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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못 건드리는 악당 잡는 게 특수수사” [특수부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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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특수부 사람들] 특수통의 조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 ‘검찰=특수부’ 공식은 외형상 더 견고해졌다. 윤 대통령 스스로가 특수수사를 주특기로 한 검사 출신인 데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이른바 특수통 ‘검핵관’(검찰 출신 정부 핵심 관계자)들이 요직을 차지하면서다. 특수부 검사는 고소·고발 사건보다 숨겨진 범죄를 찾아내는 일을 주로 한다. 공직자 뇌물 사건, 횡령 등 정·관계 권력형 비리와 기업 범죄가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수사의 물꼬가 터지면 여론의 관심과 감시를 동시에 받는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검찰 주류 조직으로 인정받아 왔다.

특수부 사람들 특수통의 조건

특수부 사람들 특수통의 조건

2010년 ‘청목회 입법 로비’, 2003년 ‘나라종금 사건’ 등을 수사했던 조은석 전 법무연수원장은 “‘센놈’의 이중성을 솎아내는 일”이라고 특수 수사를 정의했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악당을 내가 잡는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면서다. 최재경 전 민정수석도 “언제든 목줄을 풀면 뛰어나가서 먹잇감을 물어오는 사냥개 같은 마음이 특수부 검사의 근성”이라고 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권력의 문지방을 넘어서라도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걸 사회에 알린다는 사명감으로 일하는 게 특수부”라고 평했다.

유력 정치인, 재벌 총수, 이들이 선임하는 거물급 변호인을 상대하는 일이기에 전직 특수통들은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는 일이 특수수사”라고 입을 모은다. 수사 기법에 대한 마땅한 매뉴얼이 없고, 매뉴얼을 만든다 하더라도 변해 가는 범죄 유형에 적용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사법연수원·로스쿨 성적만으로는 보여줄 수 없는 기량이 필요하다고 한다.

윤갑근 전 대검 반부패부장은 “‘촉’이 좋은 검사”라는 말로 특수통의 역량을 표현했다. 특수통 출신 검사들의 말을 종합했을 때 촉이란 주로 경찰 송치 사건이나 고소·고발장을 검토하면서 맥락의 오류를 파악해 사건을 확대하는 능력을 뜻한다. 도제식 직무교육이 이뤄지는 업무 특성상 촉은 필수라고 한다.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은 “물속에 잠겨 있는 비리를 들춰내기 위해선 좌고우면하지 않는 저돌성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역량을 보여준 검사는 인사철 검사를 배치하는 ‘조패(造牌)’ 과정에서 특수부 검사로 발탁된다.

하지만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사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특수부도 변곡점을 맞았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도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생긴 검찰에 대한 앙금이 발현된 결과라는 해석이 적지 않다. 김경수 전 대구고검장은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소명을 검찰이 한 건 맞다”면서도 “교만함도 함께 생긴 것 같다. 국민 마음에 검찰을 견제하는 심리가 강해졌다”고 말했다. 송광수 전 검찰총장은 “특수통들은 구속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며 무리한 수사 관행 비판에 공감했다.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을 수사한 문영호 변호사는 “무죄 받고 옷 벗는 검사가 몇이나 되느냐. 반성하지 않는 모습에 국민들이 실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수완박을 계기로 특수부 전성시대는 저무는 분위기다. 핵심 수사 기법이 진술 확보→자료 분석으로 넘어가면서 특수부 검사의 피로감이 커진 것도 원인이 되고 있다. 조은석 전 원장은 “자료 분석이라는 기법을 한동훈 법무장관이 개척해 후배들에게 전파했는데, 그 다음 시대를 여는 특수부 검사가 요즘의 현실에서 쉽게 나올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밤샘 조사가 불가능해지고, 변호인의 대응이 노련해지는 환경 역시 특수부 검사의 근무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 내 우수 자원의 특수부 지원도 줄고 있다. 최재경 전 수석은 “우수한 검사 확보 방안을 찾는 건 공직 사회의 숙제”라며 “특수부가 무력화돼 겁낼 곳이 없으면 권력은 부패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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