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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명단 공개…죄를 묻기 전에 따져봐야 할 4가지[그법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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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112]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 처벌 대상일까 

친야(親野) 성향 인터넷 매체가 지난 14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5명의 이름을 상당수의 유족 동의 없이 무단 공개한 것과 관련해 법적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이종배 국민의힘 서울시의원 등이 최근 해당 매체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지만, 법조계에선 사자(死者)에 관한 정보라는 이유로 처벌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만 개인정보로 보호하고 있어서다(2조 1호). 형법상 사자명예훼손 역시 허위사실을 적시했을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는 죄여서 이름 무단 공개만으론 처벌이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친야 성향 인터넷 매체인 '민들레'가 지난 14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이태원 참사 사망자 명단. 민들레 홈페이지 캡처

친야 성향 인터넷 매체인 '민들레'가 지난 14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이태원 참사 사망자 명단. 민들레 홈페이지 캡처

여기서 질문, 하나

사망한 사람의 개인정보는 보호받을 수 있을까.

관련 법령은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를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 국한하고 있다. 다만, 정보통신망법 49조는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에 의해 처리·보관 또는 전송되는 타인의 정보를 훼손하거나 타인의 비밀을 침해·도용 또는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71조엔 ‘49조를 위반해 타인의 정보를 훼손하거나 타인의 비밀을 침해·도용 또는 누설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법원 판단은

서울의 한 신용정보회사 채권관리사로 일하던 A씨는 2004년 12월 1일부터 2005년 2월 4일까지 친구로부터 대구 지하철역 화재사고, 김해 중국 민항기 추락사고 사망자 명단과 생년월일을 인터넷 메신저로 전송받았다. 같은 기간 A씨는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가 관리하는 모 은행 신용 전산망을 검색해 사고 사망자 명단에 나와 있는 사람들의 주민등록번호를 알아냈고, 이를 인터넷 메신저로 친구에게 전송했다.

검찰은 A씨를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지만, 원심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인(人)’이라 함은 자연인 또는 법인, 경우에 따라서는 법인격 없는 단체를 지칭하는데, 여기에서 자연인이란 생존하는 사람만을 의미할 뿐 이미 사망한 사람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봄이 상당하다. (중략) 특별한 규정 없이 ‘타인’의 범위를 확대해석해 이미 사망한 사람까지 포함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反)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2007년 6월 14일 대법원 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원심을 파기환송하면서 “형벌법규에서 ‘타인’이 반드시 생존하는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정보통신망법 49조는 ‘개인정보’가 아니라 ‘타인의 정보·비밀’이라는 문언을 사용하고 있다”며 “이미 사망한 자의 정보나 비밀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보통신망에 의해 처리·보관 또는 전송되는 중 다른 사람에 의해 함부로 훼손되거나 침해·도용·누설되는 경우에는 정보통신망의 안정성 및 정보의 신뢰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판시했다.

당시 대법원은 “문서위조죄에 있어 ‘타인의 문서’에는 이미 사망한 자의 명의로 작성된 문서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며 관련 대법원 판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타인’에는 생존하는 개인뿐만 아니라 이미 사망한 자도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체계적이고도 논리적인 해석”이라고 덧붙였다.

이종배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인터넷 매체를 고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배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인터넷 매체를 고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서 질문, 둘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명단 무단 공개는 정보통신망법이 금지하는 ‘타인의 비밀을 침해 또는 누설’한 행위일까.

법원 판단은

이번 사건과 똑같은 경우는 찾기 어렵지만, ‘타인의 비밀’ ‘침해’ ‘누설’의 의미를 정의한 대법원 판례는 있다.

2018년 12월 27일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는 컴퓨터에 저장된 직장 동료의 사내 메신저 대화 내용을 몰래 열람·복사해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 유죄를 확정하면서 “정보통신망법 49조 위반 행위의 객체는 ‘정보통신망에 의해 처리·보관 또는 전송되는 타인의 비밀’이고, 정보통신망으로 처리·전송이 완료된 다음 정보통신체제 내에서 저장·보관 중인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며 “‘타인의 비밀’이란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로서 이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본인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어 “타인의 비밀 ‘침해’란 타인의 비밀을 정보통신망에 침입하는 등 부정한 수단 또는 방법으로 취득하는 행위”이며 “타인의 비밀 ‘누설’이란 타인의 비밀에 관한 일체의 누설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비밀을 침해하거나, 그 침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 비밀을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알려주는 행위만을 의미한다”고 설시했다. 그러면서 “정당한 접근 권한이 없는 사람이 사용자 몰래 정보통신망의 장치나 기능을 이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타인의 비밀을 취득·누설하는 행위도 포함된다”고 부연했다.

이와 관련,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이 정보통신망에 의해 처리·전송되거나 정보통신체제 내에서 저장·보관 중인 것으로 볼 수 있으려면 정부가 희생자 명단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전산망을 통해 관리되고 있지 않은 자료라면 정보통신망법이 규정한 ‘타인의 비밀’로 보기는 힘들 수 있다”며 “‘타인의 비밀’로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게 인터넷 매체에 유출된 경위 등을 하나하나 따져봐야 형사 책임을 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태언 변호사(법무법인 린)는 “사람이 살아 있다는 사실, 사망했다는 사실은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 전제로서 모든 권리·의무의 기초 사실이 되므로 이를 비밀로 볼 수는 없다”며 “사망 사실을 유족 동의 없이 공유할 수 없다는 법리가 있다면, 일반인들이 고인의 사망 사실을 지인들 사이에 공유하면서 고인을 추모하는 행위도 불법이 된다”고 지적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2020년 12월 발간한 '개인정보 보호 법령 및 지침, 고시 해설서'에는 사망자의 정보가 유족의 개인정보에 해당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해설서 캡처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2020년 12월 발간한 '개인정보 보호 법령 및 지침, 고시 해설서'에는 사망자의 정보가 유족의 개인정보에 해당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해설서 캡처

여기서 질문, 셋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2020년 12월 발간한 ‘개인정보 보호법령 및 지침·고시 해설서’에는 “사망자의 정보라고 하더라도 유족과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정보는 유족의 개인정보에 해당한다”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인터넷 매체는 개인정보보호법상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족의 개인정보를 침해한 것일까.

전문가 의견은

구태언 변호사는 “한 가족 구성원이 다른 가족 구성원의 개인정보가 자신의 개인정보라고 주장하면서 처분권을 갖게 된다고 볼 수는 없다”며 “개인정보보호법을 유족의 정신적 고통의 근거로 보는 건 논리의 지나친 확장 내지 비약이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법조인은 “사망자의 가족이 사망자 개인정보의 처분권을 갖는 것에 의문을 갖기는 어렵다”면서도 “개인정보보호법 자체가 굉장히 복잡하게 만들어져 있는 데다 관련 판례가 충분히 쌓이지 않아 섣불리 예단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오전 3시 서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추모 공간에 음료수와 간식 등 희생자를 위로하는 마음을 담아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물품들이 가로등 불빛 아래 놓여 있다. 최영재 기자

지난 3일 오전 3시 서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추모 공간에 음료수와 간식 등 희생자를 위로하는 마음을 담아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물품들이 가로등 불빛 아래 놓여 있다. 최영재 기자

여기서 질문, 넷

인터넷 매체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직자로부터 건네받았다면 형법상 공무상비밀누설 혐의의 공범일까.

전문가 의견은

한 전직 검사는 “희생자 명단을 관리하는 공직자에겐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적용이 가능해 보이기는 하지만, 정확한 입수 경위 등이 먼저 드러나야 한다”며 “공무상비밀누설 행위에 따라 희생자 명단을 받은 쪽은 처벌이 어렵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례도 공무상비밀누설죄의 보호법익을 ‘공무상 비밀 그 자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의 비밀엄수 의무의 침해 때문에 위험하게 되는 이익, 즉 비밀 누설 때문에 위협받는 국가의 기능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규정하고, 비밀을 누설 받는 행위는 공범으로 처벌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구태언 변호사는 “공공데이터법·정보공개법에는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게 돼 있다. 공무원이 취급한다고 모두 비밀이 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희생자 명단을 공무상 비밀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다.

이와 관련, 대법원 판례는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에 대해 “국민이 객관적·일반적인 입장에서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것에 상당한 이익이 있는 사항도 포함하나, 실질적으로 그것을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희생자 이름 공개를 원하지 않는 유족이 정신적 고통을 입은 데 대해 인터넷 매체 측에 위자료를 청구하는 손해배상 민사 소송은 형사 책임과 무관하게 진행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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