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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무형유산 등재 앞둔 '말뚝이' 탈 속에 담긴 의미는...[포토버스]

중앙일보

입력

“개질량이라는 ‘양’자에 개다리소반이라는 ‘반’자 쓰는 양반 나오신다”
상놈 ‘말뚝이’가 양반을 조롱한다. 어찌 된 일인지 세 명의 양반은 어딘가 모르게 생김새가 이상하다. 벌겋게 문드러진 코, 비뚤어진 턱 등 탈 속에 풍자가 녹아있다.

봉산탈춤 제6과장 '양반춤'에 등장하는 말뚝이탈(위), 아래 왼쪽부터 서방님탈, 맏양반탈, 도령탈.

봉산탈춤 제6과장 '양반춤'에 등장하는 말뚝이탈(위), 아래 왼쪽부터 서방님탈, 맏양반탈, 도령탈.

말뚝이와 세 명의 엉터리 양반의 탈은 봉산탈춤 제6과장에 등장한다. 양반의 탈은 흰색, 하인 말뚝이의 탈은 검은색이다. 얼굴색으로 계급의 다름을 보여준다. 언뜻 보면 할아버지, 아들, 손자로 보이는 세 명의 양반은 사실 형제다. 조선 후기 당시 혼란했던 처첩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맏형과 둘째 코에 빨간 줄이 지나며 훼손돼 있는데 코는 남자의 성기를 상징하며 당시 문란했던 양반의 성생활을 탈을 통해 표현했다.

봉산탈춤에 등장하는 주요 탈.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맏양반탈, 취발이탈, 소무탈, 노장탈, 미얄탈, 영감탈, 덜머리탈, 상좌탈.

봉산탈춤에 등장하는 주요 탈.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맏양반탈, 취발이탈, 소무탈, 노장탈, 미얄탈, 영감탈, 덜머리탈, 상좌탈.

해악과 풍자를 품은 종합예술 ‘한국의 탈춤’이 다음 달(12월) 초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인 봉산탈춤은 양주별산대놀이, 하회별신굿탈놀이 등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탈춤이다. 북쪽 황해도 여러 고장에서 추던 탈춤 중 대표 탈춤으로 1967년 우리나라에서 무형문화재(17호)로 지정됐다.

제1과장에 등장하는 상좌탈의 모습. 극에서 사상좌는 대사가 없지만 관객이 극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제1과장에 등장하는 상좌탈의 모습. 극에서 사상좌는 대사가 없지만 관객이 극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봉산탈춤은 총 일곱 개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악귀를 쫓고 경사로운 일을 맞이하는 의식 춤과 파계승에 대한 풍자, 양반에 대한 조롱, 서민의 생활상과 처첩 갈등이 주된 내용이다. 네 명의 배우가 상좌탈을 쓰고 귀신을 쫓고 안녕과 복을 비는 제1과장 ‘사상좌춤’은 놀이판을 정화하고 종교적 기원 등을 담은 의식무다. 새하얀 탈은 순결함을 상징한다. 초승달을 닮은 눈썹에 앵둣빛 입술을 한 상좌가 고깔을 쓴 모습은 그 자체로 눈이 부시다.

제2과장의 주인공 목중탈. 부리부리한 눈과 오방색 머리카락이 독특한 느낌을 준다.

제2과장의 주인공 목중탈. 부리부리한 눈과 오방색 머리카락이 독특한 느낌을 준다.

목중탈을 쓴 여덟명의 연기자가 제2과장 '팔목중춤'을 추고 있다. 동장이 크고 화려한게 특징이다. 사진 봉산탈춤보존회

목중탈을 쓴 여덟명의 연기자가 제2과장 '팔목중춤'을 추고 있다. 동장이 크고 화려한게 특징이다. 사진 봉산탈춤보존회

제2과장에 등장하는 ‘팔목중’은 불도를 닦던 여덟명의 스님으로 신분을 잊고 파계(불교 계율을 어기는 것)하여 음주가무를 즐기는 모습을 연출한다. 목중은 먹중(黑僧)으로 속이 검은 중, 곧 파계승을 뜻한다. 술에 취해 있는 등 방탕한 모습이 탈에 녹아 목중탈은 검붉은 빛을 띤다. 우두머리 '취발이'는 다른 중에 비해 더 붉은데 천하 한량임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목중탈(왼쪽)과 취발이탈은 같은 붉은계열의 색이지만 농도 차를 둬 의미를 부여했다.

목중탈(왼쪽)과 취발이탈은 같은 붉은계열의 색이지만 농도 차를 둬 의미를 부여했다.

소무(가운데)는 노장스님(오른쪽) 앞에서 교태를 부려 그동안 쌓은 불심을 파괴한다. 왼쪽은 취발이탈.

소무(가운데)는 노장스님(오른쪽) 앞에서 교태를 부려 그동안 쌓은 불심을 파괴한다. 왼쪽은 취발이탈.

하이라이트 격인 제4과장 ‘노장춤’은 불도에 정진하는 노장스님을 팔목중들이 놀이판으로 꾀어내 파계승 놀이를 하는 내용이다. 소무(젊은여자)가 등장해 노장 앞에서 교태를 부리고 요염한 춤을 춰 노장을 파계시킨다. 노장탈에 촘촘히 찍혀있는 점은 ‘파리의 똥’으로 수십 년 불도에 정진하며 미물도 소중히 여기고 살아온 인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살아온 노장이지만 평범한 남자로 전락하고 결국 소무는 취발이의 아이를 낳게된다.

(왼쪽부터)덜머리탈, 영감탈, 미얄탈. 제7과장에 등장하는 탈로 어렵게 남편을 찾은 미얄과 그 첩인 덜머리와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왼쪽부터)덜머리탈, 영감탈, 미얄탈. 제7과장에 등장하는 탈로 어렵게 남편을 찾은 미얄과 그 첩인 덜머리와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 장 ‘미얄할미, 영감춤’은 서민들의 생활상과 처첩갈등을 그렸다. 영감의 손에 죽은 미얄할미를 기리는 지노귀굿을 하며 탈춤은 막을 내린다. 공연이 끝난 뒤 무대에 올렸던 탈을 모두 모아 모닥불에 태우는데 이는 나쁜 기운을 모아 하늘로 날려 버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6.25 전쟁 때 내려온 1세대 봉산탈춤 꾼들이 모여 만든 '(사)봉산탈춤보존회'는 현재 강남에 터를 잡고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2세대에서 3세대를 거치며 우리의 전통 탈을 계승, 발전 시키고 있다.
 40년 전 봉산탈춤에 입문해 20여 년째 탈을 만들어 오고 있는 정윤식 봉산탈춤 이수자는 “모든 탈에는 숨겨진 의미가 있다”며 “탈 모양 뿐 아니라 색깔, 얼굴을 지나가는 선, 점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고 탈춤을 본다면 더 즐겁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해 봉산탈춤보존회 회장은 "알려진 것에 비해 지원이 턱없이 부족해 많은 단원들이 생계를 위한 일을 겸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는 참 반가운 소식이지만 정부의 지원과 관심이 절실하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정윤식 봉산탈춤 이수자가 11일 오후 서울 봉산탈춘보존회 작업실에서 사자탈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정 이수자 뒤로 공연 소품들이 보인다.

석고틀을 이용해 탈을 만드는 방법을 고안한건 1960년대에 1세대 봉산탈춤 회원들이다. 초배지를 바른 탈틀에 3일동안 물에 불린 황지를 풀로 다섯겹 정도 바른 뒤 말리면 종이탈의 바탕이 완성된다.
석고틀에서 뜯어낸 종이탈은 황지를 덧붙이며 더 견고하게 만든다.
견고하게 만든 탈을 2~3일 건조하고 물감을 바른다. 정 이수자가 사자탈에 채색을 하고 있다. 붉은색은 악귀를 쫓아내는 주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탈 채색을 완료하면 한지, 실 등을 이용해 꾸며준다.
무대에 올릴 소품을 만드는 일도 탈을 만드는 일 만큼 손이 많이 간다. 노장스님의 지팡이를 수리하고 있는 정 이수자.
완성된 사자탈의 모습. 제5과장에 등장하는 사자탈은 성인 몸통보다 큰 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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