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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게 뛰려고만 했다"…세계 홀린 韓발레리나 서희 다른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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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희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수석무용수. 지름 약 7cm의 바(barre)에 깃털처럼 앉아있다. 섣불리 따라하지 말 것. 우상조 기자

서희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수석무용수. 지름 약 7cm의 바(barre)에 깃털처럼 앉아있다. 섣불리 따라하지 말 것. 우상조 기자

‘서희’는 꿈의 다른 이름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첫 한국인 수석무용수인 그의 이름 두 글자는 발레를 넘어 전 세계 공연예술계의 아이콘이 됐다. 지난 17일 경기도 동탄 반석아트홀의 한 연습실에 모인 10대 무용 꿈나무들에겐 살아있는 전설. 이날 그는 자신의 이름을 넣어 만든 재단, HSF(Hee Seo Foundation) 대표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했다. 학생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고, 자세를 잡아주고, 직접 시범을 보이는 모습에 정성이 듬뿍 담겨 있었다. 학생들은 서희 대표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하나를 몸과 맘에 입력시켰다. 한 학생은 “꿈인 분을 두 눈 앞에서 보다니, 진짜 꿈 같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마스터클래스 직후, 연습실에서 서희 대표를 따로 만났다.

ABT 수석무용수는 고전과 컨템퍼러리를 넘나들며 다양한 무대를 소화하는 극한 직업이다. 그런 그가 시간을 쪼개 태평양을 건너와, 그것도 무료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일회성 이벤트도 아니다. 그는 2014년 HSF를 꾸린 뒤 2015년부터 틈만 나면 전국을 돌며 마스터클래스를 열어왔다. 그가 가르친 학생들 숫자는 5000명을 넘겼다.

서희 무용수는 포앵트슈즈(pointe shoes, 일명 '토슈즈')를 신은 모든 순간에도 완벽한 발레 포지션을 유지했다. 수십년의 훈련으로 얻은 전형적인 발레 무용수의 발등. 아름답다. 우상조 기자

서희 무용수는 포앵트슈즈(pointe shoes, 일명 '토슈즈')를 신은 모든 순간에도 완벽한 발레 포지션을 유지했다. 수십년의 훈련으로 얻은 전형적인 발레 무용수의 발등. 아름답다. 우상조 기자

체력과 열정의 비밀이 궁금하네요.  
“한 번도 나 스스로만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장학금도 받고 좋은 발레단에 입단하는 행운도 누린 것은 좋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죠. 항상 ‘내가 받은 것처럼 나도 보답하고 싶다’고 생각해왔고, HSF를 만들면서도 좋은 후원자분들과 팀원분들을 만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한국 무용수의 기량은 참 뛰어나요. 더 많이 알리고 싶어요.”  
좋은 분이니 좋은 인연이 왔겠죠.  
“(웃으며) 글쎄요. (팀원들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모두의 도움이 있었던 덕분이고, 또 저도 열과 성을 다해서 어린 학생들을 도우려고 해요. 저는 제가 가르치는 걸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춤을 잘 추는 것과 춤을 잘 가르치는 건 별개이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내 앞에 있는 저 사람이 한국인인데, 해외 발레단에서 주역이고, 나도 할 수 있겠구나’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발레는 재능이 기본이지만, 재력이 강력한 윤활유가 되는 예술이다. 해외 유수의 콩쿨에 나가 입상을 하기 위해선 작품비부터 의상 등 부대비용이 만만치않다. 그런 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서희 대표가 또 도입한 게 있으니, 세계적 콩쿨인 미국의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YAGP)의 한국 예선 격인 ‘YAGP 코리아’를 만든 것. 미국행 비행기를 타지 않고 한국에서 YAGP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콩쿨뿐 아니라, YAGP 유관 무용수들과 지도자들의 마스터클래스도 한국학생들을 위해 열고 있다. 한국 발레의 해외 진출을 위한 중요한 물꼬를 터준 것이다. 해외 무대를 꿈꾸지만 여의치 않은 한국의 어린 무용수들에겐 가뭄에 단비같은 기회다.

태어날 때부터 피루엣 턴을 돌았을 것 같은 서희 대표이지만, 그가 발레를 처음 시작한 건 초등학교 6학년. 전공을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다. 집 근처 발레학원에서 취미로 시작했다. 그러다 6개월 후 덜컥 선화예중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등으로 유학을 갔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수석무용수 겸 HSF 재단 대표로 바쁜 하루를 보내는 발레리나 서희. 우상조 기자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수석무용수 겸 HSF 재단 대표로 바쁜 하루를 보내는 발레리나 서희. 우상조 기자

수석무용수로서의 서희 대표의 삶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본인 연습도 매일 하겠죠?  
“매일 루틴이 있어요. (발레 기본 훈련인) 바워크와 센터워크로 몸을 다지고, 요가와 명상으로 마음을 정리하죠. 이렇게 매일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저에게 큰 안정감을 줘요. 반려견인 테디도 큰 힘을 주고요(웃음).”    
발레를 ‘잔인한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죠.  
“발레 때문에 힘들어서 운 적도 많아요. 발레가 싫어서가 아니라, 더 잘하고 싶은데 현실의 거울 속 나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 떄문이죠. 더 높게 뛰고 싶었으니까요. 내 꿈 속의 나와, 현실 속의 나를 가장 가깝게 하려는 고민을 항상 해왔어요. 그런데 요즘은요, 높게 가기 보다는 깊게 가고 싶어요. 더 깊이 있는 춤을 추고 싶은데, 그것도 쉽진 않네요.”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했나요.  
“가장 중요한 건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거에요. 슬럼프는 결국 순간이에요. 그 순간은 분명히 지나갑니다. 그런데 계속 오지요. 그 순간들을 이겨내고 또 이겨낼수록 더 단단해질 수 있어요. 저는 지금도 무대에 설 때 떨려요. 그 떨림을 어떻게 컨트롤 하는지가 중요한 거죠.”    

이날 서희 수석무용수의 수업을 들은 이 중, 제2, 제3의 서희가 나올 터다. 우상조 기자

학생들은 "오늘 배운 걸 빨리 학원에 가서 더 연습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우상조 기자
서희 대표는 마스터클래스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학생들을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쳤다. 우상조 기자
최정상에 오르기 위해 포기한 것들도 많을 텐데요.
“서른이 넘어갈 즈음, 그런 마음이 정리가 됐어요. 제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보상 심리가 강했던 때가 있어요. 하지만 돌이켜보니, 제 인생은 제가 선택한 거잖아요. 그걸 깨달으니 아쉬움이 사라졌어요. 일종의 장인정신으로 발레를 해온 자신을 조금, 칭찬해주고 싶기도 하고요. 남들이 하는 걸 못하는 게 많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줄리 켄트 워싱턴발레단 감독과,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을 존경한다고 했는데, 서희 대표도 같은 길을 걸을까요?  
“(웃으며) ABT 무용수들끼리 이런 농담을 해요. 그린룸(the Green Room, 단장 집무실)에 들어가면 너무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을 것 같아서 주름이 빨리 생길 것 같으니 안 가겠다고요. 저는 무용수로 아직도 하고 싶은 역할도 많고 더 잘해내고 싶어요. 재단일도 있고요.”  

서희 대표는 언제 쉬는 걸까. 그는 싱긋 웃으며 “이젠 발레와 재단 일, 휴식에 구분이 없어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모두들처럼, 저도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가만히 있다고 행복이 주어지진 않죠. 적극적으로 찾아야 해요. 작은 거에도 행복을 느낄 줄 알아야 하고요. 10년 후에 아줌마가 되도 계속 행복을 찾을 거에요. 그래서도 발레는 제게 소중하죠. 발레는 결국 사랑과 행복을 표현하니까요. 공연 많이 봐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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