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서울시 국정감사장에서는 여당끼리 충돌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한국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놓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부산 사상)이 맞붙은 것이다. "산은의 부산 이전은 비효율적"이란 오 시장의 주장에 장 의원이 "서울 이기주의"라고 맞받은 것이다.
산은 부산 이전의 중심엔 ‘부‧울‧경’(부산‧울산‧경남) 경제 활성화가 있다. 이전을 반대하는 이들은 앞서 이전한 금융 공공기관의 사례를 들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장 의원 등 산은 이전을 찬성하는 이들은 이전에 따른 효과가 2조원 이상이라고 주장한다. 산은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추진의 첫 타자다.
주장의 근거는 부산연구원이 작성한 보고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산은 부산 이전으로 인한 부·울·경 생산 유발 효과는 2조4000억원,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1조5000억원, 취업 유발효과는 3만5000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 보고서가 최근 논란에 휩싸였다. 부실한 양과 엉성한 조사 기법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해당 보고서를 실제로 입수해 살펴보니 곳곳에서 드러나는 허술함은 더 했다.
일반적인 보고서는 표지에 해당 보고서 연구‧조사‧작성에 참여한 연구원 등을 기재한다. 대개 2명 이상이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서는 표지뿐 아니라 보고서 어디에서도 보고서 작성 기관이나 작성자를 찾을 수 없었다. 출처를 취재해보니 부산시 산하 기관인 부산연구원에 소속된 연구위원이 단독으로 수행한 보고서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원의 연구원은 “이 정도 수준의 주제라면 2명 이상 이뤄진 팀으로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보통 목차와 서론만으로도 12쪽은 되는데 전체 분량이 12쪽에 불과한 것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보고서의 신빙성을 훼손하고 실소를 자아내게 한 건 해당 보고서에 등장한 심각한 오타다. 제목부터 문제였다. ‘KB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경제적 효과 분석’이란 제목부터 오타가 있었다. 'KB산업은행'이라는 정체불명의 기관이 등장했다. 산업은행의 정식 명칭은 ‘KDB산업은행이다. KDB는 ‘Korea Development Bank’의 줄임말이다.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원은 “단순 오타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보고서 제목뿐 아니라 본문 내용에도 ‘KB산업은행’이라는 오타는 세 차례나 더 등장한다. “연구 대상 기관 명칭도 제대로 모르고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 성의 없이 작성했다는 의미”라는 빈축을 사는 이유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산은 이전에 따른 부산경제 파급효과는 크게 건설파급 효과(이전 전 단계)와 운영에 따른 파급효과(이전 후)로 나뉜다. 그런데 건설파급 효과 분석을 위한 건설 투자액을 산은의 현재 서울 본사 연면적에 3.3㎡당 신축비용을 곱해서 추정했다.
이런 식이다. 부산에 현재 서울 본관 연면적 9만9823㎡(약 3만196평) 규모의 신축 건물을 짓는다고 가정하고, 이 면적에 3.3㎡당 건축비 600만원(부산도시공사가 제공한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3단계의 평당 추정 건축비)을 곱해 1812억원을 추론했다. 건설에 따른 파급효과다.
여기에 본사 직원에게 지급하는 퇴직급여까지 인건비 2040억원(2025년 추정)에 포함했고 운영비뿐 아니라 감가상각비 등 경제 효과를 유발하지 않는 비용까지 기본 지출 비용 1조7530억원에 합산해 이전 이후의 파급 효과로 계산했다.
경제 활성화 효과를 추론한 분석 방법도 논란을 부르고 있다. 해당 보고서에서 활용한 자료는 한국은행이 2020년 발표한 ‘2015년 지역 산업연관표’다. 보고서에도 “본 분석은 2015년도 기준 지역산업연관표를 이용하나 추정을 위한 외생자료로 2025년도 통계를 사용했으므로 분석 결과는 2025년도 기준 KDB산업은행의 경제 파급효과 분석이 됨”이라고 쓰여 있다.
조윤승 한국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산은 공시자료 5건과 단순한 통계자료 2건을 가지고 분석은커녕 검증도 없는 단순 계산에 불과한 보고서가 정부가 주장하는 산은 부산 이전의 근거라니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앞서 부산으로 이전한 국책금융기관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미미했다. 2009년 금융중심지로 선정된 뒤 부산에는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29개 금융기관이 모였다. 이들 기관의 이전 후에도 부산 내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부산 내 총부가가치 발생액(76조6893억8200만원)에서 금융 및 보험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6.9%로, 2019년과 비중이 같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업계 관계자는 “2005년 거래소가 부산으로 이전한 뒤 거래소를 따라 부산으로 내려간 증권사는 없다”며 “산은이 내려간다고 거래 기업들이 쫓아갈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부산 이전으로 산은의 수익 구조가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산은은 국책은행이지만, 세금으로 운영하지 않는다. 시중은행처럼 대출이나 채권 운용 등을 통해 자금을 융통하고 이자를 받는 식으로 직접 수익을 벌어들인다. 이렇게 번 수익은 기획재정부 등 산은 지분을 보유한 정부기관에 배당돼 정책 지원금으로 쓰인다.
산은이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산은은 정부에 8331억원을 배당해 전체 정부 총배당수입의 34%를 차지했다. 지난 5년간 총 배당액은 1조4467억원이다. 산은이 수익을 많이 낼수록 나라 곳간이 넉넉해지고 반대의 경우 국민의 세금 부담이 커지는 형태다.
송원섭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에 대한 타당성을 구하기에는 관련 보고서나 논의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미흡하다”며 ”한국의 주요 정책 금융을 담당하는 산은의 기능 및 역할을 고려해도 인적·물적 네트워크 효과와 글로벌 금융사업 등에 있어 현재 본점의 지리적 이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산은은 정부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특별법에 의해 설립한 국책은행이다. 자본시장 경색 등이 심화하는 요즘 국책은행인 산은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물론 그 이유만으로 부산 이전을 반대할 수는 없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부산 이전에 대한 논의는 합리적이며 경제적인 이유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KB산업은행'이든 'KDB산업은행'이든 그냥 오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기관의 존재 이유나 역할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옮기라는 건 나라에도 부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