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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집중] “우울증 겪을 때 힘든 건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모른다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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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해서 찾아왔습니다』 공저자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덕현 교수 인터뷰
지치고 답답하면 자신의 얘기 해야
욕심 때문에 만족 못하는 경우 많아”
의사와 록커의 대화 담은 모음집
고민에 대한 대화의 중요성 강조

한덕현 교수는 노브레인 이성우씨와 함께 이 책을 통해 “당신의 느낌대로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 중앙대병원]

한덕현 교수는 노브레인 이성우씨와 함께 이 책을 통해 “당신의 느낌대로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 중앙대병원]

록커는 이렇게 털어놓는다. “선생님, 저는 사람 만나는 일이 힘들 때가 있어요. 사람마다 다른 개성, 다른 취향, 다른 성품을 가지고 있다 보니 사람 대하는 방식이 수학 공식처럼 정해져 있지 않잖아요….”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혼자 생각하고 예상하는 대로 흘러가기 어려운 것이 당연합니다. 대인관계를 편하게 즐기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꺼내놓고, 상대방의 반응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대인관계에서 음주·우울함, 꿈과 현실까지 다양한 분야로 이어진다. 『답답해서 찾아왔습니다』(사진)는 이런 두 사람의 대화 모음집이다. 의사는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덕현(52) 교수, 록커는 노브레인의 보컬 이성우(46)다.

록커는 개인의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대변한다. 록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정신과 의사도 곧 ‘우리’이기에 의사의 이야기도 곳곳에 숨어있다. 이 책은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현대인, 특히 중장년이 이를 헤쳐나가는 방법을 대화 속에서 찾고 있다. 최근 중앙대 병원에서 공저자인 한 교수를 만났다.

책을 쓴 계기는.
제가 팀 닥터로 있는 야구팀의 선수 한 명이 ‘아는 연예인이 있는데 만나봤으면 좋겠다’해서 만나게 됐어요. 그분이 노브레인 이성우 보컬이었습니다. 제가 노브레인을 참 좋아했어요. 병원에서 만나면 의사와 환자로 만나게 되고 마음 깊은 얘기가 나오지 않을 거 같아서 외부에서 친구처럼 만났습니다. 사실 처음엔 이성우씨가 상당히 과격할 줄 알았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그렇지 않아요. 보통 우리들의 고민이에요.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냥 흘려보내기가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나눈 얘기를 책으로 내보자 했습니다.

한 교수는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실 우울증이나 불안증을 겪을 때 가장 힘든 것은 내가 정확히 무엇 때문에 힘든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내가 지금 이런 것들로 힘들다고 말하는 순간, 이미 내 머릿속에는 어떤 것이 힘들고 그래서 어떤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만큼 힘들다는 얘기를 할 정도로 정리가 된다”며 지치고 답답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라고 조언한다.

‘불확실한 오늘과 내일. 거기에 억눌린 욕구까지 더해져 걱정과 스트레스라는 괴물이 저를 집어삼킬 것만 같다’고 토로하는 부분이 있다. 이성우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다.
그런 불안은 사실 나를 돌아보고 있다는 반증이다. 많은 사람이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위를 쳐다본다. 그 정도면 괜찮은데도 스스로 완성이 덜 된 것 같고, 남들은 다 성공했는데 나는 못한 거 같다고 여긴다. 그럼 마음을 창피해서 표현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동기들은 다 이사되고 사장되고 그런 거 같지만, 떨어져 나간 사람들 많지 않느냐. 내가 진짜 못났던가 객관적으로 파악해 보자는 거다. 객관적으로 나의 현실을 파악했는데 내 걱정과 불안이 맞는 거면 주변에 도움을 청하면 된다. 경제적 도움이던, 지식적 도움이던. 그리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보자. 그런데 사실 욕심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불안해 하면서 살 필요 없다.
니체를 인용해 ‘지금 네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옳고, 또 자유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생이 진정한 네 인생’이라고 했다. 맞는 얘기지만 자기 생각이나 행동이 틀린 것을 바로잡을 기회를 없애버리는 것일 수도 있지 않나.
이성우씨의 나이와 고민 내용도 그렇고 이 책은 40대 이후를 주된 독자층으로 보고 썼다. 40대 이후면 진짜 범죄를 저지르거나 하는 게 아니면 크게 잘못하는 거 없다. 젊은 시절을 거치면서 이미 정신적으로 많이 다듬어졌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살아도 큰 문제 없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정신과 상담을 어려워한다.
예전보다 정신과 문턱이 많이 낮아졌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높다. 선입견과 두려움 때문이다. 정신과를 찾으면 미친놈 소리 들을까 걱정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정신병원이 감옥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정신과는 그런 곳이 아니다. 이야기를 편하게 하고, 들어주고 조언하는 곳이다. 마음건강을 돌보는 곳이다.
책에 게임 얘기가 나온다. 자녀 특히 중ㆍ고등학생을 둔 부모에게 자녀의 게임 몰입은 큰 고민이다.
게임 문제로 상담오는 부모에게 ‘아이가 게임만 안 하면 되느냐’고 물으면,  ‘공부도 잘해야 한다. 태도도 좋아야 한다’는 등 다른 이야기를 같이한다. 근본적인 문제가 따로 있다는 거다. 게임을 하는 아이에게 ‘게임 말고 잘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 공부를 말한다. 청소년기는 가장 객관적인 시기다. 반 학생 32명 중 자기 성적이 29등이면 그 성적을 자기 자신으로 받아들여 29등의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나이 좀 더 들어보면 그게 아니라는 알지 않느냐.  게임은 그런 청소년 시기에 자기를 인정받고 싶은 수단이다. 너무 막으려만 하지 말고 운동이든 공부든 다른 세상의 문을 열어 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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