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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시설물 유지관리 전문성 더욱 높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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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기고 이준우 대한시설물유지관리협회 법률자문위원

21세기 들어 우리나라도 건축물, 지하시설물, 사회간접자본시설이 고도화, 첨단화, 거대화되고 있다. 지상 123층, 지하 6층, 높이 554.5m, 무게 75만 t의 도심 속 건물을 생각해보면 누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해저로 3696.6m의 침매터널을 포함한 1856m의 거가대교, 4420m 3차원 케이블 현수교인 영종대교도 마찬가지다. 한강의 다리는 무너졌던 성수대교를 포함해 모두 31개(대교 27, 철교 4)로 가능한 교량 공법의 전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고속도로망과 고속철도망 역시 지속해서 철로와 역사와 부대시설로 확장되고 있다.

이 시설물은 소유자가 유지 관리할 수 없다. 갈수록 전문성이 필요하다. 잘못될 경우 심각한 피해나 손실을 초래할 우려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 같은 사회상의 변화와 과거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사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는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시설물안전법)’을 제정해 시설물유지관리업종을 도입했다. 비로소 전문적인 유지관리를 제도적으로 만든 것이다.

최근에는 ‘지속가능한 기반시설 관리 기본법’이 사회간접자본(SOC)에 해당하는 기반시설을 관리하고, ‘교육시설 등의 안전 및 유지관리 등에 관한 법률’로 교육시설을 유지관리한다. 그러나 여전히 전문적인 유지관리는 ‘시설물안전법’의 유지관리업자에게 대행할 수 있도록 한다. 즉, 실제 유지관리는 시설물유지관리업자에게 대행시키는 체계이다. 그동안 큰 시설물에서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은 이 제도와 유지관리업종 종사자가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러나 이는 겨우 시설물 유지관리의 기반을 구축한 것에 불과하다. 단적으로 국가기술자격 중에 시설물유지관리 자격이 없고, 교육과정에 독자적인 유지관리기술 교육과정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간과하고 국토교통부는 건설산업 혁신정책을 추진했다. 29개 전문건설업종을 14개로 개편하는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을 개정해 공포했는데, 이 과정에서 시설물유지관리업만 폐지되는 상황이 됐다. 의료계에 비유하면, 흉부외과를 폐지하고 일반외과로 통합하여 전문의 자격을 부여하고 진료과목을 개편한 것과 다름없다. 사람의 건강을 유지관리하는 것이나, 시설물을 유지관리하는 것은 모두 원래의 기능을 보전하고 개량하여 그 수명을 최대한 연장시킨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전문성이 떨어지면 관련 서비스의 질적 수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더구나 시설물은 사고가 나면 국민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 사회적·경제적 손실은 헤아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국토교통부의 시설물유지관리업종 폐지정책은 경직되고 편의적인 업종 개편에 불과하다.

기술과 기술자는 지속적인 개발과 육성이 필요하다. 연구와 교육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다. 이를 망각한 일반화로의 역행정책은 한시라도 빨리 바로잡아 더 이상의 손실과 후퇴가 없도록 해야 한다. 시설물유지관리업종 폐지에 대하여 국민권익위원회가 시행 유예 및 보완 권고를 두 차례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꼼수를 동원하여 업종전환을 독려하는 것은 아집이다.

국회는 시설물유지관리의 전문화 및 고도화를 위한 ‘시설물안전법’의 개정을 서둘러야 하며, 나아가 시설물유지관리기술의 국가자격화 및 관련 교육·훈련 및 양성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전문인력의 양성과 기술개발, 체계적 관리는 지속해서 진행되고 변화에 부응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을 조속히 폐지하고 개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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