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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내년 상반기가 진짜 위기"....금융안정계정 의원입법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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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금융사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4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 모습. 연합뉴스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금융사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4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 모습. 연합뉴스

금융회사의 부실이 발생하기 전 자금을 투입해 선제 대응하는 금융안정계정이 조기 가동될 전망이다. 금융과 실물의 위기 징후가 심상치 않자 해당 법안의 시행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금융당국이 의원입법 추진으로 방향을 틀었다. 내년 상반기가 '진짜 위기'라는 우려가 커지면서다. 이에 따라 빠르면 내년 2월이면 법이 통과돼 상반기에 시행될 전망이다.

금융안정계정 의원입법 추진...내년 2월 목표

17일 정치권과 국회에 따르면 다음 주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의 대표발의로 금융안정계정 도입을 위한 ‘예금자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의원입법을 추진한다. 지난 7월 금융위원회가 발의한 동일한 법안은 현재 법제처에서 심사 중이다.

해당 법안을 의원입법으로 다시 추진하는 것은 입법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정부입법은 법제처의 심사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친 뒤 국회에 제출되는 까닭에, 의원입법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김희곤 의원실 측은 “시장 상황이 급박한 만큼 금융안정계정의 빠른 입법이 필요하다는 금융당국과 공감대가 형성돼 의원실에서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의원실 측은 다음 주부터 공동발의를 준비해 연내 발의를 마치고 내년 2월 임시회의에 상정해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시의성이 있는 법안인 만큼 (입법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정부입법도 속도를 내는 만큼 의원입법과 향후 병합 심사할 수도 있을 듯하다”고 설명했다.

금융안정계정은 금융사가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을 때 예금보험기금으로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거나 자본을 확충해주는 제도다. 금융사의 부실을 사전에 차단하자는 취지다. 과거 금융위기 때 한시적으로 운영했던 긴급 자금지원제도를 상시화하는 것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유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의 채무보증프로그램(DGP)과 일본의 ‘위기대응계정', 유럽연합(EU)의 은행 정상화 정리지침(BRRD)이 이에 해당한다.

여전사 등 지원은 의원안에서도 빠져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김희곤 의원안은 정부안의 일부 표현만 다듬은 동일한 내용이다. 금융안정계정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금융사는 은행과 증권사·보험사·저축은행 등 예금보험공사에 보험료를 납부하는 금융사(부보금융회사) 또는 부보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두는 금융지주회사로 한정된다. 예보기금을 사용하는 만큼 예보료를 내는 회사만 대상에 포함된다.

금리 인상에 취약한 탓에 지원이 필요하다는 논란에도 카드와 캐피탈사 등 여신전문금융회사(여전사)는 금융안정계정 대상에서 빠졌다. 금융지주회사 내 카드사와 캐피털사가 지주회사를 통해 제도의 간접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 제외하는 걸로 결론이 났다.

금융안정계정 재원은 예보채 발행과 예보기금 내 계정 간 차입, 예보기금의 일시적 활용 등을 통해 마련한다. 금융위는 “예보채 발행 등은 채권시장의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기금을 먼저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회사채 만기 54조..."금리 인상 고통 본격화" 

금융위와 여당이 금융안정계정의 입법을 서두르는 것은 내년 상반기에 금융리스크가 가장 커질 것이란 전망에서다. 해당 법안이 내년 상반기 내에 가동돼야 유사시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통화정책의 영향이 통상 6개월 이상의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것을 감안하면, 본격적인 금리 인상의 충격과 고통이 내년에 더 심해질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1∼6월)에 도래하는 회사채 만기 규모는 54조3400억원이다. 만기가 돌아오면 각 회사는 이를 갚거나 차환(발행된 채권을 새로운 채권으로 상환하는 것)해야 하는데, 최근의 시장 상황 등을 감안하면이때 회사채 금리를 큰 폭으로 높여 발행할 수밖에 없다.

주요국의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는 것도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내년에 예상보다 더 높은 금리 수준에 도달할 수 있어서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연 4.75∼5.25% 사이의 어딘가가 합리적인 (금리) 상륙 지점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연 3.75∼4.0%)보다 1%포인트 이상의 추가 인상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내년에 실물 경제가 본격적으로 흔들리면 금융시장은 더 위축될 수 있다. 특히 부동산 경기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어서다. 이 경우 금융회사가 보유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이 빠르게 부실화할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금융권(은행·보험·여전·저축은행·증권)의 PF 대출 잔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112조2000억원으로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최대치다.

한 중소형 캐피털사 임원은 “브리지론이 본PF로 넘어가지 못하는 사업장이 많아지고 또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며 “이미 지방에서는 사업장 토지가 경매로 넘어가 5~6차까지 유찰되며 가격이 급락해 손실을 보는 금융회사가 나오는데, 내년 미분양 등이 본격화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재준 인하대학교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증권사 PF 부실 등 신용위기는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상황”이라며 “시장은 내년 상반기에 신용위기가 가장 극대화할 수 있다고 예상하는 만큼, 금융안정계정의 입법과 시행은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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