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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지주 CEO 인사에 외풍 조짐, 용산발 ‘낙하산’ 우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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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호 14면

금융권 관치 논란 재점화

14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회관에서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과 간담회를 마친 후 브리핑하고 있다. 이날 이 원장은 “CEO가 공정하게 선임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14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회관에서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과 간담회를 마친 후 브리핑하고 있다. 이날 이 원장은 “CEO가 공정하게 선임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한동안 잠잠했던 금융권에 관치(官治) 논란이 커지고 있다. 관치 논란이 재점화된 것은 이달 김지완 BNK금융지주 전 회장이 자녀 부당 지원 의혹으로 조기 사임한 데 이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라임사태로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경고를 받아 연임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이를 둘러싸고 임기가 만료되는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낙하산을 내려 보낼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금융권이 긴장하고 있다.

10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라임펀드의 환매중단 사태와 관련해 중징계를 받은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을 향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손 회장이 전날 금융위원회로부터 받은 중징계 결정에 취소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고려된다. “맞서지 말고 나가라”는 말을 돌려했다는 게 금융권의 해석이다.

이 원장은 14일에는 8개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을 소집해 “CEO가 합리적 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선임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금감원장이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과 만난 것은 윤석헌 전 원장 때인 2019년 5월 이후 약 3년 6개월 만으로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대해 세간의 의혹은 무성하다. 이 원장은 “외압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지만, 금융지주 인사철에 이사회 의장을 소집해 CEO에 대한 의견을 냈다는 것 자체가 외압이라는 우려가 짙다. 한 금융권 인사는 “파생결합펀드 사태에 이어 라임사태까지 문제에 대해 당국이 손태승 회장에게 징계를 내릴 수는 있다”며 “그러나 그 빈자리를 제대로 채워야하는데 (낙하산으로 인해)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IBK기업은행장 후임도 코드 인사 유력

지난해 4월 금감원은 라임펀드의 부실을 알고도 판매했다며 우리은행장이었던 손 회장에 문책 경고 상당의 중징계를 내렸다. 이후 제재심의는 1년 넘게 멈춰있다가 연말 인사철을 앞두고 급재개 됐다. 이 같은 금감원과 금융위의 행보를 두고 금융권에선 ‘시나리오’의 현실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금융관계자는 “금융위가 우리금융에 대한 징계를 1년 넘게 끌다가 최근 확정했다는 건 이제 인사에 개입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금융권은 당초 손 회장의 연임 가능성을 높게 봤다. 지난해 말 우리금융의 ‘완전 민영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우리금융의 실적(올 3분기 누적 순이익 2조6617억원)도 역대급이다. 하지만 라임 사태로 상황이 급변했다. 박필준 우리은행 노조위원장은 “우리은행의 잘못에 대해선 법원의 판단을 따르라 하는 게 맞는 게 아닌가”라며 “법조인 출신 금감원장이 갑자기 ‘현명한 판단’을 운운하는 것은 외압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지완 BNK금융 회장의 중도 사임도 낙하산 투척의 신호탄으로 읽혀진다. 지난 7일 김지완 BNK금융 회장이 임기를 5개월 정도 앞두고 돌연 회장직에서 조기 하차했다. 김 회장은 지난 2017년 9월 취임한 이래 3연임에 성공했으나, 최근 국정감사에서 자녀 부당지원 의혹이 일면서 불명예 퇴진했다. BNK금융은 김 회장의 사임에 대해 “가족과 관련 의혹에 대해 그룹 회장으로서 도덕적 책임을 통감하고 있으며, 건강 악화와 그룹의 경영과 조직 안정을 사유로 사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금융권에서는 이를 두고 적잖은 논란이 일고 있다. BNK금융의 최고경영자 승계 규정은 그룹 내부승계가 원칙이었다. 그런데 김 회장의 사임 직전 외부인사를 포함할 수 있도록 규정이 돌연 변경됐다. BNK금융의 한 관계자는 “내부승계라는 원칙이 자유로운 경쟁을 저해한다는 비판은 있을 수 있지만, 이사회에서 외풍을 막기 위해 만든 기준이기도 했다”며 “그 기준을 힘들게 만들어놓고 정작 외풍 한 번에 다시 그 기준을 번복한다는 것 자체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NH농협금융, 신한금융, 우리금융 등 3곳의 CEO의 임기가 연말 또는 내년 초 종료된다. 손병환 NH농협금융 회장은 12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으며,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된다. 은행장으로는 권준학 NH농협은행장, 진옥동 신한은행장,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 연말부터 내년 1월 사이 임기가 끝난다. 연말연시 금융권에 인사 태풍이 몰아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가장 먼저 연말 임기 만료를 앞둔 손병환 NH농협금융 회장은 연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지난해 1월 취임한 이래 2년 연속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변수는 정치권의 입김이다. 손 회장은 3개월 만에 물러난 신충식 초대 회장을 제외하면 사실상 첫 내부 출신 회장이다. 2대 신동규 회장(전 재정경제부 기획관리실장), 3대 임종룡 회장(전 국무총리실장), 4대 김용환 회장(전 금감원 수석부원장), 5대 김광수 회장(전 금융정보분석원 원장) 등이 관료 출신이었다. 농협은 농협법에 따라 설립된 특수 조직으로 관과의 관계가 깊었다는 점에서 관료 출신이 자리를 노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3연임이 유력시된다. 취임 후 매년 최대 실적을 경신하며 리딩금융그룹 자리를 탈환했다는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금융권 안팎에선 윤 정부 출범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기에 이뤄지는 이번 금융권 CEO 인사에서 낙하산 인사가 어디까지 확산될 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벌써부터 자천타천 CEO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장 주목받는 곳은 손태승 회장의 거취가 불투명해진 우리금융이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외부출신 후보로 손 회장을 대신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우리금융 내부 출신으로 윤석열 대통령 후보시절 지지를 밝혔던 이들도 거론된다.

BNK금융은 김지완 전 회장이 사임하면서 곧바로 차기 회장 선출에 들어갔다.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과 빈대인 전 부산은행장, 박영빈 건설공제조합 이사장,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이에 대해 BNK금융에선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흘러나온다. BNK금융 관계자는 “올드보이 중에 진짜 올드보이들이 거론되고 있다. 최초 CEO 선임 시 67세 이하로 규정한 4대 금융지주라면 아예 후보가 될 수 없는 인사들”이라며 “경력은 화려하지만 지금 시대의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트렌드를 주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후보로 언급되는 이팔성 전 회장은 1944년생으로 78세, 조준희 전 행장과 박영빈 전 이사장은 1954년생으로 68세다. 승계 규정의 급작스런 변경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권희원 부산은행 노조위원장은 “지난 5년간 9명의 계열사 CEO들은 회장 승계를 위한 준비를 착실히 거쳐왔다”며 “외부 출신 인사가 어느날 갑자기 들어와 선임된다면 내부 구성원들은 열심히 일할 의욕을 잃게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외풍이 현실화할 경우 조직의 경쟁력 자체를 갉아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각 계열사 대표들은 연구 및 네트워크 역량에 관한 평가 및 직원 평판 조회를 통해 리더십을 제고하는 승계프로그램을 5년 전부터 밟아왔다.

금융노조 “낙하산 오면 금융위기 가속화”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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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 임기를 마치는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의 후임에도 정부 코드 인사가 유력시되고 있다. 정은보 전 금감원장이다. 16일 기업은행 노조는 금융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낙하산 반대 및 약속이행 촉구를 요구했다. 지난 2020년 윤종원 행장 선임 당시 금융위가 낙하산 인사 임명에 사과하며 재발방지를 약속했음에도, 또 다시 관료 출신이 후보로 거론되자 반대 행동에 나선 것이다. 기업은행 노조는 이날 직원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임직원의 68%가 내부 출신 행장을 선호하고, 은행 전문성과 충성도를 중시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 같이 한동안 잠잠했던 금융권 CEO에 대한 낙하산이 부활되는 조짐에 대해 금융권 안팎에선 윤 정부 출범 이후 보은 인사 차원에서 줄 대기 하려는 움직임으로 보는 시각이 적잖다. 지난 정부에선 윤종규 KB금융 회장이 3연임에 성공하고,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과 손태승 회장이 잇따라 연임에 성공하며 ‘금융 CEO 장수시대’가 열렸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일부 셀프 연임 등의 부작용도 제기됐지만, 강력한 리더십을 기반으로 그룹 성장을 이끌 수 있단 점에서 금융 선진화의 흐름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그런데 최근 기류가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민간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려면 선거에 대한 보은 인사로 접근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금융권 CEO는 어마어마한 연봉에 무제한급 판공비가 제공되는 자리라 서로 줄을 대려고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실제 지난해 연차보고서에 공개된 4대 금융지주 회장의 연봉은 최저 8억원에서 최고 24억원 수준이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예고된 시기에, 낙하산 인사가 금융을 후퇴시킬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커진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은 “민간기업에 관료 출신이 가면 독립적인 경영이 쉽지 않고 정부에 휘둘리기 쉽다”며 “그동안 경쟁이라 해놓고 사실상 관료를 내정해 둔 경우가 많았기에 이사회가 최대한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는 “MB(이명박) 정권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이 다시 금융권 수장으로 거론되는 것은 정부가 낙하산 인사에 개입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위기 상황에선 이를 헤쳐 나갈 리더의 경험과 역량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금융노조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정권과 모피아의 낙하산 투여는 금융위기를 가속화할 것”이라면서 “금융지주 회장·행장 인선 과정에 개입하지 않고 각 회사 내부의 승계 프로그램이 정상 작동된다는 안정감을 국내외 시장에 보여줘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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