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지난주에 외동딸이 수능 시험을 봤다. 두 번째 도전이다. 시험장에 가고 오는 길을 딸과 함께했다. 그날 수험생 부모 마음은 모두 같았을 것이다. 자식이 좋은 성적을 얻어 원하는 길로 접어들기를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안다. 이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더라도 앞으로 수많은 성공과 좌절의 갈림길을 계속 마주하게 될 것을.
시험장에서 나오는 학생들, 그리고 근처 허공에 걸려 있는 정치인의 응원 플래카드를 번갈아 보면서 정치가 청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동안 생각했다. 미안한 마음이 내내 들었다. 그런 마음이 앞설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프기도 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정치인은 공정·정의·자유·혁신의 미래를 말해왔다. 그런데 지금 이 땅의 젊은이들은 그게 말뿐이라고 한다. 혹시 내게 '살아남은 자'의 뻔뻔한 당당함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1972년생인 나는 산업화 시대에 태어나 민주화 시대를 관통하며 자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항공사 승무원이 됐다. 허리가 고장 나 5년 만에 퇴직했다. 잠시 쉬고 일반 기업에 취업하려고 했는데, 기혼 여성을 받아주는 곳이 거의 없었다. 암 투병 중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서둘러 결혼을 한 게 재취업의 발목을 잡은 셈이었다. 떠밀리듯 자본금 500만원으로 20대 후반에 창업했다. 외환 위기 직후인 1999년에 지인 회사의 책상 하나를 빌려 이미지 컨설팅 회사를 만들었다.
'청년 창업'은 예나 지금이나 말만 화려할 뿐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많이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조그만 과일 가게 딸이라 가족의 경제적 도움이나 인맥을 바랄 수 없고, 기댈 학연도 없던 젊은 창업자에게는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하루에 수백 군데 문을 두드리며 일감을 구했고, 그 힘으로 20년을 보냈다.
나처럼 직접 겪어 본 사람은 안다. 그냥 얼마씩 뿌려주는 돈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내가 벌어가면서 갚을 수 있는 사업 지원금 제도가 더 필요하다. 또 돈보다 투명한 정보와 공정한 경쟁이 절실한 순간이 많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원하는 것을 말할 때 진지하게 들어주며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이 버팀목이 된다.
나는 운이 좋았다. 사다리에 올라탄 후에 여러 고비가 있었지만, 다행히 떨어지지 않고 사업가가 됐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는 늘 이런 의문이 있었다. 운이나 확률에 의한 생존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도 되는지, 사다리가 너무 적은 것은 아닌지. 2년여 전 총선을 앞두고 보수 정당의 영입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청년들에게 사다리 대신 예측 가능하고 비교적 안전한 계단을 만들어주는 선한 정치에 일조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어느덧 3년이 되어간다. 현실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취업·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청춘은 줄지 않았다. 일자리·노동·주거·보육·교육에서 운에 의지하는 아슬아슬한 사다리 타기는 여전하다. 물론 당장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하루아침에 획기적으로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변화의 기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성 정치가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반성과 함께 '청년 정치'가 보수 정당에서 돌풍을 일으켰을 때다. 30대 정치인 이준석이 몰고온 청년 바람 속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보궐선거에서 당선했다. 청년들이 유세 단상에 올라가 자신들이 바라는 공정하고 상식적인 세상에 대해 거침없이 얘기했고, 그들의 희망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치가 꿈틀댔다. 그 에너지는 이듬해 20대 대통령 선거로 이어졌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다. 그들이 만든 다양한 정치 콘텐트가 넘실댔다. 국민의힘의 변화는 다른 당으로도 퍼졌다. 이제 좀 세상이 바뀌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선거라는 파티가 끝난 후에 환희와 열광이 순식간에 사그라진 것은 보수, 진보 양 진영 다 마찬가지였다. 정치는 제자리로 회귀했다. 청년에게 했던 온갖 약속도 그들의 자리처럼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들이 배신감을 느낄 만하다.
내가 300분의 1의 책임을 안고 있는 21대 국회는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싸움을 하지 않는다. 의원들 스스로 각자의 사다리 타기 투쟁이 먼저다. '민의'가 아닌 '충성'에 목매게 하는 정당 정치의 결과다. 과거의 유산인 권력과 보스 중심의 계파 줄서기, 공천권을 위한 헤게모니 갈등, 그리고 최근에 추가된 팬덤 정치 속에서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커갈 뿐 청년 문제 해결 노력은 보기 어렵다. 선의의 경쟁은 보이지 않고 적의 가득한 말들만 난무한다. 그 과정 속에서 한편에선 청년이 들러리가 됐고, 다른 한편에선 청년이 '방탄' 조직이 됐다.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30대 이하 투표율은 30%대에 그쳤다. 대선 때 50%에 육박했던 2030 세대의 여당 지지율은 최근에 20%대로 내려앉았다. 야당도 형편이 크게 다르지 않다.
기성세대와 달리 지금 이 나라의 청년은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에서 청춘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다. 때때로 발표되는 높은 자살률, 낮은 행복지수가 이를 증명한다. 초저출산 때문에 온 나라가 걱정인데도 뭘 좀 하려 들면 높은 경쟁률에 기겁한다. 이곳은 여전히 고밀도 사회다. 좁은 사다리에 몰려든 좀비 떼에 자신들을 비유하는 청년도 있다. 권력 싸움과 기회주의적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를 그들은 절대로 '추앙'할 수 없다.
다시 정치와 정치인을 외면하는 청년들에게 무어라고 말하며 관심을 아예 버리지는 말아 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까. 정말 모르겠다. 정치인으로서 미안하고 부끄럽다. 염치없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말자고 얘기하고 싶다. 우리는 반드시 계층·세대·젠더 갈등과 고령화에 따른 무거운 짐 대신 희망의 계단이 곳곳에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부탁한다. 정치와 완전히 헤어지지는 않기를, 그리고 기회를 만들어 직접 세상에 목소리를 내기를. 동시에 나 스스로 다짐한다. '살아남은 자'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그들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걷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