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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뇌 손상시켜 몸속 ‘천연마약’ 엔도르핀 분비 막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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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호 24면

인문학자의 과학 탐미  

김동훈 칼럼

김동훈 칼럼

최근 인기를 끌었던 OTT 드라마 ‘수리남’은 2008년과 2009년 한국인 마약 거래상을 소재로 한 이야기다. 그때만 해도 국내 마약사범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우려가 크다. 특히 청소년의 마약중독이 현저하게 늘어나고 있다. 대검찰청 마약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74명이었던 만 20세 미만 마약사범이 2022년 1월부터 7월까지의 약 반년만 보더라도 총 395명에 달한다. 도대체 어떤 이유 때문에 많은 청소년들이 마약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있을까?

의료용 진통제 모르핀이 마약 대명사

우리 몸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보상중추(reward center)’가 작동한다. 『중독에 빠진 뇌과학자』(심심, 2021년)에서 저자이자 신경과학자인 주디스 그리셀에 따르면, 이 중추는 두 명의 캐나다 연구자 제임스 올즈와 피터 밀너에 의해 1950년대에 발견됐다. 이들은 쥐의 뇌에 전극을 심어 신경 활동을 관찰하다가 특정 영역에서 쾌감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고통에 대해 쾌감으로 보상한다는 의미로 ‘보상중추’라 불렀다.

이후 과학자들은 인간의 보상중추에 대한 꾸준한 연구 끝에 이 영역에 자극이 주어지면 주로 정서와 관련된 뇌의 변연계 일부인 측좌핵(nucleus accumbens)에서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한 분비된 물질은 신경세포(뉴런)에 의해 중뇌의 일부인 복축피개영역(Ventral tegmental area, VTA)에서 뻗어 나와 중변연계 경로, 일명 ‘보상회로’를 따라 전달된다는 것도 발견했다. 고통이 가해졌을 때 그 보상으로 뇌에서 이 경로를 따라 분비되는 물질이 바로 도파민이다.

그런데 올즈와 밀너의 실험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오늘날 중독 현상을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사실이 관찰됐다는 것이다. 두 과학자는 쥐 실험에서 쾌감이 발생하는 뇌의 영역을 전극으로 자극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해 두었는데, 쥐들은 온통 전극 장치에만 매달렸다. 먹이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짝짓기도 마다한 채 그 장치만 눌러댔다. 결국 영양실조와 수면 부족으로 몸집이 홀쭉해지면서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더니 이상 증상으로 죽는 쥐들도 생겼다. 자극에 대한 과잉 반응은 쥐들에게 영양 섭취와 수면, 교미와 같은 정상적인 생명 활동도 등한시하게 만들었고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다들 눈치 챘겠지만, 이 실험에서 쥐들의 자극 과잉 반응은 인간의 중독 현상과 유사하다. 모든 중독성 약물은 공통적으로 중변연계 측좌핵을 자극함으로써 도파민을 유발한다. 마약은 신체의 자연적인 보상보다 약 두 배에서 백배 더 많은 쾌감을 주기 때문에, 이것을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은 조금만 현실이 힘들어도 자연적인 도파민 분비를 기다리지 못한다. 그래서 마약중독자는 마치 쾌락의 자극 장치만 두드리는 쥐처럼 약물에만 깊이 탐닉하게 된다.

특정 약물을 반복 사용하면 우리 몸은 그 약물에 적응하면서 더 이상 몸이 스스로 반응하지 못하는 문제에 부딪힌다. 특히 뇌의 신경구조는 마약을 상습적으로 복용할수록 더욱 변형된다. 즉 우리 뇌는 마약에 따른 도파민 변화에 적응하면서 신경구조가 바뀌는데, 이것을 ‘신경적응(adaption)’이라고 한다.

약물에 따른 ‘신경적응’ 과정을 보면 이렇다. 처음에 마약을 복용하면 금방 기분이 들뜨게 되는데, 마약 성분이 뇌에 작용해 도파민을 분비시키고 그 도파민이 수용체에 결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파민과 관계하는 뉴런의 세포체 수상돌기 또는 말단에 분포하는 수용체는 마약으로 도파민이 과다 방출되면 일종의 항상성이 작동하여 도파민을 억제한다. 이와 같은 뇌의 ‘신경적응’은 마약 외에서도 일어난다. 그래서 음주와 흡연 등에 의해 도파민이 분비되어 쾌감이 상승하면, 우리 뇌는 그 쾌감을 줄이기 위해서 도파민 분비를 억제하게 된다.

이처럼 약물에 대한 ‘신경적응’으로 도파민 분비 효과가 약해지면, 약물 사용자는 그만큼 도파민의 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양의 약물을 욕망하게 된다. 이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마약을 더 많이 섭취하면, 도파민이 순간적으로 늘어나긴 하지만 그 상승한 쾌감을 상쇄하기 위한 뇌의 적응은 더욱 강력해져서 오히려 도파민이 더욱 억제된다. 이런 중독적인 도파민 복용이 계속되면 결국 갈망하던 약물을 복용해도 억제된 도파민은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래서 특정 마약에 내성이 생긴 중독자는 다른 약물에 손을 대지 않는 이상 극심한 고통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렇듯 약물 중독으로 신경구조가 바뀌면 중독자는 일반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파란 하늘의 아름다움이나 음악 선율의 감동, 각종 음식의 미각적 즐거움도 전혀 감각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삶의 저주가 아닐 수 없다. 중독자는 일상에 대한 소소한 기쁨을 상실한 채, 사물을 분별하는 인지기능이 손상돼 타인에게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며 줄곧 불안한 정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약물을 욕망하고 그 사용이 빈번해질수록 중독성은 더욱 커진다. 이런 우울하고 절망적인 상태가 계속될수록 중독자는 고질적인 비참한 기분을 바꾸기 위해서 더욱더 약물에만 집착하게 된다. 마약은 처음 한 번은 잠시 쾌락을 느끼게 하지만 그만큼 이후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삶을 허무하게 할 뿐이다. 어떤 이들은 직업상 약물에 탐닉한다. 탐닉하는 만큼 그의 몸은 더 병들어가고, 그러면 일상의 기쁨을 느끼는 것에 더욱 무뎌져 간다.

영화 ‘헤어질 결심’(박찬욱 감독, 2022)의 ‘네 개의 분홍색 알약’이나 ‘테넷’(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2020)이 모티브로 삼은 ‘2002년 테러 사건’은 펜타닐의 유해성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마약, 대마, 향정신성의약품 등 마약류 중에서 가장 해로운 것은 펜타닐이다. 원래 이것은 마약성 진통제로 극심한 통증을 겪는 말기암 환자나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 등에게 마지막 치료 단계에서 사용된다. 하지만 현재 지구상에는 펜타닐의 오남용에 따른 수많은 중독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10월 29일자 미국 AP통신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약물 오남용으로 사망한 미국인은 10만7521명이었다. 이중 70% 정도가 펜타닐 복용으로 사망했다. 자살이나 총기 사고, 차량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보다 펜타닐 복용으로 사망한 사람이 더 많은 셈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1년간 10대와 20대의 펜타닐 처방이 급격히 늘어났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런 증가는 치료가 아닌 약물 중독에 따른 현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펜타닐은 극히 소량만 사용해도 치사량에 이르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진통제다.

그렇다면 인간은 마약을 언제부터 진통제로 사용했을까? 그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에서 진통 효과 때문에 특정 식물을 재배했다. 그중 양귀비꽃 봉오리에서 추출한 액을 말려서 만든 아편을 많이 사용했다. 서양의 경우 2세기에 갈레노스, 16세기에 파라켈수스가 진통제로 아편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다가 진통제를 다량으로 생산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다. 약사이자 화학자였던 프리드리히 제르튀르너는 1805년 아편에서 알칼로이드를 발견하여 추출하고 그리스 신화에서 ‘잠의 신’ 모르페우스의 이름을 따다가 모르핀이라고 명명했다.

이후 모르핀은 진통제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지만, 모르핀을 사용한 사람들에게 뜻하지 않은 중독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 특히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이 모르핀 중독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고, 모르핀은 마약의 대명사가 되었다. 아편에서 정제된 모르핀을, 이후 다시 아세틸화해서 얻은 게 헤로인이다.

모르핀과 헤로인의 경우 복용 후 10여 분 후면 그 효과가 나타나지만,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은 즉시 강력한 효과가 나타난다. 지방에 잘 녹는 지용성 펜타닐은 뇌를 감싸고 있는 ‘혈액내장벽’으로 침투해 뇌 속 신경계에 쉽게 도달하기 때문이다. 펜타닐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혈중 이산화탄소가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의 호흡을 증가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쾌감에 탐닉한 나머지 굳이 호흡을 힘들여 늘릴 필요가 없다는 듯이 호흡이 줄어들어 끝내 부족한 산소로 뇌세포가 손상돼 사망에 이르게 된다.

앞서 언급한 영화 ‘테넷’의 모티브였던 2002년 테러 사건에서 러시아 특수부대는 펜타닐 가스를 살포해 체첸의 테러리스트와 러시아 인질들 중 14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 밖에도 국내 한 래퍼의 고백에 따른 펜타닐 중독 증상은, 비정상적 체온과 구토로 나온 위산으로 인한 치아 부식, 과민한 피부 통증 등 심각한 부작용이 따른다. 이렇듯 펜타닐류의 오남용은 끔찍한 부작용과 생명을 위협하는 폐해를 낳고 있다.

몸 안의 마약 엔도르핀에 주목해야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우리 몸에도 천연적인 마약 성분이 분비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마약이 쾌감을 주는 원인을 연구하다가 뇌에 마약 수용체가 있다는 것과 그 수용체에 대응하는 분비물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 물질을 ‘몸 내부에서 발생하는 모르핀’이라는 뜻을 가진 ‘엔도지너스 모르핀(endogenous morphine)’, 간단히 ‘엔도르핀’이라고 불렀다.

엔도르핀이라는 ‘천연마약’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심각한 사고나 출산 등의 경우에 엄청난 위기를 피하기 위해서 다량으로 분비된다. 하지만 위급상황이나 출산이 지나면 엔도르핀은 급격히 줄어든다. 또한 엔도르핀의 사례로 알려진 것 중에 ‘위약(placebo) 효과’가 있다. 캘리포니아대학교의 존 레번 박사 팀은 치통 환자들 가운데 한편에게는 진통제를, 또 다른 한편에게는 가짜 약을 투여했다. 위약을 먹은 환자들 중에도 통증이 완화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환자의 몸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됐던 것이다.

마약 복용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육체적 대가가 따른다. 마약은 처음 짧은 한순간은 최대의 쾌락과 행복감을 주는 것 같지만 우리 몸에서 엔도르핀의 분비를 막고 도파민을 억제하도록 한다. 이후 남는 것은 한 래퍼의 고백처럼 더 극심한 고통뿐이다. 하지만 엔도르핀이 우리 몸에서 분비된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고통 앞에서도 좀 안심이 된다. 그것을 감당할 만한 ‘천연마약’이 분비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 고통에 당당히 맞서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일상의 더 많은 것들을 느끼고 거기서 즐거움을 찾기 위해 몸 안의 마약, 엔도르핀에 주목하자. 중독과 관련한 뇌과학 이야기는, 내게 주어진 것들에게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깨닫게 해준다.

김동훈 인문학자, 서양고전학자·철학자.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희랍과 로마문학 및 수사학, 철학을 공부했다. 희랍어와 라틴어 및 고전과 인문학을 가르친다. 인문학의 서사를 담아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퓨라파케’ 대표. 『인공지능과 흙』 『브랜드 인문학』 『키워드 필로소피』  『별별명언』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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