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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안 된 ‘노인공화국’] 정년 70세로 늘린 일본, 고령자를 숙련 노동자로 활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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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호 11면

SPECIAL REPORT

지난 7월 오스트리아의 한 양로원에서 80대 노인들이 직접 양조한 맥주를 포장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노년 세대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유지를 돕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AFP=연합뉴스]

지난 7월 오스트리아의 한 양로원에서 80대 노인들이 직접 양조한 맥주를 포장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노년 세대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유지를 돕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AFP=연합뉴스]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은 국가들은 고령자들을 ‘더는 일을 하기 어려운 존재’, ‘국가에서 책임져야 하는 피부양자’가 아닌 ‘숙련된 노동자’로 받아들인다.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면 국가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고, 이는 노인 빈곤과도 직결된다는 판단에서다. 일본, 독일, 싱가포르 등에서는 퇴직자, 고령 실업자들을 적재적소에 재취업시켜 노동력을 확보하고, 노후 경제환경을 탄탄하게 조성할 수 있도록 법·제도가 뒷받침한다. 또한 실버 세대와 젊은 세대를 잇는 커뮤니티 형성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노인들이 사회에서 격리, 배제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인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노인 빈곤을 막기 위해 정년 연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국가 중 하나다. 지난해 4월 경제활동인구 감소, 연금 고갈을 막기 위해 고연령자고용안정법을 개정해 정년을 65세에서 70세로 상향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일본 내 사업주는 ▶정년을 70세 이상으로 상향 조정 ▶70세까지 계속고용제도 도입 ▶정년제 폐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해 도입할 것을 의무화했다. 이에 일본 기업들은 고령자가 희망하면 70세까지 지속해서 의무위탁계약을 체결하는 제도(계속고용제도)를 도입해 고령자들이 기존 직무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65세 기준 고령자 고용확보조치를 마련한 기업은 전체의 99%에 달한다. 상대적으로 비용부담이 적은 제도를 활용해 숙련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제도에 협조했고, 그 결과 고령자(60~64세) 취업률이 2000년 51%에서 2020년 71%로 크게 상승했다. 이승호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일본은 단계적 정년 연장을 통해 기업의 부담을 줄여 고용주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냈다”며 “일률적인 정년 연장으로 부작용을 겪은 우리나라가 참고해야 할 정책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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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2000년 이후 은퇴의 패러다임을 ‘직업생활에서의 완전한 퇴직’이 아닌 ‘연금과 동시에 노동하는 것’으로 변화시켰다. 2007년 일자리 안정을 위한 임금 보전 제도인 ‘이니셔티브 50플러스(Initiative 50Plus)’를 도입, 고령자들의 은퇴 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이 제도는 은퇴 후 재취업 시 낮은 임금을 받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재취업 의사가 감소한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다. 고령 노동자가 기존 일자리보다 임금이 낮은 일자리에 취업할 경우 임금 차액의 50%와 연금 보험료 일부를 정부가 나서 지원한다. 고령자들의 은퇴 후 급격한 소득 감소를 막고, 생계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작용해 고령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을 50% 이상 끌어올리는 긍정적 효과를 냈다.

우리와 유사한 수준의 고령화를 겪고 있는 싱가포르는 정년 연장과 함께 사업주에게 다양한 형태의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고령자 고용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노동시장에서 고령자가 오래 일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업주를 독려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고령 근로자의 연령에 따라 임금을 지원하고, 기업 내 정년 연령을 법적 연령보다 선제적으로 상향할 경우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의 방식으로 고령자 고용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은퇴를 준비하는 40·50 세대에게 적극적인 재사회화 프로그램을 제공해 이들이 은퇴 후 실직에 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국내에서는 2016년 설립된 서울시 산하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시니어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50+세대가 퇴직 후에도 지속적인 일과 사회활동으로 경험과 경력을 활용하면서 의미 있고 활기찬 노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고령자의 경력과 시장의 수요를 반영해 재취업·창업·창직 지원, 사회공헌 일자리사업 등을 추진해 왔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건설현장의 안전 관리 인력 수요가 증가한다는 점을 고려해 만든 50+건설안전감시단, 플랫폼 택시 업계 확장에 발맞춘 50+스마트운전기사 등이 대표적이다. 재단은 재취업 일자리에 필요한 경력전환 교육부터 구인기업 연결까지 적극적으로 나서 체계적으로 지원한다.

경력도 활용할 수 있고, 일회성 일자리가 아닌 지속적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참여자들의 만족도도 높다. 중국어학원을 경영하다 자발적 은퇴 후 서울시50플러스재단을 통해 시니어 여행강사로 변신한 이승은(59)씨는 “퇴직 후 소속감을 잃은 사람들은 자연스레 신체적, 정신적으로도 약해질 수밖에 없어 향후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재취업 일자리를 만들어 소득을 늘려줌과 동시에 은퇴자들에게 소속감을 부여하고, 다양한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일석이조가 아닐까 싶다”라고 전했다.

이씨는 고학력, 전문직 출신에게만 국한된 재취업지원사업의 문턱도 낮춰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시니어 관련 교육을 듣다 보면 대부분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고학력자이거나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던 분들이 대다수”라며 “모든 은퇴자가 나와 맞는 제2, 제3의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보편적 복지 영역으로 확대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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