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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시장 숨통 트이나 싶더니…다시 불거진 ‘한전채 블랙홀’ 논란

중앙일보

입력

정부의 잇따른 유동성 공급 대책 발표로 꽁꽁 얼어붙었던 자금 시장의 경색이 다소 풀리는 모양새다. 하지만 위기의 진원지로 꼽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은 연 20% 안팎의 금리에 거래되는 등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여기에 한국전력채(한전채) 발행 한도를 높이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면서 ‘한전 블랙홀(한전채로 시중 자금이 흡수되는 현상)’에 대한 시장의 우려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서울 한국전력공사 서초지사 전경. [연합뉴스]

서울 한국전력공사 서초지사 전경. [연합뉴스]

"채권 시장 심리 지표 호전" 

22일 금융투자협회가 발표한 12월 채권시장지표에 따르면 종합 지표인 BMSI가 103.8로 지난달(95.8)보다 상승해 시장 심리가 나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BMSI가 100 이상이면 채권가격 상승(금리 하락)을 기대하는 투자자가 많다는 의미다.

금투협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채권시장 안정화 대책 발표에 이어 주요국이 긴축 속도를 조절할 것이란 기대감으로 채권시장 심리가 전반적으로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와 대형증권사 9곳이 중소형 증권사의 유동성 위기 해소를 위해 만든 ‘제2 채권시장안정펀드’가 24일부터 자금 집행에 들어가면서 중소형 증권사들의 자금 사정도 다소 풀리는 양상이다. PF ABCP 매입을 신청한 증권사 관계자는 “시작 단계다 보니 당장 효과를 말하긴 어렵지만 안정적으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숨통이 트이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CP 금리 5.38%…금융위기 때 보다 높아

하지만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 대표적인 변수가 한전채다. 한전은 최근 회사채 대신 은행권 대출을 통해 연말까지 2~3조원 상당을 조달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전채 발행 한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시장에선 여전히 긴장감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단기자금 시장의 바로미터로 통하는 91일물 기업어음(CP) 금리는 22일 5.38%까지 치솟았다. 금융위기를 겪던 2009년 1월 13일(5.37%)의 기록을 넘어섰다. 국고채 3년 물과 신용등급 ‘AA-’ 회사채 3년물 간의 차이인 신용스프레드도 1.672%포인트 벌어졌다.

앞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1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전이 내년 3월 결산에서 한전법을 위배할 가능성이 있다”며 한전채 발행 한도를 높이는 법 개정 추진 배경을 밝혔다. 현재 한전채 발행은 자본금과 적립금을 더한 금액의 2배까지 허용된다. 법 개정을 하지 않으면 3월 결산 이후 회사채 발행 한도가 줄고, 이후 회사채를 발행할 경우 한전법을 위배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도를 늘린다는 것 자체가 한전이 추가로 필요할 경우 채권을 발행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한전채 구축효과(우량채가 시중의 자금을 흡수하는 현상)’가 심화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도 “레고랜드발 유동성 위기 사태와 겹치면서 한전채 논란이 필요 이상으로 증폭된 측면이 크다”며 “한전법 개정안이 이미 알려진 내용이라 하더라도 채권 투자자의 심리가 불안한 상태라 시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이날 한전채(AAA·3년물) 금리는 5.563%로 회사채(AA-·3년물) 금리(5.516%)보다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정부 대책의 효과가 크레딧(기업 채권) 시장으로까지 옮아가기 위해선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공 연구원은 “과거와 같이 정부가 돈을 풀 수 있는 상황이면 효과가 빨리 나타날 수 있지만 지금은 긴축으로 인한 경기 위축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라며“안전자산(국채)이 먼저 안정궤도에 진입한 뒤 상당한 시차를 두고 크레딧 시장이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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