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코인런 막게...고객 맡긴 암호화폐 '거래소 부채' 분류 검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계 3위 암호화폐 거래소 FTX 파산에 따른 불안감이 국내 거래소로도 번지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3위 암호화폐 거래소 FTX 파산에 따른 불안감이 국내 거래소로도 번지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3위 암호화폐 거래소 FTX 파산이 ‘코인판 리먼 사태’로 번지자, 정책당국이 투자자 불안 해소 방안 마련에 나섰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증권사와 달리 투자자 소유 자산과 거래기관 고유 자산을 명확히 분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암호화폐 거래소가 파산하면 고객들이 투자금을 몽땅 잃을 수도 있다.

금융당국은 투자 불안 증폭으로 ‘코인런(대량 인출 사태)’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기업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로 했다. 고객이 투자 과정에서 거래소에 맡긴 암호화폐는 거래소가 향후 고객에 지급 의무가 있는 ‘빚(부채)’으로 인식하게 하는 한편, 리플·테더 등 일부 암호화폐는 주식·채권과 같은 금융상품으로 분류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가상자산 회계 지원 방안’ 최종안 입수 

17일 중앙일보는 암호화폐업계·금융권으로부터 금융감독원이 작성한 ‘가상자산 회계·감사 이슈 및 회계실무 지원 방안’ 최종안을 단독 입수했다. 최종안은 다음 달 금감원·한국회계기준원·한국공인회계사회 등 관계 기관 공동 세미나를 거쳐 발표된다.

이 안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고객이 거래소에 위탁한 암호화폐는 거래소 재무제표상 부채로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현재 국내 거래소는 고객이 맡긴 암호화폐를 회계장부(재무상태표)에 아예 기록하지 않는다. 이런 위탁 암호화폐의 경우 거래소가 사용 권한(통제권)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가령 차입금은 기업의 상환 의무가 명확하기 때문에 ‘부채’로 기록한다. 또 기업은 이렇게 조달한 돈을 사업 활동(미래 경제적 효익)에 쓸 수 있기 때문에 ‘자산’으로서의 성격도 명확하다. 하지만 위탁 암호화폐는 거래소가 빌려온 게 아니라 고객 자산을 잠시 맡아둔 것일 뿐인 데다, 사업 활동에 쓸 권한도 없기 때문에 자산이나 부채로 반영할 수 없다고 봤던 것이다.

“위탁 암호화폐 부채 반영 안 하면, 고객 지급 의무 모호” 

전문가 일각에선 거래소가 위탁 암호화폐를 부채로 인식하지 않을 경우, 투자자에 대한 지급 의무가 모호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FTX 사태에서처럼 거래소가 해킹ㆍ도난ㆍ분실 등으로 고객 자산을 잃어버려도 ‘빚 진 게 없다’는 이유로 돌려주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일본은 지난 2018년부터 위탁 암호화폐를 부채로 회계 처리하고 있고, 미국 역시 조만간 같은 취지의 회계 지침을 마련할 예정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고객 위탁 암호화폐를 부채로 인식하면, 그만큼 거래소의 지급 의무도 명확해져 고객 불안도 덜 수 있다”며 “다만, 실제 적용 여부는 관계 기관과 검토해 확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빗썸코리아의 올해 3분기 기준 고객이 위탁한 암호화폐는 5조3786억원 규모다. 전체 부채총계(9175억원)의 5배가 넘는다. 위탁 암호화폐가 부채로 인식되면 부채비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어, 거래소의 자본 확충도 유도할 수도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리플·테더는 주식같은 금융상품 분류 검토 

금융당국은 또 리플·테더(USDT) 등 일부 암호화폐의 경우 주식·채권처럼 금융상품으로 회계처리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암호화폐 중에선 단순히 현금과의 교환 수단으로만 쓰이지 않고 주식처럼 회사 지분 확보나 의결권 획득 등에 활용하는 것도 있다. 암호화폐의 실질적 성격을 반영하자는 취지이지만, 보유 기업의 실적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암호화폐를 금융상품으로 분류하면 보유 기업은 암호화폐 가격이 오를 땐 이익(평가이익)이 늘고, 가격이 내리면 손실(평가손실)이 커진다.

금융당국은 기업이 암호화폐 개발에 쓴 비용을 자산화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제약회사들이 연구개발비 일부를 자산으로 인식하는 것처럼 자산성이 있는지를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가상자산 업계에선 IFRS 지침 만으론 처리하기 힘든 회계 이슈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며 “다만 금융당국은 최대한 보수적으로 회계 원칙에 맞게 규정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고객·거래소 재산 구분하고 불공정거래 규제해야” 

투자자 보호를 위해 회계 방식 개편에서 한발 더 나가 디지털 자산 관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입법을 통해 거래소 내 고객 재산(예치금·위탁 암호화폐)과 거래소 소유 재산을 구분하고, 불공정거래 규제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현재 (암호화폐) 거래소는 증권사와 한국거래소·한국예탁결제원 등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렇게 되면 거래소와 고객의 이해 상충, 자기자본 거래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국회 계류 중인 디지털자산법 제정안은 시세조종, 미공개 정보 이용 행위, 부정 거래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며 “이런 조항을 핵심으로 한 법이 조속히 제정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