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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세상](53)'뻣뻣한 리더십으로는 무엇도 이룰 수 없다'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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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간 아들이 휴가 나왔다. 밥상을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정담을 나눈다.

"우리 사단장 정말 존경할만한 분이에요. 얼마 전 제 몸에 종기가 났어요. 사단장님이 지나가다 보시고는 직접 입으로 고름을 빨아주었어요."
"사단장 이름이 무엇이더냐?"
"오기(吳起)요"

이 말을 들은 어머니가 옆 방으로 홀로 가더니 슬피 운다.

"너도 곧 죽겠구나. 너의 아버지가 그래서 죽었다…."

춘추전국시대 초기 명장 오기. 그는 병사들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면서 세심하게 병사들을 보살폈다. 바이두

춘추전국시대 초기 명장 오기. 그는 병사들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면서 세심하게 병사들을 보살폈다. 바이두

사연은 이랬다.

남편 역시 군대에 갔더란다. 몸에 종기가 났는데, 상관이 달려들어 입으로 농을 빨아냈다. 남편은 감동했고, 상관 명령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앞장섰다. 싸움에는 항상 선봉에 섰다. 작전 중 너무 깊이 적진에 들어갔고, 결국 전사했다. 그 상관이 바로 오기였다.
어머니는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아들 역시 상관을 위해 적진으로 뛰어들 것으로 걱정한 것이다.

춘추시대 초기의 명장 오기 장군(BC440~BC381) 얘기다. 그는  병사들과 동고동락(同苦同樂)했다. 함께 걷고, 함께 잤다. 세심하게 병사들을 보살폈다. 감동할 수밖에…. 병사들의 사기는 높아졌고, 나가는 전쟁마다 크게 승리했다.

무엇이 병사가 죽음을 무릅쓰고 선봉에 나서도록 했을까?

주역 58번째 '태위택(兌爲澤)' 괘는 이 질문에 '기쁨'이라고 답한다.

연못으로 상징되는 태(兌, ☱)가 위아래로 겹쳐 있다. '중택태(重澤兌)'괘로 불린다. 태괘(☱) 자체가 즐거움을 상징한다. 즐거움이 위아래 겹쳐있으니 기쁘고, 또 기쁜 형상이다(兌, 說也). '즐거움의 괘'로 통한다.

괘사(卦辭)를 설명하는 단전(彖傳)에 이런 말이 나온다.

說以先民, 民忘其勞, 說以犯難, 民忘其死.
기쁨으로 백성을 이끄니 백성들은 수고로움을 잊는다. 기쁨으로 어려운 일에 대처하니 백성들은 죽음을 잊고 달려든다.

핵심은 '기쁨(說)'이다. 백성들은 흥(興)이 나면 몸을 사리지 않고 일한다. 국가적인 재난을 당하면 죽음을 무릅쓰고 위기 극복에 동참한다. 백성들이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리더십의 핵심이라고 '택(澤)'괘는 말하고 있다.

휴가 나온 아들이 고름을 빨아주는 상관을 보고 든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주역 58번째 '태위택(兌爲澤)' 괘는 연못으로 상징되는 태(兌, ?)가 위아래로 겹쳐 있다. 바이두

주역 58번째 '태위택(兌爲澤)' 괘는 연못으로 상징되는 태(兌, ?)가 위아래로 겹쳐 있다. 바이두

어떻게 하면 구성원들을 기쁨으로 감동하게 할 수 있을까.

부드러움이다. 엄격함으로는 구성원들의 기쁨을 끌어낼 수 없다. 근엄한 부장과는 밥 한 끼도 함께 먹기 싫은 게 평사원의 마음이다.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상사를 좋아하고, 따른다.

그렇다고 속이 물러야 한다는 얘기다. 겉으로는 부드러우면서도 속으로는 바름(貞), 강직함을 지켜야 한다. 단전은 이렇게 적고 있다.

剛中而柔外, 說以利貞, 是以順乎天而應乎人.
강한 것이 가운데 있고 부드러운 것이 밖으로 드러나니(☱), 겉으로는 기뻐하더라도 속으로는 바름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하늘의 뜻에 순응하고, 백성의 부름에 호응할 수 있다.

한마디로 외유내강(外柔內剛)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리더라야 구성원의 기쁨을 끌어낼 수 있다. 뻣뻣한 리더십으로는 '기쁨의 공감'을 끌어낼 수 없다.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 회사를 이끄는 CEO, 학생을 지도하는 선생님… 모든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백성들이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리더십의 핵심이라고 '택(澤)'괘는 말하고 있다. 영화 '위워솔져스의 한 장면(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백성들이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리더십의 핵심이라고 '택(澤)'괘는 말하고 있다. 영화 '위워솔져스의 한 장면(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택(澤)' 괘는 기쁨에 크게 두 가지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사사로움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和兌, 吉
조화로운 기쁨이니 길하다.

'和(화)'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것을 뜻한다. 사사로움이 없으니 주변과 잘 조화를 이룬다. 편협한 애정은 기쁨을 해칠 뿐이다. 내 편이라고 낙하산 태워 공기업 사장으로 내려보내고, 대학 후배라고 실력도 되지 않는 직원 승진시키면 '조화의 기쁨'은 사라지고 만다. 정치에서도, 가정에서도, 기업 경영에서도 꼭 명심해야 할 게 '화태(和兌)'다.

둘째는 신뢰다.

孚兌, 吉, 悔亡
믿음으로써 기쁘게 하니 길하고, 후회가 없다.

즐거움의 바탕에 신뢰가 깔려있어야 한다. 구성원들은 리더의 교언영색(巧言令色)을 금방 구별할 줄 안다. 겉으로는 웃으며 잘 대해주지만, 속으로는 상대를 이용하려는 리더를 누가 따르겠는가. 그런 사령관을 위해 목숨을 바칠 병사는 없다.

'택(澤)' 괘는 공평하고, 신뢰가 깔려있어야 조직에 기쁨이 살아난다고 말한다. 바이두

'택(澤)' 괘는 공평하고, 신뢰가 깔려있어야 조직에 기쁨이 살아난다고 말한다. 바이두

'기쁨'은 인간관계를 이루는 에너지다. 상하관계뿐만 아니라 친구 사이에서도 꼭 필요하다.

麗澤兌, 君子以朋友講習
연못이 나란히 이웃해 있는 형상이 '태' 괘의 모습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친구들과 함께 토론하고 학습한다.

연못은 나란히 있으면서 서로 보충하고 적셔준다. 서로 영향을 미쳐 함께 그득한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마찬가지로 군자는 함께 어울려 서로 발전하고, 도움이 되려 노력해야 한다. 함께 모여 공부하고, 세상을 논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 '기쁨'은 고스란히 논어로 이어진다.

學而時習之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공부하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는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친구가 있어 즐겁고, 함께 공부하고 세상을 논하니 기쁘다. 즐거움의 최고 경지가 아닐 수 없다. 논어 첫 구절로 손색이 없다.
고름 빨아주던 사단장을 자랑하던 아들은 어떻게 됐을까. 그 역시 공격의 최선봉에 섰다가 사망했다고 '오기연저(吳起吮疽)' 고사는 전하고 있다.

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해주는 남자를 위해 화장을 한다.

나라 발전, 회사 성장, 가정 화목…. 이 모두 구성원들의 기쁨에 달려있다. 세상을 바꾸는 에너지가 바로 '기쁨'이다.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구성원들을 기쁘게 하라!

주역 '택(澤)'괘가 3000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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