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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40% 고지전, 골병드는 국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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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정치팀장

서승욱 정치팀장

① “이 사람은 윤리위 제소의 대상조차 아니다. 윤리위를 가려면 적어도 인간이어야 되는데 인간이 아닌 동물을 (왜) 제소하느냐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거죠. 민주당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동물농장 같다. 앞으로 민주당 국회의원 공천 신청 서류에 정신 감정서 첨부시켜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② “MBC를 편파·왜곡 방송으로 규정하고 광고기업 불매운동에 서명한 사람이 33만 명을 넘어섰다. 검언 유착 오보, 자막 조작 의혹, 우방국 관계 훼손 등 현 정부를 흠집 내고 갈등 조장하는 MBC도 많은 대기업이 초대형 광고로서 물주를 자임하고 있다. MBC 광고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분은 ‘삼성과 여러 기업이 MBC에 광고로 동력 제공하는 것을 즉각 중단해야 하며 이는 선택 아닌 의무’라고 역설하고 있다. 공영방송 자처하는 MBC와 광고주들이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지난주 화제가 됐던 국민의힘 두 의원의 발언이다.

여권, 집토끼 잡으려 강경론 일색
사법 리스크 야당, 40% 저지 사활
극한충돌의 피해는 모두 국민 몫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실시 여부 등으로 대립하고 있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화하는 모습. 김성룡 기자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실시 여부 등으로 대립하고 있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화하는 모습. 김성룡 기자

①번 발언의 주인공은 그동안 정치권의 대표적 신사(紳士)로 존경받아온 김기현 의원이다. 김 의원이 말한 ‘동물’은 김건희 여사의 캄보디아 촬영 사진을 ‘빈곤 포르노 화보’라고 불러 논란을 일으킨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과거 김 의원은 합리적인 이미지가 최대 강점이었는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엔 국민의힘의 주포로 변신했다. 기자 역시 김 의원과 마찬가지로 장 의원의 ‘빈곤 포르노’ 표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표현 자체가 아니라 “사전적 학술적 용어”라고 주장하는 장 의원 태도에 동의가 어렵다. 장 의원은 학술인이나 사회운동가, 언어학자가 아닌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김 여사 비판을 위해 굳이 그런 표현을 써야 했나 싶다.

그렇다고 동료 의원을 “동물”로 칭하고, 야당을 향해 “동물농장, 정신 감정서 첨부” 운운한 김 의원의 태도에도 점수를 주기 어렵다. 안 그래도 정치권 전체를 “동물”로 보는 국민이 적지 않을 텐데, 동료 의원을 그렇게 부르면 ‘누워서 침뱉기’로 비칠 수도 있다.

②번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인 김상훈 의원의 발언이다. 행정고시 출신인 김 의원도 합리적이고 온화한 정치인으로 통했다. MBC 광고기업 불매운동가의 말을 인용하는 방식이었지만, 특정 대기업을 거론하며 광고 중단을 압박하는 듯한 주장을 편 건 분명 선을 넘었다. 이런 극단적인 주장이 나올수록 여당과 MBC 사이에서 여당 편을 드는 게 맞는지 고민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두 사람의 발언엔 여당 중진 정치인으로서의 신념, 두 사람이 처한 정치적 상황과 야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크게 보면 일사불란함을 강요하는 여권 내부의 각박하고 경직된 풍토가 모든 구성원을 ‘닥치고 공격’ 모드로 밀어 넣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현재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20%대 후반~30%대 초반에 고정돼 있다. 지난 대선 득표율 48.56%와 비교하면 참담한 수준이다. 두꺼운 극렬 안티층도 존재한다. 정부가 무슨 일을 하고 싶어도 동력을 받기 어려운 구조다. 그래서 여권의 당면 목표는 국정 지지율 40%대 회복이다. “지지율이 40% 이상으로 안정돼 국정운영이 자리를 잡는다면 한동훈 법무장관이 총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는 ‘윤핵관’ 유상범 의원의 발언도 그 힌트다.

40% 달성을 위해선 마음 돌린 집토끼들을 다시 끌어오는 게 급선무다. 우리 편을 향한 선명성 짙은 메시지, 여권의 모든 전략은 여기로 통한다. 예비 후보들의 강성 발언 경연장으로 변질한 차기 대표 레이스, ‘잡담 수석’들을 퇴장시킨 여당 원내대표의 지극히 상식적인 조치에 “우리 애들이 두들겨 맞는데 왜 남의 편을 들었느냐”는 몰매가 가해지는 ‘집단 반지성’이 모두 일맥상통한다.

초유의 대표 사법 리스크 앞에 선 야당은 다른 각도에서 40%에 목을 맨다. 정권의 정당성을 무너뜨려 자신들의 허물을 감추는 전략이다. 대통령 지지율을 40% 밑으로 묶어 ‘실패한 정권’으로 낙인 찍고 내후년 총선에서 기사회생의 기회를 엿보자는 의도일 게다. 임기 6개월 대통령에 대한 퇴진 주장과 촛불 시위 참여, 김건희 여사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흠집내기, 예산과 법안에 대한 비협조는 그 전략의 산물이다.

경제는 내년이 더 어렵다는데 정치권엔 40% 고지전의 포연만 가득하다. 여야의 사생결단식 싸움에 국민은 안 아픈 곳이 없다. 40%가 문제가 아니라 나라와 국민이 문제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