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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가 탈북민 지원에 나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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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

최근 탈북민과 관련한 안타까운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에서 탈북 여성이 백골로 발견된 지 며칠 만에 지방 거주 20대 청년이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3년 전 탈북 모자 아사 사건 이후 정부는 탈북민 위기 가구 관리 전담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행한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에도 정부는 지원 시스템 전반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인권정보센터(NKDB)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탈북민의 직업 안정성은 일반 국민과 비교할 때 상당히 낮고 평균 소득은 3분의 2 수준이다. 이 결과는 체계적인 조사가 시작된 20여 년 전과 큰 차이가 없다. 탈북민 건강도 위험 수준이다. 질병 때문에 직장과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경험하고 좌절하곤 한다.

고독사·가난 등 탈북민 불행 속출
25개 하나센터로는 지원에 한계
3500개 읍면동이 함께 책임져야

kim.jeeyoon@joongang.co.kr

kim.jeeyoon@joongang.co.kr

‘먼저 온 통일’로 불리는 탈북민의 삶은 일반인과 다른 부분이 있다. 탈북민 가구의 66.2%는 재북 가족과 친척에게 송금한 적이 있다. 대북 송금은 탈북민 사회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북 송금은 대부분 북측 가족의 요청에 의한 것이다. 일반인의 70% 소득 수준임에도 생계 곤란과 치료를 이유로 송금 요청을 받으면 거절하기 어렵다. 자신의 탈북으로 고초를 겪었을 부모·형제들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사채를 빌려서라도 송금하게 된다.

북한 억양 때문에 취업이 좌절되어 생계가 위협받고, 통장 잔고가 없는 기간이 길어지면, 미국·유럽 등으로 재이주를 꿈꾸거나 삶과 희망을 버리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탈북민의 극단 선택과 고독사, 아사 사건까지 계속되고 있지만, 이는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희망을 잃어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냉장고에 먹을 것이 없거나 한 줌의 쌀이 없어 죽음을 맞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탈북민들은 쌀이 없어서라기보다는 한국에서 살아갈 희망을 잃었기에 생존을 포기한 것이다. 부모·형제를 두고 목숨까지 걸고 넘어온 한국에서조차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하는 데 자존심이 상하고 그런 모습을 감추고 싶은 것이다. 꿈과 희망을 잃은 육신이 사계절이 지난 후 백골로 발견되었다면 인간다운 삶의 필수 요건인 사회적 연결망까지 단절된 것이다.

정부의 지원 노력에도 탈북민은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전문가들은 지원 정책의 전면적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서비스 전달 체계이다. 탈북민 지원정책은 일반 복지·행정 전달 체계와 분리된 별도의 전달 체계를 갖고 있다. 통일부가 전국 25개 하나센터를 통해 3만3000여 탈북민에게 교육과 필요 서비스를 제공한다.

탈북민 사회 적응을 위한 각종 복지·행정서비스는 전국 3500여 읍면동 주민자치센터가 아닌 전국 25개뿐인 하나센터가 전담한다. 하나센터는 경기도·서울 외에는 광역자치단체별로 한 곳이다. 광역시도 거주 전체 탈북민을 단 한 곳의 하나센터가 맡고 있다. 거주지에 사회복지관과 읍면동사무소, 시군구청이 있지만 탈북민은 ‘특별한 국민’으로 간주되어 하나센터에서 별도 서비스를 받는 구조이다.

탈북민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지역 주민이며 시장 군수와 기초의원의 유권자이다. 지역 행정 복지 기관이 책임을 갖고 지원하는 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분리 정책은 특별한 보호가 아닌 차별과 고립을 가져올 수도 있다.

전국 읍면동사무소와 시군구청이 지역 주민인 탈북민을 지원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행정안전부가 주무를 맡고 보건복지부 등이 협업하면 탈북민에 대한 복지·행정서비스는 개선될 수 있다. 지방 하부 조직이 없는 통일부가 주무 부처를 맡는 상황에서는 탈북민 거주 임대아파트 단지에 있는 500여 사회복지관은 전문인력과 서비스 제공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탈북민에게 다가갈 수 없게 된다.

탈북민에게 필요한 것은 거주지에서 충족되어야 하고 지역 행정 복지기관과 이웃 주민이 포용적 자세를 가질 때 사각지대는 해소될 수 있다. 탈북민의 이웃은 탈북민 스스로와 지역 주민, 지역 행정기관 모두가 되어야 한다. 탈북민의 적극적인 노력과 합리적 지원정책, 지역사회의 포용력이 어우러져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생활밀착형 지원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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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