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월드컵을 앞두고 손흥민(30·토트넘)이 부상에서 회복 중인 가운데, 잉글랜드 울버햄프턴 공격수 황희찬(26)을 향한 관심과 기대가 크다. 정우영(23·프라이부르크)과 송민규(25), 백승호(25·이상 전북 현대) 등 한국축구대표팀 막내 5명 중 3명이 예상한 ‘첫 골의 주인공’이 황희찬이다.
카타르에 오기 전 서울에서 황희찬 누나 황희정(28)씨를 만나 동생의 축구인생을 들어봤다. 황희정씨는 축구 산업회사에서 일하다가 3년 전부터 매니지먼트사 ‘비더에이치씨’ 대표를 맡고 있다. 영국을 오가며 황희찬의 계약과 스케줄 등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황 대표는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황 대표는 “동생이랑 영국에서 축구를 하다가 다쳤다”고 했다.
최근 축구 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 FC국대패밀리 멤버로 출연한 황 대표는 “고등학생 시절 FC서울의 이청용 선수 팬이라서 매주 K리그 직관을 다녔다. 우당탕탕 축구하는 게 재미있어 골때녀를 즐겨봤는데 섭외 요청이 왔다. 동생은 두 달간 출연을 결사반대했다. 축구는 부상 위험이 크고, 본인이 겪었듯 방송에 나와 관심을 받게 되면 결과가 좋든 싫든 힘들 거라며 걱정했다. 그런데 막상 풋살화를 사고 축구를 해보니 ‘이 재미있는 걸 그동안 동생이 혼자했네’란 생각이 들었다”며 웃었다.
황 대표는 “제가 연습 때 왼쪽 측면에서 드리블을 치는 모습을 본 모르는 분이 ‘황희찬 같아’, ‘미니 황소’라고 하더라. 유전자가 비슷한가보다”고 했다. 이어 “전 중학교 2학년 때까지 100m, 200m 단거리 선수였다. 부천시 대회에서 1등한 적도 있다. 비공식 기록은 12초 후반대”라며 “어렸을 땐 제가 더 빨랐다. 희찬이가 저랑 달리기 시합에서 항상 져서 울고불고했다. 절 이기고 싶어 연습하더니,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저를 이기기 시작했다. 제가 봤을 땐 희찬이는 100m를 11초 초중반에 뛰는 것 같다”고 했다.
황희찬은 성이 황씨고 저돌적인 돌파를 펼쳐 별명이 ‘황소’다. 황 대표는 “한국에서 황소가 무서운 동물은 아니지만, 버팔로처럼 맹수 같은 느낌이 있다. 축구장 밖에서는 섬세하고 여리다. 현실남매라서 누나 호칭은 안 쓰는데, 연락은 매일매일 한다”고 했다.
황희찬은 근육이 잘 찢어지는 스타일이라서 몸관리를 철저하게 한다. 황 대표는 “부상방지 차원에서 염증을 유발할 수 있는 돼지고기는 안 먹는다. 원래 생선을 못 먹었는데 몸에 좋다고 하니 식단을 생선 위주로 바꿨다. 소금을 뿌리지 않은 장어를 먹고, 조미료를 절대 안 쓰고, 외식도 안 한다”고 했다. 식단관리로 체지방률도 12%에서 8%까지 낮췄다. 황 대표는 “집안이 먹으면 바로 살이 잘 찌는 체질이다. 희찬이는 밥도 4분의 1 공기만 먹는다. 제가 라면을 먹고 있으면 계속 쳐다본다. 안쓰러워서 ‘먹을래?’ 물으면, ‘냄새만 한 번 맡을게’라며 참고 조깅하러 간다”고 했다.
황 대표는 “피지컬 선생님이 ‘희찬이는 근육이 타고나게 좋은 친구가 아닌데, 근육 강화훈련과 식단으로 A급을 S급으로 끌어 올렸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황희찬 집에는 고가의 극저온 냉각치료 장비도 있다.
황희찬의 ‘황소 고집’이 얼마나 센지 몇 가지 일화도 들려줬다.
“희찬이가 중학생 때 팀 합숙을 하는데 경비 아저씨께서 부모님을 찾아와 이런 말을 했대요. ‘희찬이가 새벽 4시~5시면 밖으로 나가서 너무 걱정돼 따라 가봤어요. 산을 타고 내려오고, 주차장에서 볼 연습을 하더라고요. 그걸 매일매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운동을 안 한 척 누워서 잡니다’라고.”
또 다른 일화도 들려줬다.
“지난 6월 논산훈련소으로 기초군사훈련을 다녀왔어요. 퇴소날 휴게소에서 갑자기 집에 안 가고 피지컬 트레이닝을 하러 가겠대요. 몸이 상한 것 같다며. 그날 비가 엄청 많이 왔는데, 그 길로 훈련하러 갔어요. 제 동생이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독기를 넘어 광기다(웃음). 중고등학생 때도 1박2일 휴가를 받으면 재활센터에서 자고 새벽 6시부터 훈련을 했어요. 휴가 땐 프리스타일 고수 JK 전권 선생님이 있는 부산을 찾아가요.”
프리미어리그 울버햄튼 공격수 황희찬은 올 시즌 주전경쟁에서 어려움을 겪다가 최근 선발 자리를 되찾았다. 황 대표는 “울버햄프턴 오프 트레이닝을 가보니 희찬이가 미니게임에서 유일하게 골을 넣었는데도 그 주에 결장했다. 저 같으면 감독이 미웠을텐데”라며 “영국에서 희찬이 방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다이어리를 봤는데 ‘가족들이 보고 싶고, 너무 외롭고 힘들지만 연습해서 이겨내보자’라고 쓰여 있었다. 축구 일지에 어떤 부분이 부족했고, 훈련 때 어떤 부분을 보여줘야 할지 그림을 그려가며 적어뒀더라”고 전했다. 황희찬은 가족이 모르게 울기도 했다고 한다.
4년 전 러시아월드컵에서 한국-독일전(2-0승)은 황희찬 가족에게는 잔인한 경기였다. 황희찬은 후반 11분 교체투입됐지만 23분 만인 후반 34분 재차 교체 아웃됐다. 황 대표는 “그해 잘츠부르크 소속으로 유로파리그 4강까지 올라가며 컨디션이 좋았다. 경기에서 긴장을 안 하는 스타일인데, 다리가 안 움직일 만큼 긴장 됐다고 하더라. 저도 골때녀 촬영 중 카메라를 보니 숨이 찼다. 4년 전 어린 친구가 가진 게 많은데 못 보여줘 아쉬웠다. 독일전은 국민들에게 기쁨을 준 명경기였지만, 우리 가족들에게는 가슴 아픈 경기였다”고 했다.
황 대표는 손흥민이 부상 당한 경기를 영국에서 동생과 TV로 함께 봤다. 황 대표는 “희찬이가 감정이입을 하며 ‘으~’하며 괴로워했다. 희찬이가 전날에 손 선수와 ‘월드컵까지 정말 며칠 안 남았다’는 문자를 주고 받았다는데, 크게 다쳐 너무 깜짝 놀라더라”고 전했다.
한국의 조별리그 3차전 상대는 포르투갈인데, 황희찬의 소속팀 울버햄프턴에는 포르투갈 선수가 10명이나 있고 그중 3명이 월드컵 최종명단에 뽑혔다. 황 대표는 “울버햄프턴 주장 후벵 네베스는 중원에서 힘이 있고 중거리슛이 위협적이다. 마테우스 누네스는 날카로운 선수다. 아무래도 희찬이는 포르투갈 선수들의 성향을 잘 알고 있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화제를 돌려 팬들이 황희찬과 배우 여진구 닮았다고 한다고 전하자, 황 대표는 “전혀 모르겠다. 얼핏 보면 무슨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하나의 밈 처럼 됐다”며 웃으며 답했다. 황희찬의 패션에 대해 “전 ‘심플 이즈 베스트’인데, 희찬이는 ‘되도록 화려하게’다. 스타일리스트가 희찬이는 한국에 없는 체형이라 옷을 소화하기 힘든데 최근 더욱 난해한 옷도 잘 소화한다고 했다”고 했다.
황희찬은 고향 부천시에 1억6000만원을 기부했다. 1996년생 동갑내기 김민재(나폴리), 황인범(올림피아코스), 나상호(서울)과 함께 사랑의 달팽이에 4000만원을 기부했고, 황희정씨가 대표로 다녀왔다. 황 대표는 “희찬이는 춘천에서 태어나자마자 부천으로 이사 왔다. 할머니 손에서 자란 희찬이는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국가대표 축구선수를 꿈꿨다. 제 목표도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라고 했다.
황 대표는 “제가 볼 때 희찬이의 최고 강점은 돌파가 아닌 ‘노력’이다. 어쩌면 희찬이의 타고난 재능은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누나는 동생에게 월드컵 응원 메시지를 평소 좋아하는 드라마 대장금 속 대사로 대신했다.
“네 능력은 뛰어난 것에 있는 것이 아냐. 쉬지 않고 하는 것에 있어. 모두가 그만두는 때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시작하는 것. 너는 얼음 속에 던져 있어도 꽃을 피울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