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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종주 논설위원이 간다

“젊은 세대에 문 열지 않으면 정당도, 국가도 소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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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임종주
임종주 기자 중앙일보

청년정치, 선택의 문제 아니다

유권자 60% “20~30대 청년 정치인에 투표할 의향 있다”
거대 양당, 인재 육성보다 그때그때 선거용 ‘발탁’에 치중
한국 청년정치 활성화 세계 최하위권… 인재육성 불모지
30대 총리, 40대 대통령 나올까…인재육성 시스템 갖춰야

임종주 논설위원

임종주 논설위원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3㎞가량 떨어진 양평동의 한 복합문화공간. 지난 3일 저녁, 어둠이 짙게 깔리자 젊은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곳 ‘청년정치학교’의 올해 마지막 수업이 있는 날이다. 5년 전 바른정당 창당 때 시민 정치 교육을 표방하며 출범한 청년정치학교 졸업생은 줄잡아 350명.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며 정치권을 향해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30대 소화기내과 전문의 서연주씨는 “2020년 의사 파업 때 정책 실행에 설득과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해 정치학교를 찾게 됐다”고 입문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 3일, 서울 영등포구 청년정치학교 강의 모습. 임종주 기자

지난 3일, 서울 영등포구 청년정치학교 강의 모습. 임종주 기자

#그다음 주말 오후, 마포에 자리한 ‘노회찬정치학교’는 올해 마지막 심화 과정의 중반을 맞고 있었다. 고 노회찬 의원이 꿈꾼 ‘좋은 정치’ 실현을 내건 이 학교는 학생 절반 가까이가 청년들이다. 30대 활동가 이채은씨는 “사회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어떤 언어로 설득하고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 정치학교의 문을 두드렸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노회찬정치학교 강의 모습. 노회찬재단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노회찬정치학교 강의 모습. 노회찬재단

여론과 현실 엇갈리는 청년정치
MZ세대로 통칭하는 20~30대 청년들의 정치에 대한 자각은 이렇듯 요란하지 않되 생명력 있게 움트고 있었다. 청년정치는 시대에 따라 ‘젊은 피 수혈론’ ‘40대 기수론’ 등으로 그 이름만 달리했을 뿐 늘 정치권 핵심 화두였다.
그렇다면 유권자들은 청년정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고려대 정치연구소-한국리서치의 ‘청년의 정치참여 조사’(2021년 10월) 결과는 흥미로운 실마리를 제공한다.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나온 이 조사에서 응답자 10명 가운데 6명(평균 60.7%)이 2030 청년 정치인에게 투표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는 78.5%가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 같아서”를 꼽았다. 이어 “열심히 일할 것 같아서”(14.5%), “깨끗하고 청렴해서”(3.6%)라는 응답이 차례로 그 뒤를 이었다. 청년정치를 통해 개혁과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의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권혁용 고려대 정치연구소장(정치외교학과 교수)은 “의회가 고연령층 위주라는 점에서 대표성 원리에 어긋나는 데 대한 문제 제기로 볼 수 있고, 변화에 무심하고, 구태나 부패, 기득권 유지 등의 이미지가 강한 기성 정치권에 대한 미러 이미지(거울 이미지) 같은 응답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어진 6·1 지방선거에서는 기초의원(비례대표 포함)의 경우 당선자 2987명 가운데 40세 미만이 333명, 11.1%를 차지했다. 10%를 넘긴 것은 처음으로 4년 전 선거 때의 6.6%에 견줘봐도 많이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50대 당선자가 42.9%, 60대 이상은 27.2%로, 50대 이상이 대다수인 점을 고려하면, 청년의원의 비중은 턱없이 작다. 광역의회로 가면 2030 당선자의 비율(9.5%)은 더 줄어든다. 2030단체장은 기초와 광역을 통틀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청년정치의 가능성과 함께 과제 또한 만만치 않음이 확인된 선거였다.

양당 독과점 패거리 정치의 폐해
우리나라 전체 유권자 가운데 2030세대는 30%가 넘는다. 범위를 40대까지 넓히면 50%에 육박한다. 10명 중 족히 서너 명은 청년 유권자인 셈이다. 그들의 가치관이나 언어는 다른 세대와 확연하게 구별된다. 그에 걸맞게 정치적 몫과 역할이 확대돼야 한다는 주장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이유다.
청년정치학교 교감을 맡고 있는 김세연 전 미래통합당 의원은 “젊은 세대에 열려 있지 않으면 어떤 조직도 소멸할 것이다. 그것은 정당이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막으려면 청년이 정치권에 진입하는 정치 생태계를 만들고, 시민과 정치 사이의 벽이 낮은 정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뉴스1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뉴스1

그러나 우리나라는 청년정치 교육의 불모지나 다름없다. 거대 양당이 젊은 인재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영입이라는 이름으로 뽑아 쓰는 데 치중한 탓이 크다. 양당 독과점 기득권 구조가 낳은 패거리 정치는 2030세대가 객관적이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정치권에 진입할 기회를 봉쇄했다. 청년 인재를 기르려는 시스템도, 의지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정치인들이 노쇠한 이미지를 감추려고 사진 찍을 때 청년을 들러리 세우는 존재 정도로 활용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정치개혁 입법을 주도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선거 때 써먹기 용으로 청년을 내세우고 그런 경우는 있는데 실제로 양당에 청년을 정치적 지도자로 양성하기 위한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지적했다.

기성세대의 편견 반성해야
권위주의적 서열 문화도 청년정치 활성화의 걸림돌로 지목된다. 수평적 동료 의식이나 토론 문화보다 선수(選數)가 우선하고 나이가 존중받는 상하관계가 지배한다. 노회찬정치학교 졸업생인 차해영 마포구 의원(36세)은 “의원이 어리고 초선일 경우 무시당하는 경향이나 분위기가 여전히 존재한다. 청년의 문제를 제일 잘 아는 게 청년이고 해결책을 제일 잘 아는 것도 청년 자신이다. 어느 시기를 어느 연령으로 사느냐에 따라 관점이나 문제의식, 해결책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의 의지나 추진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일부 기성세대의 청년관이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편견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행정안전부 예산안 상정을 요구하는 더불어민주당과 행정안전부 경찰국 예산 삭감을 이유로 예산안 상정을 반대하는 국민의힘이 지난 16일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격돌했다. 이채익 위원장이 정회를 선포한 뒤 의원들이 퇴장한 행안위 사무실. 김성룡 기자

행정안전부 예산안 상정을 요구하는 더불어민주당과 행정안전부 경찰국 예산 삭감을 이유로 예산안 상정을 반대하는 국민의힘이 지난 16일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격돌했다. 이채익 위원장이 정회를 선포한 뒤 의원들이 퇴장한 행안위 사무실. 김성룡 기자

청년정치 활성화 수준은 국제적으로 보면 더 초라하다. 국제의원연맹(IPU)의 2021년 보고서를 보면 30세 이하 국회의원 비율 순위에서 한국은 최하위권으로 분류돼 있다. 40세 이하는 110개 나라 가운데 107위, 45세 이하도 108위로 역시 꼴찌 수준이다. 김형탁 노회찬정치학교 교장은 “청년정치 지망생들을 보면 아이디어도 좋고 다양한 실험도 많이 한다. 청년 정치인 비중이 늘어야 하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체계적인 육성과 지원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년정치 위기론은 본질 ‘호도’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20대 중반에 정치권에 발탁된 대표적 사례다. 이 전 대표는 11년 전 이른바 박근혜 키즈로 정치권에 입문해 30대 최연소 여당 대표의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여권 내 헤게모니 다툼 과정에서 성 상납과 증거인멸 교사 의혹에 발목을 잡혀 사실상 대표직을 잃었다. 박 전 비대위원장은 6·1 지방선거 패배와 계파 갈등 속에 80여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정치권 일각에선 마치 기다렸다는 듯 청년정치 위기론을 설파했다. “나이만 청년이지 하는 행태가 기득권 구태”(홍준표 대구시장) “어린 애가 떼쓰는 듯한 느낌”(설훈 민주당 의원) 등의 독설도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두 젊은 정치인은 체계적으로 실무 능력을 배양하고, 기초 단계부터 리더십을 발휘해 가며, 정치적 의사결정 훈련을 쌓아서 성장한 사례는 아니다. 그런 만큼 두 사람의 현재 모습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면 청년정치가 실패한 것처럼 호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반론도 크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운데)와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왼쪽). 프리랜서 김성태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운데)와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왼쪽). 프리랜서 김성태

정치 불신과 혐오 씻어내는 길
영국의 리시 수낵 총리는 42살이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39살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37살의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이미 3년 전 최연소 정부 수반 기록을 갈아치웠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37살에 총리로 선출됐다.
서구 여러 선진국에서 청년 정치 리더의 활약은 더 이상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각국의 주요 정당을 중심으로 탄탄하게 자리 잡은 청년 인재 육성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 결과다. 독일 집권 사회민주당의 청년조직 유조스(JUSOS)와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의 융에 유니온(JU), 영국 보수당의 청년보수당(YC), 미국 공화-민주 양당의 청년 조직이 그 대표적 사례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 AFP

리시 수낵 영국 총리. AFP

우리나라도 30대 총리, 40대 대통령이 가능할까. 김세연 청년정치학교 교감은 “당장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10년, 20년 정도 기량을 쌓은 인재들이 정치권에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청년정치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특권이나 도그마가 되는 일은 물론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가 세대의 다양성을 확보하지 않고는 변화의 물결 속에서 미래지향적, 능동적으로 대응해 나가기 어렵다. 청년정치가 외형이나 상징적 수준의 대표성 확보를 넘어 청년의 의사와 정책이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문화가 형성될 때 우리 정치도 비로소 불신과 혐오의 늪에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