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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ICBM 사거리 1만5000㎞, 미 MD망 우회 타격 가능해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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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호 03면

북한 ICBM 발사 파장

공군 F-35A 전투기가 18일 북한의 ICBM 도발에 대응해 강원도 필승 사격장에서 GBU-12 정밀유도 폭탄으로 미사일 이동식 발사대 타격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 합동참모본부]

공군 F-35A 전투기가 18일 북한의 ICBM 도발에 대응해 강원도 필승 사격장에서 GBU-12 정밀유도 폭탄으로 미사일 이동식 발사대 타격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 합동참모본부]

북한이 18일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북한이 그동안 의욕적으로 개발을 추진해 온 ‘화성-17형’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화성-17형이 비행 거리 등 성능 측면에서 ‘화성-15형’ 등 북한이 보유한 기존 ICBM과는 차원이 다른 파괴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1만5000㎞라는 최대 비행 거리는 미국 서부뿐 아니라 수도인 워싱턴DC 등 미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거리인 만큼 한·미 양국도 북한이 과연 화성-17형 기술 개발에 성공할 수 있을지 예의 주시해 왔다는 점에서 향후 파장 또한 적잖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이날 북한이 발사한 ICBM의 궤적은 지난 3일 발사된 ICBM과는 차이가 난다. 당시 미사일의 최고 고도는 1920㎞, 비행 거리는 760㎞에 속도는 마하 15였다. 군 당국은 이를 근거로 북한이 1단과 2단 추진체 분리까지는 성공했지만 이후 우주로 나갔다가 대기권으로 재진입하는 ICBM의 정상 비행엔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최고 고도 6100㎞, 비행 거리 1000㎞로 분석된 이날 ICBM의 비행 궤적도 2017년 11월 북한이 발사한 화성-15형(최고 고도 4475㎞, 비행 거리 950㎞)보다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다. 북한이 신형 ICBM인 화성-17형 실험에 성공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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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당 75주년 열병식 때 처음 선보인 화성-17형은 길이가 22~24m로 세계에서 가장 긴 미사일로 꼽힌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선 ‘괴물 ICBM’으로 불리기도 한다. 최대 사거리도 화성-15형은 1만3000㎞인 데 비해 화성-17형은 1만5000㎞에 달한다. 2000㎞가 더 늘어날 경우 미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게 된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는 이날 ICBM에 대해 “정상 각도인 30~45도로 쏘면 최대 1만5000㎞를 비행할 수 있는 미사일”이라며 “이 정도 거리면 북한 아무 데서나 발사해도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마다 야스카즈 일본 방위상도 이날 “비행 궤도를 바탕으로 계산할 경우 탄두와 중량 등에 따라 사거리가 1만5000㎞를 넘을 수 있으며 이 경우 미 본토가 사정권에 포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해 북한도 사거리 1만5000㎞급 미사일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지난해 1월 5~7일 열린 북한 노동당 8차 대회에서 “1만5000㎞ 사정권 안에 있는 임의의 전략적 대상들을 정확히 타격 소멸할 수 있는 명중률을 더욱 제고해 핵 선제·보복 타격 능력을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전문가들은 북한이 화성-17형 개발에 올인하는 데는 또 다른 전략적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체제가 그것이다. 아시아 대륙에서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미사일을 발사할 때는 북극을 지나가는 게 지름길이다. 그래서 미국은 냉전 시대부터 북극과 가까운 알래스카주에 장거리 탐지 레이더 시스템을 운용해 왔다. 지난해엔 탄도미사일 방어용인 최신형 장거리 식별 레이더(LRDR)를 알래스카주에 배치하기도 했다. 적국의 ICBM을 파괴할 수 있는 지상 기반 요격미사일(GBI)도 알래스카를 근거지로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도 GBI를 전개해 놓고 있지만 주력은 알래스카주에 있다. 권 전 교수는 “1만5000㎞급 미사일이라면 북극 주변의 MD망을 비껴가며 날아도 미 본토 어느 곳이든 닿을 수 있다”며 “북한이 사거리 늘리기에 혈안인 또 하나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북한이 아직 ICBM 재진입 기술을 완전히 확보하진 못한 만큼 이날 ICBM을 실질적 위협으로 삼기엔 부족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북한이 ICBM 탄두를 대기권 밖에서 터뜨리기만 해도 이때 발생하는 전자기펄스(EMP)로 미 중심부의 지휘 통제 체계는 물론 민·관 각 분야의 전자 시스템을 망가뜨리면서 미국 경제를 한순간에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이번 ICBM 발사가 보여준 성능에 미국 등 국제사회가 특히 주목하는 이유다.

북한이 이날 사실상 미국 본토 타격용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일본의 EEZ를 겨냥한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한·미·일 3국의 공조 강화에 노골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는 점에서다. 북한은 지난 17일 최선희 외무상 명의의 공개 담화를 통해 “미국이 동맹국들에 대한 확장억제력 제공 강화에 집념할수록 그에 정비례해 군사적 대응은 더욱 맹렬해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최 외무상은 한·미·일 공조를 겨냥해서도 “미국과 추종 세력들에게 보다 엄중하고 현실적이며 불가피한 위협으로 다가설 것”이라며 “반드시 후회하게 될 도박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김 위원장의 의중을 대변하는 최 외무상이 ‘미국과 추종 세력’을 언급한 직후 미·일을 동시에 겨냥해 강행된 이날 도발이 김 위원장의 직접 지시에 따라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도 “이날 ICBM 발사는 한·미·일이 대북 압박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미·일 정상으로부터 대북 문제 해결에 대한 적극적 역할을 요구받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게 김 위원장이 무모한 도발을 강행한 배경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이날 북한의 ICBM 도발은 한·미·일 3국의 대북 확장억제 강화에 맞대응한다는 의지를 표출해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 폐기를 압박하려는 것”이라며 “특히 시 주석이 대북 역할 주문에 확답하지 않은 것도 ICBM 발사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런 가운데 한·미 양국은 이날 오후 북한의 ICBM 도발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스텔스 전투기인 F-35A를 동원해 미사일 이동식 발사대(TEL) 타격 훈련과 연합 공격 편대군 비행을실시했다. 합참은 한국 공군 소속인 F-35A가 이날 강원도 필승 사격장에서 정밀 유도 폭탄인 GBU-12 페이브웨이로 TEL 모의 표적을 정확히 타격했다고 밝혔다. 한국 공군의 F-35A 4대와 미 공군의 F-16 전투기 4대도 동해에서 스트라이크 패키지(공격 편대군)를 짜며 비행했다. 스트라이크 패키지는 단일 공격 임무를 위해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항공기로 꾸려진 편대의 집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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