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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전 이춘재에 살해된 초등생 유족, 국가 상대 손해배상 승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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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이춘재의 고등학교 졸업사진(왼쪽)과 군 복무 시절 사진. 뉴시스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이춘재의 고등학교 졸업사진(왼쪽)과 군 복무 시절 사진. 뉴시스

33년 전 연쇄살인범 이춘재에게 살해당한 초등학생의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17일 수원지법 제15민사부(부장판사 이춘근)는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인 김모양의 유가족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선고 공판을 진행했다.

이 판사는 “경찰의 위법 행위로 유족은 피해자인 김양을 애도하고 추모할 권리, 사망 원인에 대해 알 권리 등 인격적 법익을 침해당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족은 김양의 사망 여부를 알지 못한 채 장기간 고통받았고, 사체도 수습하지 못했다. 이런 피해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회복하기 어렵다”며 “수사기관이 조직적으로 증거를 은닉했고 국가에 대한 신뢰가 현저히 훼손돼 금전적 보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원고인 김양 부모에게 각 1억원, 오빠에게 2000만의 위자료를 산정했다. 김양의 부모가 소송을 제기한 이후 숨지면서 위자료 2억2000만원은 모두 김양의 오빠에게 지급된다.

김(당시 8세)양은 1989년 7월7일 오후 12시30분쯤 경기 화성시 태안읍에서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사라졌다.

이 사건은 30여년 간 미제 가출 사건으로 남아 있었지만,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가 2019년 이춘재 사건을 재수사하면서 사건의 진실이 드러났다.

이춘재는 재수사 당시 자신이 김양을 성폭행하고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이후 수사본부는 30여년 전 실종 사건을 맡았던 경찰이 김양의 시신과 유류품을 발견한 사실을 은폐하고 증거를 인멸했다고 판단했다. 수사본부는 형사계장 등 2명을 사체은닉과 증거인멸 혐의로 입건했지만, 공소시효가 만료돼 형사 책임은 지지 않았다.

딸이 범죄사건 피해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김양 유가족은 지난 2020년 3월 “경찰의 조직적인 증거 인멸로 사건의 실체 규명이 지연됐다”며 2억5000만원의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김양의 어머니는 소송을 제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김양의 아버지는 선고를 두 달 앞둔 지난 9월 숨졌다. 김양의 부모가 모두 숨지면서 김양의 오빠가 소송을 맡게 됐다.

김양의 오빠는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동생의 소식을 기다린 30년보다 소송 판결까지 2년 8개월을 기다리는 게 더 힘들었다”며 “재판부가 국가 책임을 인정하긴 했으나, 당사자인 경찰들이 이 사건에 대한 사죄를 꼭 했으면 한다”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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