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옴시티 100조 따내자, K테크 총력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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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관저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와의 회담을 마친 후 환담하고 있다. 이날 한국의 주요 기업과 사우디 정부·기관·기업은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에 맞춰 26건의 계약·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관저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와의 회담을 마친 후 환담하고 있다. 이날 한국의 주요 기업과 사우디 정부·기관·기업은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에 맞춰 26건의 계약·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사진 대통령실]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이 한국 경제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17일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한국 기업에 최대 100조원에 달하는 ‘돈 보따리’를 풀 전망이다. 국내 기업은 ‘K테크’를 앞세워 인류 최대 역사(役事)로 불리는 ‘네옴시티 프로젝트’ 참여를 선언했다. 채 24시간도 안 되는 방한 기간에 한국 산업계를 들었다 놓은 셈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2조 달러로 추정되는 재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뜻에서 ‘미스터 에브리싱’이라고 불린다.

이날 하루 동안에만 한국 기업과 사우디 정부·기업은 26건에 걸친 계약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대부분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네옴시티 관련 사업이다. 네옴시티는 사우디 반도와 이집트 사이 아카바만(灣) 동쪽에 건설되는 첨단 미래 신도시다. 총사업비 5000억 달러(약 670조원)를 들여 사막과 산악지역 2만6500㎢(서울의 44배) 면적을 인공도시로 탈바꿈시킨다. 아카바만에서 네옴국제공항까지 170㎞ 구간에 폭 200m, 높이 500m의 유리로 된 초대형 장벽을 지어 좁고 긴 선형 도시를 만드는 프로젝트 등이 포함된다. 쉽게 말해 롯데타워(높이 555m) 같은 건물을 서울에서 강릉까지 줄지어 연결한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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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에서는 한국 기업이 수주할 수 있는 규모가 최소 70조원에서 최대 1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본다. KB증권에 따르면 이는 전체 수주 금액 중 13% 수준으로 사우디, 중국 다음으로 많다. 그동안 중동에서 주요 건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경험이 많은 데다 창의적인 방법으로 납기를 맞추는 한국 기업의 추진력을 사우디가 높이 샀다는 후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건설과 정보통신기술(ICT) 등 첨단기술은 물론 K팝 같은 ‘소프트파워’까지 갖춘 한국 기업의 능력을 사우디가 선호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한-사우디 수교 60주년을 맞아 공식 방한한 빈 살만 왕세자와 한남동 관저에서 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사우디가 우리나라의 중동지역 최대 교역 파트너이자 해외건설 파트너 국가로서 우리 경제·에너지 안보의 핵심 동반자”라고 평가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에너지, 방위산업, 인프라·건설의 세 개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싶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과 오찬회담을 마친 빈 살만 왕세자는 숙소인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로 돌아가 재계 총수들과 회동했다. 당초 예정됐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외에 참여하는 재계 총수도 늘었다.

경기 둔화로 어려운 기업들 ‘제2의 중동 붐’ 기대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한남동 대통령관저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단독 환담을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한남동 대통령관저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단독 환담을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이해욱 DL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사장 등이 함께했다. 빈 살만 왕세자 측의 요청으로 참석자가 늘었다는 게 재계의 설명이다.

삼성은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삼성전자 등이 네옴시티의 ICT·건설 인프라 등에 참여한다. 현대차는 건설과 스마트 모빌리티 시스템, SK는 그린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와 ICT 기반 사업에 각각 참여할 예정이다. 코오롱은 사막에서 현지 스마트팜 사업에 나서며, 수처리·풍력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네옴시티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중소기업까지 더하면 규모는 천문학적이다. 최근 글로벌 경기 하락으로 고전 중인 국내 기업으로선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재계에선 1970년대 이후 ‘제2의 중동 붐’이라고 표현한다.

빈 살만 왕세자는 국내에도 ‘투자 보따리’를 풀었다.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가 대주주인 에쓰오일은 이날 울산에 70억 달러(약 9조2600억원) 규모의 석유화학 시설 투자를 확정했다. 3년 전 약속했던 투자계획 집행을 최종 결정한 것이다. 투자 이름은 ‘샤힌(Shaheen·아랍어로 ‘매’라는 뜻) 프로젝트’. 아랍권에서 매는 부와 권위, 명예의 상징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샤힌 프로젝트는 양국의 보완적인 에너지·산업구조를 활용함으로써 석유산업의 저탄소·고부가가치화를 선도하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날 20여 건의 계약과 MOU, 투자 결정이 전광석화처럼 이뤄진 건 한국과 사우디 양국 정부의 사전 조율 덕분이다. 지난 10일 앞서 입국한 칼리드 알 팔리흐 사우디 투자부 장관은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장재훈 현대차 사장 등과 연쇄 회동하면서 사업 협력을 조율했다.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장은 “건설 같은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 인프라까지 맞물리는 도시 계획 프로젝트란 점에서 새로운 기회”라고 진단했다. 이어 “건설과 정보기술(IT), 문화 등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전략적으로 접근하면 더 많은 국부를 창출하고 한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재계 총수와 빈 살만 왕세자의 회동은 오후 7시쯤 끝났다. 총수는 별다른 말 없이 호텔을 떠났고, 이어 7시30분쯤 빈 살만 왕세자도 호텔을 빠져나와 일본으로 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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