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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태원 국조’ 정쟁 벗어나 내실 있게 추진돼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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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여야,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전격 합의

참사 정쟁화 말고 진정성 있게 임해야

국민의힘 주호영(왼쪽)·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23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실시에 대한 여야 합의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주호영(왼쪽)·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23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실시에 대한 여야 합의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가 진통 끝에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어제 합의했다. 민주당과 정의당, 기본소득당 등 야 3당이 지난 9일 국회에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며 국민의힘과 팽팽한 힘겨루기를 해온 지 2주 만이다. 본회의에서 계획서가 의결되면 바로 45일간의 조사가 시작된다. 실제 활동은 새해 예산안 처리 직후 기관보고, 현장검증, 청문회 활동 등으로 본격화한다. 쟁점으로 꼽힌 조사 대상 기관에는 경찰, 소방과 함께 대통령실 국정상황실과 국가위기관리센터, 행정안전부 등이 포함됐다. 여야가 교착상태에서 늦게나마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다행스럽다.

국정조사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찬성 응답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참사에 책임져야 할 고위 관계자들의 잇따른 면피성 언행이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준 측면이 컸다. 한 달이 다 돼 가도록 지지부진한 경찰 수사에 대한 불신과 한계도 다른 차원의 객관적 조사가 필요하다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그제는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기도 했다.

여야 협상은 국민의힘이 어제 의원총회에서 ‘예산안 처리 후 국정조사 실시’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물꼬를 텄다. 국정조사 불가를 고수하던 여당이 자세를 바꾼 건 이처럼 민심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야당 단독으로 조사를 추진하더라도 막을 수 없고, 무엇보다 야당 협조 없이는 예산안 처리가 쉽지 않은 현실적 어려움도 고려했을 것이다.

국회가 이제라도 참사의 진상과 책임을 철저히 따지고 제대로 된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나선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법적, 제도적 허점을 정확히 파악해 입법으로 뒷받침할 책임도 있다. 수사 영역 밖에 놓인 정치적 책임에 대한 소재도 꼼꼼히 짚어야 한다. 다만 핵심은 ‘국정조사가 얼마나 내실 있게 진행될 수 있느냐’다. 자칫 참사의 실체적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책 마련이라는 본연의 궤도에서 벗어나 정치 공세로 흐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민주당 의원들이 장외로 나가 정권 퇴진을 외치는 등 참사를 정쟁화하려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여야 모두 다시는 이런 참사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책임의식을 갖고 진정성 있게 임해야 한다. 강제 수사권이 없다는 한계 등으로 과거 ‘빈손 조사’라는 비판을 받았던 뼈아픈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선결 과제는 새해 예산안 처리다. 고물가와 고금리 속에 맞게 될 내년 경제 전망은 암울하다.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의 어깨를 더욱 짓누르고 있다.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가급적 법정 기한(12월 2일) 내에, 늦어도 이번 정기국회 회기 안에는 예산안이 처리돼야 한다. 여야 모두 국정조사에 앞서 예산안 처리에 매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