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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때 날 버린 엄마에 재산상속?"…구하라법 공무원은 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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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고(故) 구하라의 장례식장에 놓인 영정.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019년 고(故) 구하라의 장례식장에 놓인 영정. 사진공동취재단

어릴 적 어머니가 집을 나간 뒤 35년간 연락이 끊긴 채 살았다는 40대 여성. 이 여성이 사망할 경우 친모는 재산을 받을 수 있을까. 3년 전 고(故) 구하라가 세상을 떠났을 때 던졌던 이 질문에 대해 아직도 자신있게 ‘아니오’라고 답할 수 없다.

최근 YTN 라디오 ‘양소영 변호사의 상담소’에서는 자신이 구하라와 같은 일을 겪게 될까 봐 우려가 된다는 40대 여성의 사연이 다뤄졌다. 사연자 A씨의 어머니는 A씨가 5세 때 남편의 무능력과 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출했고, A씨와 오빠는 유년기를 고모 집에서 보내야 했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사망한 뒤 A씨는 연락이 끊긴 어머니 소식을 수소문했다. A씨는 “새로 가정을 꾸리고 자녀 둘, 남편과 화목하게 지내시더라”라고 말했다.

그런데 문득, A씨는 이런 뉴스가 떠올랐다. “30년 만에 나타난 엄마가 보험금을 가져갔다”, “연락이 끊겼던 엄마가 상속재산 요구를 한다”라는 등의 뉴스였다.

A씨는 “이게 내 얘기가 될 수 있단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다”며 “사업이 잘돼서 지점이 여러 개 있고, 부동산 재산도 꽤 있지만, 미혼이어서 만약 내가 세상을 떠난다면 엄마가 재산을 가져갈 수도 있지 않나. 내 재산은 나를 평생 돌봐준 고모와 오빠에게만 상속하고 싶은데 어떤 조치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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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만 ‘구하라 법’ 적용…공무원도 급여 외 개인 재산은 ‘유류분 청구’ 시 반환

2019년 구하라 사망 당시, 구하라의 친모는 변호인들을 통해 구하라가 생존 당시 소유했던 부동산 매각 대금의 절반을 요구했다. 구하라 역시 9세 때 친모가 가출해 유년기를 친척 집에서 보내고 20년가량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당시 구하라의 오빠를 중심으로 현행 민법 상속법 개정 촉구 움직임이 일어났다. 현행 상속법에는 부모가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상속자격을 제한하는 특별한 규정이 없어서다. 상속인의 결격 사유도 살인이나 상해, 사기‧강박, 위‧변조 등 극단적인 경우로 한정됐다.

20대 국회 때인 2020년에 법안이 발의됐지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한 채 폐기됐다가, 21대 국회가 들어선 2020년 6월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민법 일부개정법률안(구하라 법)’을 대표 발의해 다시 논의가 이뤄졌다.

2021년 1월 법무부가 입법예고를 하고, 6월 법안의 국무회의 통과 및 국회 제출 등 성과가 일부 있기는 했지만, 아직 시행이 되지는 않은 상태다.

현재 공무원들의 경우 구하라 법의 적용을 ‘일부’ 받는다. ‘공무원 구하라 법’으로 불리는 공무원 재해보상법·공무원연금법이 통과돼 시행 중이기 때문이다. 재해유족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공무원이나 공무원이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양육 책임이 있던 부모가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는 심의를 거쳐 급여 전부 또는 일부를 지급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한 법이다. 2021년 8월 응급구조대원으로 일하다가 2019년 순직한 고 강한얼 소방관의 친모에게 해당 법이 최초로 적용됐다.

하지만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들은, 갑자기 사망했을 경우 연락이 끊긴 부모가 나타나 재산을 요구하면 난감한 처지에 직면하거나 법정 싸움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공무원이라고 할지라도 급여 외 개인 재산에 대해선 민법을 따르므로 민간인들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바로 현행 민법에서 보장하는 ‘유류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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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분이란 상속인에 대해서 피상속인의 재산에 대한 일정 부분의 취득을 보장을 해 주는 것으로, 민법 제1112조에 따르면 직계비속‧배우자에 대해서는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직계존속‧형제자매에 대해서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 1 대해서 그 취득을 보장하고 있다. 구하라의 친모가 부동산 매각 대금 ‘절반’을 요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법 덕분이다.

생전에, 유류분 청구가 들어오기 전에 할 수 있는 조치들이 있기는 하다. 김선영 변호사는 “미리 일부 증여를 하거나, 특정인에게 재산을 상속한다고 유언을 해 두는 방법도 있다. 유언의 경우 민법 제1060조에 따라 자필 유언,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 녹음, 비밀증서, 구수증서 등 양식을 갖춰서 해두면 좋다. 보험이 있다면 사망 시 보험수익자도 따로 지정해두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사전에 이런 조치를 했어도, 유류분 청구가 들어오게 되면 일부라도 반환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런 조치들은 유류분 청구가 들어왔을 때 유류분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에 불과하다.

김 변호사는 “현행 민법에 따르면 유언이나 신탁으로 상속인 중 일부에게 재산을 유증하더라도, 유류분 권리자가 상속의 개시 및 반환할 유증에 대해서 알게 된 날로부터 1년, 상속이 개시된 날로부터 10년 이내에 그 청구권을 행사하면 그 유류분에 해당하는 몫을 반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꾸준히 유류분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변호사는 “구하라 법이 통과된다면 부양의무 등을 하지 못한 부모의 상속권이 상실되도록 하는 방향으로 유류분 제도의 보완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022년, 아직도 구하라법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계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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