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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북·중·러발 반작용이 밀려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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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외교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강한 대북정책과 동맹 강화가 특징이다.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것은 미·중, 미·러 사이에서 미국에 크게 기우는 정책이다. 새 정부는 미국의 인태 전략, 공급망, 대만해협, 남지나해, 신장 위구르, 우크라이나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부가 주저하던 이슈에 관해 미국에 적극 동조했다. 이러한 정책 선회는 정부 출범 직후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에서부터 시작돼 최근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 한·미·일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있다.

미국은 이를 크게 반기면서 한국을 한·미·일 공조와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 대러 견제 구도의 중요 참여자로 삼고자 노력 중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북한이 대화를 끊고 도발로 치달으니, 북한에 터프한 대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동맹도 다지지 않을 수 없다. 미·중, 미·러 대립이 심화되고, 국제질서가 미국과 중·러 간 진영구도로 이행하는 상황에서, 한국처럼 미국의 동맹이자 서방과 깊은 연계하에 있는 무역 대국이 모호한 위치에 설 수는 없다. 미국과 공조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그 길로 갈 경우, 북·중·러로부터 반작용이 불가피할 터인데, 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일 것이다. 자칫 북·중·러와의 대립이 심화돼 외교가 작동할 공간이 대폭 축소될 수 있다. 그러면 한반도의 비핵 평화통일을 도모할 여지도 크게 줄어든다. 냉전시기의 한국 외교가 그랬다. 당시 한국은 진영대결의 최전선에서 북·중·러와 단절돼 있었다. 21세기 한국 외교가 그 길로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강한 대북 정책, 동맹 강화라는
새 정부의 외교 정책 속에서도
유연한 대화, 외교공간 확보해
북·중·러의 일거 결속 방지해야

이미 북한은 새 정부 출범 후, 도발 수위를 극적으로 높여가고 있다. 미사일을 하루에 20여 차례 발사할 정도다. 그중 일부는 우리 측 수역에 낙하했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7차 핵실험도 예견된다.

중국은 한국이 미국으로 기울자 경고음을 내고 있다. 주권 침해 소지가 있는 5개 항의 마땅히 해야 할 조치를 요구했다. 중국은 새 정부의 노선이 수교 이래 중국에 가장 부정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중국은 지난 30년간 한국을 성과적으로 견인해 중국을 배려하도록 ‘길들여’ 놓았는데, 새 정부가 이를 뒤집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냥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제재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한국을 비우호적 행위국가로 규정했다. 이어 푸틴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결정했다며 관계의 파탄을 경고했다. 이렇듯 북·중·러발 반작용이 예상되니, 한국으로선 주류 국제사회와 함께하면서도 별도로 북·중·러와의 관계를 꾸려 나갈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첫째, 북한에 대한 억제력을 강화하되, 남북이 강대강의 악순환에 매몰되지 않도록 절도 있게 대응하고 대화의 가능성도 모색하는 것이 좋다.

둘째, 우리가 미·중, 미·러 사이에서 미국에 어느 정도로 기울고, 중·러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최적인가를 고심해야 한다. 우리가 설 좌표와 나갈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좌표가 없으면 한쪽으로 과도하게 기울거나 오락가락할 수 있다. 동맹인 미국에 더 가깝지만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중·러와도 그리 멀지 않은 좌표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 정책의 일관성, 예측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이를 기초로 한국은 서방과 함께하면서도, 그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입장에 서서 중·러에 대한 외교 공간을 확보하고 소통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중국과 러시아가 적어도 자신의 공통 이해인 한반도 비핵 평화에 대해서는 한국과 협력할 의지를 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비유하자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은 러시아의 공격적 행동을 견제하는 데 보조를 같이하지만, 독일과 프랑스의 대러 정책이 미국과 영국의 정책과 똑같지는 않다. 독일과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대러 자세를 취한다. 이를 기초로 러시아와도 소통하며 필요시 역할을 한다. 한국의 대중, 대러 정책도 기본은 미국, 일본과 유사하지만 미국, 일본의 정책과 똑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셋째, 우리의 강성 대북정책과 대미 공조가 북·중·러를 일거에 결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 개발은 중·러도 반대한다는 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 러시아가 중국보다 비확산을 중시하고 한반도에 대해 다소 다른 이해를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중·러를 대하는 것이 좋다.

넷째, 이 모든 대처를 효율적으로 하려면 국론 결집이 있어야 하니 초당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외교 사안에 관해 야당과 대화하고 협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좋다. 지금과 같은 여야 대결이 지속된다면 낮은 지지도하에 있는 정부의 대외 행보가 힘을 받을 개연성은 적다. 정부가 조금이라도 초당적인 접근에 나서는 것이 좋겠다.

아마도 조만간 북·중·러발 반작용이 밀려올 것이다. 경제 위기와 국내정치 격돌 국면이 함께 올 소지도 있다. 새 정부가 여러 갈래의 파고 속에서 외교 시험대를 잘 헤쳐가기 바란다. 그러려면 어렵거나 내키지 않더라도 꼭 해야 할 일을 피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