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잘못되고 있다"…'엔드게임' 후 원성 쏟아지는 마블,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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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사진) 등 초기 캐릭터가 세대 교체를 이룬 마블 슈퍼 히어로 시리즈(MCU)가 흥행 정점을 이룬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이후 힘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아이언맨(사진) 등 초기 캐릭터가 세대 교체를 이룬 마블 슈퍼 히어로 시리즈(MCU)가 흥행 정점을 이룬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이후 힘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마블 영화 세계관(MCU)에서 뭔가가 빠져있는 느낌이다.’
지난 7월 미국 매체 ‘콜라이더’는 ‘마블의 콘텐트 폭발이 품질을 저하시킨 이유’란 제목의 기사에서 “마블 스튜디오(제작사)는 그들의 영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면서 “MCU의 페이즈4(서사 구분 단계)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 또한 지난 16일 ‘마블은 속편을 잘 만들지 못한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가 그 최신 증거’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요즘 마블 영화 왜 이럴까

영화 ‘어벤져스: 엔드 게임’(2019) 이후 마블 영화가 예전같지 않다는 반응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미국 현지에서도 마블 부진에 대한 분석이 꾸준히 나온다. 마블 시리즈는 안 봐도 그만인 단순한 오락 영화가 아니다. 전세계에서 폭발적 신드롬을 일으키며 동시대 글로벌 문화 현상으로 자리잡았기에 부진한 이유에도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재벌 2세 천재 과학자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로봇 수트를 입고 세계를 구하는 ‘아이언맨’(2008)이 되기로 결심한 이래 지난 9일 개봉한 최신작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이하 블랙 팬서2)’(감독 라이언 쿠글러)까지, 지난 13년간 마블 영화 30편이 올린 극장 매출은 278억 달러(약 37조원)에 달한다. 한국에서만 누적 관객 1억5000만명이 봤다. 개별 슈퍼 히어로 영화들이 흥행의 성패를 갈랐던 과거와 달리, 마블 영화는 코믹스 속 여러 히어로를 한데 엮은 프랜차이즈를 선보이며 슈퍼 히어로 세계관 만들기 열풍에 불을 붙인 ‘게임 체인저’로 자리매김했다.

2018년 아프리카계 히어로 첫 단독 영화 '블랙 팬서'에서 동명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채드윅 보스만의 모습. 지난 2020년 대장암으로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 2편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에서는 그를 잇는 후계자가 나온다. 사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2018년 아프리카계 히어로 첫 단독 영화 '블랙 팬서'에서 동명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채드윅 보스만의 모습. 지난 2020년 대장암으로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 2편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에서는 그를 잇는 후계자가 나온다. 사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요즘 마블 왜 이럴까’ 라는 팬들의 원성을 촉발시킨 건 ‘블랙 팬서2’로 마무리된 페이즈4다. 영화로는 지난해 개봉한 스칼렛 요한슨 단독 주연 영화 ‘블랙 위도우’부터 첫 아시아계 히어로 단독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하 샹치)’(2021), 마동석 출연작 ‘이터널스’(2021), 멀티버스(다중우주)를 확장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하 스파이더맨3)’(2021)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이하 닥터 스트레인지2)’(5월 4일 개봉), ‘토르: 러브 앤 썬더(이하 토르4)’(7월 6일 개봉)에 이어 ‘블랙 팬서2’까지 7편이 포함된다.
여기에 모회사 월트디즈니의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디즈니+가 지난해부터 출시한 ‘완다 비전’(2021) ‘로키’(2021) ‘문나이트’ ‘변호사 쉬헐크’ 등 마블 드라마 7편까지 총 14편이 페이즈4를 구성한다.

세대교체‧디즈니+ 드라마…기존 관객 소외

6편의 영화를 선보인 페이즈1‧2, 11편의 영화로 구성된 페이즈3와 비교하면 시리즈 사상 가장 많은, 다양한 캐릭터의 신작이 페이즈4에서 나왔다. 페이즈4가 마블답지 않다는 반응의 첫 번째 이유다. 아이언맨‧캡틴 아메리카 등 시리즈 초반을 견인한 캐릭터들이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끝으로 하차하고, 새로운 얼굴들로 세대교체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새로운 중심축으로 기대했던 블랙 팬서는 1편(2018) 이후 주연 배우 채드윅 보스만의 사망(2020년)으로 갑작스러운 세대교체를 겪게 됐다. 한마디로 마블 시리즈가 낯설어졌다는 것이다. 기존에 출연해온 캐릭터들의 영화 ‘스파이더맨3’(755만 관객) ‘닥터 스트레인지2’(588만) 등에 비해 신규 히어로를 소개한 영화들은 흥행이 저조했다. 그나마 마동석 효과를 본 ‘이터널스’가 305만, ‘샹치’는 174만 관객에 그쳤다. 10여 년 전 캡틴 아메리카‧토르가 처음 등장한 단독 영화가 각각 51만, 169만의 낮은 관객수를 기록했던 것과 비슷하다.

올해 8월부터 OTT 디즈니+에서 출시된 마블 드라마 '변호사 쉬헐크'. 캐나다 배우 타티아나 마슬라니가 여성 헐크가 됐다. [AP=연합뉴스]

올해 8월부터 OTT 디즈니+에서 출시된 마블 드라마 '변호사 쉬헐크'. 캐나다 배우 타티아나 마슬라니가 여성 헐크가 됐다. [AP=연합뉴스]

페이즈4부터 디즈니+의 마블 드라마가 영화 세계관에도 영향을 주게 됐다는 것도 기존 마블 영화 관객의 혼란을 키웠다. 페이즈1~3이 영화를 중심으로 하되 조연‧뉴페이스 캐릭터가 주인공인 단편‧디지털 시리즈를 보너스 작품처럼 선보인 것과 달라진 점이다.
페이즈3까진 영화만 보면 됐지만, 페이즈4의 ‘닥터 스트레인지2’는 드라마 ‘완다 비전’을 안 보면 이해할 수 없게 됐다는 의미다. 디즈니+를 보지 않는 관객은 마블 영화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제임스 건 “완성되지 않은 시나리오가 요인”

시나리오 완성도 자체가 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블랙 팬서2’만 해도 비평 전문 사이트 로튼토마토의 언론‧평단 평균 신선도가 84%로 1편(96%)보다 하락했다. ‘이터널스’가 47%, ‘토르4’가 64%로 전체 시리즈 최하위로 추락한 것에 비하면 준수하지만, 기대를 밑도는 평점이다.
‘블랙 팬서2’는 주연 배우 채드윅 보스만에 대한 추모를 녹여낸 부분은 칭찬받았지만 그런 무게감에 짓눌렸다는 평가가 공존한다. “정체돼있고 반복적이다”(워싱턴 포스트) “창의적 추진력이 아닌 전편의 흥행 성공이 속편을 주도한 실망스런 예”(릴뷰스)란 비판은 최근 마블 영화가 거듭 지적받는 지점이다.

미국 연예 매체 ‘더 다이렉트’는 지난 9월 마블 영화 ‘가디언즈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제임스 건 감독을 인용해 “영화 품질 저하의 가장 큰 이유는 무질서한 프로덕션과 완성되지 않은 시나리오”라고 전했다. 미국 매체 ‘콜라이더’는 "페이즈4는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불명확하다"고 짚었다. 페이즈1은 어벤져스를 모았고, 페이즈2‧3는 이들이 막강한 우주 악당 타노스(조시 브롤린)에 맞섰다면 페이즈4는 뚜렷한 목표없이 향후 프로젝트 홍보에 더 관심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개성‧재미 어디로…의미에 짓눌려 비장‧획일화

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불안증에 시달렸던 아이언맨, 시간을 건너뛰며 연인을 잃은 애국자 캡틴 아메리카 등 각 히어로의 초인적 능력만큼이나 인간적인 개성을 부각한 전작들과 달리, 마블 신작들은 VFX(특수시각효과)로 빚은 대규모 전투를 보여주는 데 급급하다.
‘샹치’의 중국, ‘문나이트’의 이집트 등 문화‧인종적 배경에 더해 여성 캐릭터 강화까지, 다양성을 넓히려는 시도는 주목할 만하지만, 그런 새로운 히어로의 제시 방식이 획일화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곤경에 처한 주인공이 고유의 문화를 간직한 세계에 다녀와 세상을 구할 자신의 능력을 각성하는 수순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클로이 자오 감독과 마동석이 지난해 10월 18일 ‘이터널스’ LA 프리미어 행사에 참석했다. '이터널스'는 영화 '노매드랜드'로 아시아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자오 감독의 첫 마블 연출작이었지만, 마블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저조한 평가를 받았다. [로이터=연합]

클로이 자오 감독과 마동석이 지난해 10월 18일 ‘이터널스’ LA 프리미어 행사에 참석했다. '이터널스'는 영화 '노매드랜드'로 아시아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자오 감독의 첫 마블 연출작이었지만, 마블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저조한 평가를 받았다. [로이터=연합]

할리우드 일각에선 마블 스튜디오가 2015년 마블엔터테인먼트에 독립해 디즈니 자회사로 승격된 게 원인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까진 마블 스튜디오 CEO 케빈 파이기가 전체 서사의 퍼즐을 치밀하게 맞췄다면, 이후론 디즈니+를 위해 다작을 원하는 디즈니의 입김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블의 침체를 속단하긴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페이즈4 작품들이 방대한 과거사를 파고들어 관객을 지루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있지만, 파이기 스스로 3년 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의 타임라인과 캐릭터가 재밌는 이유는 방대한 과거 때문”이라 말한 바 있다.
이러한 다양성 확대 속에 새로운 스타 히어로가 등장하면 부진도 해소될 것이란 시각도 있다.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최근 마블 영화는 정치적 올바름을 부각시키려다 너무 비장해지거나, 악당을 너무 초라하게 만들어버리는 경향도 있다”면서도 “마블 영화는 블록버스터로 만들 수밖에 없어 혼선을 빚고 있지만, 드라마의 경우 ‘변호사 쉬헐크’를 시트콤처럼 만드는 등 다양한 제작 방식이 환영받고 있다. 다양한 캐릭터로 독자층을 넓혀온 원작 코믹스의 전략과도 잘 맞는다”고 평가했다.
『어벤져스』 『저스티스리그』 『배트맨』 시리즈 등 100권이 넘는 마블‧DC 코믹스를 번역해온 이규원 번역가는 “마블 코믹스에서 의외로 경주 불국사, 석굴암 등이 유명하다”면서 “코믹스에서 한국 히어로팀은 중국‧일본팀에 비해 아직 존재감이 약하지만, 구미호‧K팝 스타 캐릭터 등 다양하게 나와 있다. 배우 박서준이 ‘더 마블스’(2023년 개봉 예정)에 캐스팅된 것처럼, MCU에 한국 캐릭터가 더 많이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9일 한국에서 세계 최초 개봉한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아프리카 왕국에 더해 마야 문명을 등장시켰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9일 한국에서 세계 최초 개봉한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아프리카 왕국에 더해 마야 문명을 등장시켰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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