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37)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짧은 방한 기간 강력한 인상과 선물을 남기고 갔다. 빈 살만 왕세자는 시가총액이 약 2조 달러에 달하는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대주주다. 애플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기업이다. 그를 접견한 한국 재계 총수들의 자산 총액을 합쳐도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는 사진이 인터넷에 퍼졌다. 이번 방한 기념으로 한국 기업과 총 300억 달러 규모의 사업 계약 및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빈 살만은 ‘살만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이름을 풀이하면 ‘알사우드 가문, 살만의 아들 무함마드’다. 아버지 살만 국왕은 2015년 형 나예프 국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다. 2017년엔 왕세자였던 조카 무함마드 빈 나예프를 폐위시키고 아들을 왕세자로 격상시킨다. 지난 9월엔 국왕이 총리를 겸직하는 관례를 뒤엎고 왕세자를 총리에 임명한다. 살만 부자는 형제 상속으로 왕위가 이어지던 사우디 왕실의 전통을 깨고 부자상속 시대를 열었다.
빈 살만은 개혁가다. 여성의 운전, 공연과 스포츠 관람을 가능케 하는 등 인권 신장에 앞장섰다. 원유생산국인 사우디는 세계 탄소배출량의 4%를 차지함에도 그린 에너지 전환에는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빈 살만은 사막 한가운데에 친환경 스마트도시를 짓는다는 ‘네옴(NEOM)’ 시티 프로젝트로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피의 숙청으로 권력을 다진 인물이기도 하다. 부패 청산 명목으로 권력에 위협이 되는 이들을 체포하고, 석방 조건으로 재산의 70%를 헌납하도록 했다. 사촌 동생 만수르 빈 무크린은 의문의 헬기 사고로 사망했다. 미국 국가정보국(DNI)은 워싱턴포스트 기자 자말 카슈끄지 암살 배후로 빈 살만을 지목하기도 했다. 카슈끄지는 사우디 왕정 독재를 비판하던 언론인으로, 2018년 잔인하게 살해됐다.
이에 분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당시 빈 살만을 ‘국제적 왕따’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고유가로 고군분투하던 지난 7월, 빈 살만을 만나 주먹 악수를 나눴다. 미 행정부는 최근 카슈끄지 암살 관련 소송에서 빈 살만에게 국가 원수에게 부여되는 면책 특권을 적용했다. 국제 관계에서 명분은 실리를 위한 포장일 뿐임을 시사하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