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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경찰 수뇌부 잘못 드러나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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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달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시민들이 의식잃은 환자들을 심폐소생술(CPR)하며 구조활동을 펼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시민들이 의식잃은 환자들을 심폐소생술(CPR)하며 구조활동을 펼치고 있다. 뉴스1

이태원 참사 3주 되도록 현장만 문책

현직 장관·청장 엄정 수사 가능할까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서울 용산경찰서장이던 이임재 총경과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으로 근무한 류미진 총경의 국회 증언을 통해 경찰 지휘부의 심각한 문제가 또 드러났다. 158명의 희생을 막지 못한 책임이 최상층에도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이 전 서장은 지난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핼러윈 축제에 대비해 기동대 지원을 요청하라고 주무 부서에 지시했다”며 “서울청에 지원 요청을 했지만 당일 집회 시위가 많아 지원이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밝혔다. 참사를 막지 못한 요인 중 하나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기동대 지원 거절을 지목한 셈이다.

112 신고 대응의 책임자였던 류 총경이 상황실을 비우고 자신의 사무실에 있었던 게 관행이라고 밝힌 사실도 황당하다. 서울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간부가 근무지를 떠난 바람에 사고 네 시간 전부터 이어진 112 신고 전화를 소홀히 다뤘는데 그게 관행이란다. 경찰 전체의 흐트러진 근무 상태가 장기간 방치됐다는 실토다. 총경은 지역 치안을 총괄하는 경찰서장 직급인데 이들의 복무 자세가 이 모양이니 현장 직원들이 긴장감을 유지하며 일하겠는가. 경찰 지휘부가 책임져야 할 기강 해이다.

두 총경의 잘못은 명백하다. 이 전 서장은 서울경찰청에 기동대 지원을 요청했을 만큼 이태원의 사고 위험을 예상했다. 서울경찰청장이 지원을 거절했다면 용산서 전 직원을 투입해서라도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했다. 참사 현장 바로 앞에 있는 이태원파출소 직원들에게도 상황을 주시하고 유사시 즉각 보고하도록 조치했다면 오후 6~7시쯤부터 비상 대응에 들어갔을 것이다. 158명을 전부 살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사고 발생 30분이 지나도록 무전이나 전화 보고를 하나도 못 받았다니 어처구니없다.

류 총경 역시 112상황실을 수시 점검이라도 했다면 이태원 길에서 수십 명이 심폐소생술(CPR)을 받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뒤 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은 피했으리라.

두 총경의 발언은 이번 참사로 수사 선상에 오른 사람들이 혐의를 피하기 위해 책임을 전가하거나 상황을 합리화할 개연성이 충분함을 보여준다. 법적 책임을 따지겠다지만 피의자로 입건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이 현직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경찰 수사가 엄정하게 이뤄질 수 있을까. 지난 14~16일 실시한 여론조사(전국지표조사)에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 대해 ‘필요하다’는 응답(55%)이 ‘필요하지 않다’(41%)보다 높게 나온 것도 이런 우려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초유의 비극이 발생한 지 3주가 되도록 문책당한 고위직이 한 명도 없다. 참사의 모든 책임을 현장 근무자에게 돌리는 식의 정부 대응은 납득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