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러면 문재인 정부에서 ‘전경련 패싱’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전경련을 따돌리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강자독식 주장 전경련, 존재 가치 없어”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청와대에서 회의를 마치고 나온 노 대통령이 불같이 화를 냈다. 평소에는 거의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더니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을 거칠게 비난했다. “아주 나쁜 사람”이란 말도 했다. 잠시 후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물어볼 틈도 없었다.

나하고 대통령 비서실장하고 한쪽 구석에 앉아 긴급히 상의했다. 이병완 비서실장이었는지, 문재인 비서실장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모른 척합시다. 혹시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때 이유를 물어보고 판단합시다.” 둘이서 이렇게 결론을 냈다. 결국 아무 일도 없이 끝났다.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다른 정권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무 일도 없다는 게 정말 대단한 정권이다.’ 군사정권 시절 대통령에게 밉보였던 재벌 그룹이 해체됐던 일이 새삼 머릿속에 떠올랐다.

2007년 2월 노 대통령은 취임 4년을 맞아 박 회장을 포함한 기업인들을 특별사면했다. 박 회장에게 불이익은커녕 혜택을 준 셈이다. 당시 나는 노 대통령에게 박 회장의 사면을 건의했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때문이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박 회장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그때 IOC는 법원의 유죄 판결을 이유로 박 회장의 위원 자격을 정지한 상태였다. 특별사면 두 달 뒤 IOC는 박 회장의 위원 자격 정지를 풀었다.

청와대 정책실장 시절 나는 공개적으로 전경련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적이 있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의 발언을 반박하면서다. 조 회장은 2007년 7월 25일 전경련 제주 하계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차기에는 경제대통령이 나와야 합니다. 옛날에 시골 땅 좀 샀다고 나중에 총리가 못 되기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 다 들추면 제대로 된 사람이 있겠습니까.” 조 회장과 사돈 관계인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주자를 편드는 발언으로 해석됐다.

나흘 뒤 내가 나섰다. 한국능률협회와 무역협회가 주최한 제주도 하계 세미나의 초청 강연이었다. “(조 회장이) 시대착오적이고 정치적 주장을 했습니다. 전경련이 뭐 하는 곳입니까. 비정규직은 나 몰라라 하고 사회통합도 나 몰라라 하고 강자독식 논리만 주장해서는 존재할 가치가 없습니다.” 당시 ‘청와대 브리핑’에서 내 발언을 자세히 전했다. 언론이 주요 기사로 쓰면서 파장이 커졌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나에게 정책실장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가족경영 재벌과 대기업 구분해야”

그렇다고 나나 노 대통령이 반기업이었던 건 결코 아니다. 노 대통령이 진영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경제 정책에는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대폭 완화도 있다. 2006년 11월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이 당정 협의를 거쳐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 법안을 두고 진보 시민단체들은 격렬히 반대했다. 심지어 “노무현 정부가 재벌에게 항복문서를 보냈다”는 말까지 나왔다.

흔히 재벌개혁을 말하는 사람들은 이런 논리를 편다. ‘우리나라 재벌은 문어발식 확장을 한다. 그걸 막으려면 계열사 간 투자를 제한해야 한다. 그러니 출총제 강화는 꼭 필요한 규제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현실에선 별로 맞지 않는 얘기다.

문어발식 확장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재벌이 빵집·문구점 같은 골목상권에 진출하는 걸 지적한다. 차분하게 따져보자. 사실 이런 사업은 투자금이 많이 들지 않는다. 출총제로는 재벌의 골목상권 진출을 막을 수 없다. 어느 재벌이 적은 투자금으로 회사를 세운 뒤 ‘일감 몰아주기’로 사업을 키운다고 치자. 이런 편법을 막는 데 필요한 건 출총제(사전규제)가 아니다. 불공정 행위를 강력히 제재(사후제재)하는 것이다.

특히 재벌과 대기업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 재벌을 영어식으로 표현하면 ‘패밀리 런 콩글로머리트(Family-run Conglomerates)’, 즉 가족경영 복합기업이다. 가족경영이 아닌 대기업까지 뭉뚱그려 규제하면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재벌의 폐해는 고쳐나가되 대기업의 경제활동은 지원해야 한다. 나는 이런 취지를 노 대통령에게 진지하게 설명했다. 노 대통령도 동감이었다.

이런 일을 겪으며 진보 진영에서 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신자유주의에 물들어 노무현을 보수화시킨 관료”라는 말도 나왔다. 사실 나는 신자유주의가 뭔지도 잘 몰랐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경제 성장과 투자에 좋은 방안을 찾자는 생각뿐이었다.

폐지한 중기 고유업종, MB가 되살려

우리 사회에서 친기업이란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기업의 투자와 혁신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나는 친기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권력자나 관료가 기업과 결탁한다는 의미에선 결코 친기업이 아니었다. 청와대에 있을 때 나도 스스로 주의했고 비서관들에게도 각별히 주의를 시켰다. 쓸데없이 기업에 전화해 뭔가 부탁하거나 간섭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 이구택 포스코 회장의 말을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청와대에서 전화 한 통 안 한 건 변양균 정책실장 시절이 유일하다”고 했다고 한다.

중소기업 고유업종 폐지도 진보 진영의 반발이 심했다. 중소기업 고유업종은 보호 장치인 동시에 족쇄다. 한 번 중소기업은 영원히 중소기업으로 남아 있으라는 얘기와 같다. 중소기업이라고 무턱대고 보호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자율과 경쟁을 기반으로 시장 친화적 방식이 필요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활성화하는 데 주력했다. 2006년 6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 시행에 들어갔다. 우수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주면서 실질적인 효과를 달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중소기업 고유업종을 ‘적합업종’으로 이름을 바꿔 부활시켰다. 동반성장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적합업종 지정 권한을 줬다. 노무현 정부에서 온갖 반대를 뚫고 어렵게 이뤄낸 걸 거꾸로 되돌린 셈이다. 시장경제를 한다는 보수 정부가 칸막이를 치는 데 앞장선 꼴이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정리·대담=주정완 논설위원, 이정재 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