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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사원증' 직장인들 떤다…그들 꺼림칙하게 만든 신기술

중앙일보

입력

경기도 고양시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 직원 A씨는 지난 3월부터 출퇴근을 할 때마다 안면 인식기를 마주해야 했다. 안면 인식기 외에는 다른 출퇴근 인증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A씨는 안면 인식기만 사용해 출퇴근 인증을 하는 것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얼굴을 열쇠로 쓰는 안면 인식 기술이 인권침해 기로에 놓였다. 인권위가 국공립 어린이집 직원들의 출퇴근 인증을 안면 인식(얼굴 인식)으로만 하게 한 지방자치단체에 대체 수단을 마련하도록 권고하면서다. 전문가들은 최소 공공 분야에서라도 안면 인식 기술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얼굴인식 출입 시스템. 뉴스1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얼굴인식 출입 시스템. 뉴스1

인권위 “안면 인식 정보 유출시 피해 위험성 작지 않다”

16일 인권위는 지난 4일 고양시장에게 관내 국공립 어린이집 직원들의 출퇴근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안면 인식기 이외에 대체수단을 마련해 운영하라고 권고했다고 밝혔다.

고양시 측은 수기 형태의 출퇴근 확인이 정확하지 않고, 지문 인식의 경우 한 사람이 복수의 지문을 등록할 수 있어 안면 인식 시스템을 도입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실제 한 유치원에선 교직원들이 서로의 지문을 등록한 후 초과 근무수당을 부당 수령한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고양시는 직원이 입사 지원서를 통해 얼굴 사진을 어린이집에 제공했고, 이 정보를 근태관리에 사용하는 것에 동의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인권위 침해구제제2위원회는 안면 인식 정보는 변경할 수 없는 생체정보인데다가 언제든 축적이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축적된 정보가 부당하게 활용되거나 유출될 경우 피해 위험성이 절대 작지 않다고 봤다.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에 따라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이러한 동의가 실질적인 동의가 되기 위해서는 동의하지 않을 경우의 대체수단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인권위는 고양시 측이 대체수단을 마련하지 않은 점, 시청에선 안면 인식기를 출퇴근 관리 수단으로 쓰고 있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국공립어린이집 교사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고양시 관계자는 “내년 3월부터 안면 인식, 지문 인식, 수기관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바꿀 예정”이라며 “생체정보에 대해선 개인정보활용 동의서를 받겠다”고 했다.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모습. 연합뉴스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모습. 연합뉴스

딥페이크 악용되면 어쩌나…“규제 필요”

안면 인식 시장이 확대되면서 인권침해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은 글로벌 안면 인식 시장 규모가 2020년 38억 7200만달러(약 5조 1284억원)에서 2025년엔 85억 7500만달러(11조 3575억원)으로 성장할 것이란 전망을 했다.

실제로 근태관리에 활용되는 안면 인식 기술의 경우 공공‧민간을 가릴 것 없이 확산하고 있다. SK텔레콤과 네이버는 최근 사원증 대신 안면 인식에 기반을 둔 직원 인증 출입시스템을 도입했다. 특히 안면 인식은 지문 인식과 달리 비접촉 방식이기에 코로나19 상황에서 근태관리 대안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얼굴이 사원증이 된 직장인들은 불안한 감정을 느낀다. 직장인 박모(32)씨는 “최신 근태관리라고 안면 인식을 도입해서 출퇴근하고 있다”며 “출입증 없이 다녀도 돼서 편리하지만, 한편으론 이 정보가 유출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꺼림칙하다”고 말했다.

같은 생체정보인식 기술이지만 안면 인식 정보가 유출될 경우 지문 인식보다 피해의 파급력이 크다. 안면 이미지 데이터 유출시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얼굴 생김새나 음성 등을 활용해 조작하거나 합성한 영상‧이미지인 ‘딥페이크’에 악용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는 무분별한 안면 인식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지난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는 시 정부 산하 53개 부처‧기관들의 안면 인식 기술 사용을 금지하는 조례를 만들었다. 이어 2020년 보스턴시, 포클랜드시 등도 공공기관에서 안면 인식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김보라미 변호사는 “딥페이크 등의 위험성 때문에 안면 인식 기술은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며 “이미 해외에서는 관련 기술 도입 시 영향평가를 필수적으로 하게 하는 등의 근거 법령을 만들고 있기에 한국도 논의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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