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4시 30분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정문은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불리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주요 재계 총수의 만남을 기다리는 취재진, 주요 대기업 관계자 200여 명으로 북적였다.
빈 살만 왕세자는 이날 오전 12시 30분쯤 전용기로 경기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빈 살만 왕세자가 머무르는 롯데호텔은 새벽부터 삼엄한 분위기였다. 롯데호텔은 이날 일반 투숙객과 빈 살만 왕세자의 동선이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해 메인 타워(본관)와 왕세자 일행이 머무를 이그제큐티브 타워(신관) 내부 통로에 가벽을 세웠다.
경찰특공대에 폭발물 탐지견까지
전용 출입구로 이용할 호텔 입구에는 빈 살만 왕세자의 차량 승하차 모습을 가리기 위한 가림막이 둘러졌고, 안쪽에는 보안 검색대가 설치됐다. 정장을 입은 빈 살만 왕세자 측 경호원 30여 명 외에도 총과 방탄모로 무장한 경찰특공대 10여 명, 폭발물 탐지견 여러 마리가 호텔 주변을 순찰했다. 인근 도로에도 경찰 20여 명이 배치됐다. 빈 살만 왕세자가 이동할 때는 호텔 정문 앞에 대기하던 오토바이가 차량을 호위했다.
서울공항에 도착해 한덕수 국무총리의 영접을 받은 빈 살만 왕세자는 숙소에 머무르다 낮 12시 5분쯤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용산구 한남동 관저로 향했다. 윤 대통령과 오찬을 겸한 회담을 마친 뒤 3시 30분쯤 다시 롯데호텔로 돌아왔다. 입구에서 차량을 흰 가림막으로 가려 빈 살만 왕세자의 모습은 공개되지 않았다.
오후 4시 30분을 전후로 빈 살만 왕세자와 티타임을 하기로 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등 재계 주요 총수와 최고경영자(CEO)들이 전용 출입구를 통해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이 회장과 최 회장, 정 회장은 ‘어떤 말씀을 하실 것이냐’는 기자들 질문에 대답 없이 입구로 향했다.
재계에 따르면 왕세자 측 요청으로 이재현 CJ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이해욱 DL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사장까지 8명의 총수가 이 자리에 참석했다. 이들 8개 그룹 자산 총합은 지난해 말 기준 1277조원가량(공정거래위원회)으로 빈 살만 왕세자의 재산 총액으로 알려진 2조 달러(약 2700조원)보다 적다.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 뒤 재계 총수 티타임
티타임 장소는 빈 살만 왕세자가 머무르는 32층 로열 스위트룸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는 빈 살만 왕세자가 이날 재계 총수들과 회동에서 5000억 달러(약 670조원) 규모의 사우디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 ‘네옴시티’와 관련해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사우디 원전 개발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을 것으로 봤다.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에 앞서 칼리드 알 팔레 사우디아라비아 투자부 장관이 먼저 한국을 찾아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과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김교현 롯데케미칼 부회장, 김종현 DL케미칼 부회장 등 주요 기업 고위 관계자 20여 명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전 실무 조율 등을 거쳐 왕세자가 한국을 찾은 이 날 하루 동안 양국 간 26건의 계약·양해각서(MOU)가 ‘속전속결’로 체결됐다.
스위트룸에서 ‘네옴시티’ 등 논의
익명을 요구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사우디와 한국 기업 간 26개 MOU가 체결된 것은 그만큼 협력할 일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책임감을 갖고 프로젝트를 완수한다는 이미지에 임금과 기술 경쟁력이 더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경쟁국인 걸 알면서도 한국 기업과 손을 잡은 것은 협력했을 때 성공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는 뜻”이라며 “기업 총수들과 만남에서도 사업 협력과 관련해 격의 없는 토론이 오간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빈 살만 왕세자와 재계 총수들의 회동은 이날 오후 7시쯤 끝났다. 빈 살만 왕세자도 오후 7시 31분쯤 호텔을 나와 공항으로 향했다. 짧은 방한 일정을 마친 빈 살만 왕세자는 다음 행선지인 일본으로 출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