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수술에 234만원 주겠소"…하지정맥류 환자 위험한 거래 [요지경보험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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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정맥류 환자 A씨는 지난해 11월 서울 중랑구의 한 병원을 찾았다. 원장 B씨는 A씨가 실손보험이 가입된 걸 확인한 뒤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진료비로 630만원 상당의 영수증을 발급해줄 테니 보험사에 제출해 보험금을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보험금 가운데 수술비 400만원을 병원에 내면 남은 돈은 A씨가 챙겨도 된다고 했다.

B원장의 제안을 수락한 A씨는 하지정맥류 수술을 공짜로 받았다. 병원에선 634만원의 영수증과 진료비 세부산정내역을 발급해줬다. A씨는 해당 서류들을 보험사에 제출해 보험금 634만원을 받았다. 곧바로 A씨는 병원에서 알려준 은행 계좌로 400만원을 입금했다. 이 계좌의 주인은 B원장의 아들이었다. A씨도 공짜 수술은 물론 234만원의 페이백을 챙겼다.

B원장은 A씨를 브로커로 영입했다. A씨를 부추긴 것처럼 하지정맥류 수술과 페이백을 받을 환자를 데려오면 인당 소개비 명목으로 48만3500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A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3월까지 총 100명의 환자를 소개하고 대가로 4835만원을 받았다.

B원장은 2020년 8월부터 지난 5월까지 이런 방식으로 하지정맥류 수술비 영수증을 부풀려서 총 891회 발급했다. 환자들이 이를 보험사에 제출해 부정 수급한 보험금은 약 49억6600만원이다. B원장은 서울 중랑구의 병원 외에 강원 원주시와 충북 제천시 등에서도 병원을 운영하다가 폐업하고 지역을 옮겨가며 개업하기를 반복했다.

B원장의 이런 수법은 눈썰미가 좋은 한 보험사 직원의 의심으로 꼬리가 잡혔다. 서울에 사는 환자가 굳이 강원 원주나 충북 제천에 가서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는 게 이상해 경위를 알아보게 된 것이다. 이 보험사 관계자는 “하지정맥류 수술은 비교적 간단하기 때문에 보통 멀리 있는 병원이나 특정 의사를 굳이 찾아가진 않는다”며 “게다가 지방에서 서울의 대형병원을 찾아가는 것도 아니고 서울에서 지방 의원에 찾아가 수술을 받는 건 브로커의 소개가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경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보험사는 B원장에게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고 보험금을 청구한 가입자들에게 연락해 수술 과정, 진료 비용, 결제 방법 등을 물어보니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수술 과정이 기억이 안 난다거나 수술비는 본인이 결제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회피하는 가입자들이 많았다. 보험사는 8개월간 조사한 끝에 B원장이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수술비 부풀리기와 페이백을 제안하는 걸 녹음한 파일을 입수할 수 있었다.

보험사는 이를 근거로 수사기관에 보험사기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 서울 중랑경찰서가 수사해 B원장과 이런 수법을 함께 설계하고 수익을 나눈 브로커 C씨가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환자 겸 브로커 A씨는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됐다. 서울북부지검은 지난달 18일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페이백을 기대하고 보험사기에 가담한 실손보험 가입자들도 수사를 받는다. B원장이 허위로 진료 기록과 영수증을 발급해준 환자 891명 중 브로커를 통해 병원에 온 환자는 663명이다. 브로커들은 그 대가로 소개비 총 3억2000여만원을 챙겼다. 보험사 관계자는 “브로커를 통해 병원에 온 환자 중에는 실제로 수술을 받지도 않고 병원에서 서류만 받아 보험금을 청구해 페이백을 챙긴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브로커를 통해 이 병원에 내원한 뒤 보험금을 청구해 받은 600여명의 환자가 부당한 이익을 챙긴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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